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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사드 전집 1: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 D. A. F. 드 사드 (워크룸프레스, 2014)


사드 전집 1 :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 - 10점
D. A. F. 드 사드 지음, 성귀수 옮김/워크룸프레스(Workroom)


옥에 있던 뫼르소가 사제를 울려 내보냈던 것처럼, 혹은 종교인들은 종종 그들이 의탁하고 있는 신을 사람들로 하여금 믿도록 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비종교인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믿지 않도록 하려고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없다고 하듯이, 초월적인 경험을 주장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무언가에 스스로 복종하라고 말하거나 우리 자신을 내놓으라고 말하는 이들의 말에는 귀를 틀어막으라던 히친스와 같이, 결국엔 사제와 죽어가는 자가 서로 뒤바뀌고 마는(「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 무신론적 태도를 견지하던 사드를 우리는 종종 까맣게 잊어버린 채 단지 고립된 성채에서의 넉 달간의 통음(通淫이든 痛飮이든)만을 기억하곤 한다. 그러나 자연이 스스로 뿜어내는 에너지 혹은 운동능력에 의한 활성(活性) 물질이라던 그의 주장은, 때로는 인간의 속성을 초라한 개체로 몰아가는가하면 그것을 방지할 공감으로서 종교나 신이 아닌 선량한 마음을 외치고 있다. 「같은 인간을 해치는 것이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오로지 이성을 통해서만 깨달아야 하는 것이네. 아울러 같은 인간의 행복에 기여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이 이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허락한 최고의 기쁨이라는 걸 우리 자신의 마음을 통해 느껴야 하는 것이지.」 그에 의하면 '갈색으로 염색된 리본을 실제로 갈색이라고 단정하는 건 매우 경박한 짓'이며ㅡ 당신이 누군가에게 신을 이야기할 때 당신은 그에게 어떤 개념도 제공하고 있지 않을뿐더러, 그를 설득하기 위해 최소한의 실질적인 논증조차 들이대지 않는 한, 그가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는 어떤 것을 그의 상상 속에 주입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그러니까 맹인에게 리본을 내밀면서 '이것은 갈색이오'라고 입을 놀리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구라'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다(「신에 대한 사색」). 하여간 우리는 언제고 이 불운한 6번 선생을(한때 뱅센 요새의 6번 감방에 있었음) ㅡ 그와 생트펠라지 감옥의 같은 층에 있었던 아무개의 표현을 빌리자면 ㅡ 그야말로 '부담스러운 짐짝'으로 여겨왔음에 틀림없는 것이다.




……이거 하나만 인정하시지. 눈가리개를 착용한 자와 그것을 벗어버린 자 둘 중에서 진짜 장님은 엄연히 전자라는 사실 말일세 (...) 자네가 설교하는 그 신이 진정으로 존재한다면, 그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굳이 기적, 순교자, 예언 따위가 필요할까? 자네 말마따나 인간의 심장이 신의 작품이라면, 그곳이야말로 신이 자신의 법을 위해 선택했을 성소(聖所)가 아닐까?


ㅡ 본문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 중



하여 이 사드 전집으로 기획된 제1권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가 사드 입문용이라거나 앞으로 나올 전집의 신호탄이라는 식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드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책에 수록된 아홉 편의 글이 사드를 온전하게는 설명하고 있질 못하기 때문인데, 외려 아폴리네르에 의해 작성되었던 장문의 해설로 하여금 다소나마 그 역할을 수행케 하는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고 여겨야 할 것만 같다. 그가 사드에게서 발견한 미덕이라면 리베르티나주(libertinage) 충만한 리베르탱(libertin)의 모습이었을 터다. 정신병원 의사에게마저 혀를 찰 만큼, 혹은 내두를 만큼의 '불길한 영향'과 '고질적인 패악'으로 말미암은 '끔찍한 인간'으로 비친 사드를 아폴리네르는 '19세기 내내 별것 아닌 것처럼 치부되었던 이 남자는 20세기를 확실히 지배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칭찬하는데(그 역시 익명을 사용해 사드에 비견할 만한 소설을 쓰기도 했다), ㅡ 물론 당장에 불살라버리고픈 심정도 들었을 것이지만 ㅡ 그에게 사드의 글을 읽는 것은 제철 과일을 어석거리며 한 움큼 베어 먹는 것처럼 부들부들한 감촉으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독자 된 입장에 선 나로서는 사드라는 인간을 하나의 거대 담론 속에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으나, 언어의 조탁과 탁월한 발상 그리고 도전, 자유, 그가 가진 사상(그저 '사고'라고만 해도 된다)에 있어서만큼은 아폴리네르가 지녔던 애정에 못지않다.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이라면 역자가 첫머리에 쓰길 '거북함'과 '희귀한 쾌감'이라 표현한 것을 십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 『소돔의 120일』에서 블랑지스 공작이 이런 식으로 주장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악덕이야말로 쾌락의 원천이라 확신하며 종교는 그저 망상일 뿐이다, 나는 창조주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내 기질을 억제하지 않는다, 내가 저지르는 죄악은 자연에 도움이 될 것인데, 자연이 내게 죄악을 저지르도록 하는 것은 자연 자체가 죄악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런 판국이니 그간 사드가 '부담스러운 짐짝' 취급(현실에서도 그랬다)을 받아왔던 것은 당연한 처사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그럴 만도 하다. 그는 색을 밝히는 면모와 함께 때때로 이죽대며 궤변도 늘어놓는다. 그러니 거북살스러우면서도 희귀한 쾌감이란 것이 대체 무엇인지, 온전한 이성의 존재인 당신도 이참에 한번 느껴보지 않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