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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리처드 브라우티건 (비채, 2015)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 8점
리차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비채


동의 60년대라는 상투적 표현을 따라 나 또한 '격동의 80년대'를 살아왔다며 때때로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향해 당시의 느낌과 분위기를 희화화해 전달하기도 한다(내가 '꼰대들'을 싫어하면서도 이제는 나 자신이 '꼰대'가 된 셈이다). 과거를 자꾸 이야기하다 보면 내세울 것이 과거뿐인 처량함에 휩싸인다는 말도 있으나, '어쨌든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 쉬 잘라 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현재는 과거와 다르고, 미래 또한 과거가 될 현재와는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저 아련한 노스탤지어,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다양한 매체를 통한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라는 방편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분명 브라우티건의 노스탤지어는 나는 어렴풋하게라도 겪어보기는커녕 그 시대가 어떤 시간 주기를 가지고 작동했는지조차 (잘) 알지 못한다. 때문에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는 완벽한(여기서 '완벽하다'는 형용사는 질 나쁜 부정어와 함께 쓰였다고 봐야 하겠지만) 낭만과 예스런 향수와 추억을 가지고 올는지 모른다(이 또한 세월이 흐르면 앞으론 2000년대가 아련한 노스탤지어가 될 거다. 더 이상 60년대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은 살아 있지 않을 것이므로). 물론 『워터멜론 슈가에서』와 『미국의 송어낚시』에서 줄기차게 송어(과거)를 끄집어냈던 것과 대동소이하지만 이쪽은 다소 힘을 뺀 수필처럼 상대적으로 덤덤한 기운이 있다. (맥락이 전혀 맞지 않으나, 책을 중반쯤 읽었을 때 영화 《쇼생크 탈출》이 떠올랐다. 앤디의 수수께끼 같은 지령에 따라 벅스톤의 흑요석을 찾으러 가는 레드의 모습.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벗어나 느릿느릿한 버스를 타고, 히치하이킹을 하고, 고동색 웃옷을 벗고 땀을 식히며 끝없이 걸어가는 뒷모습은 무척이나 '느렸다') 특히 삼분의 일쯤 읽다 보면 「낡은 버스」라는 글이 나오는데, 거기서 '나'는 날씨가 좋아 버스를 타게 된다. 그런데 버스 안 승객은 20대인 나와는 달리 죄다 6, 70을 넘긴 노인들뿐이다. '나'도 그들도 불편하고 당혹스럽다. 결국 '나'는 목적지에 가려던 생각을 바꿔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버리고, 그러자 모두가 그것을 반기며 기뻐한다(마치 저 옛날 백인투성이인 버스에 외따로 '침입한' 흑인 같다). 낡고 오래되어 모든 것이 느리게만 흘러가는 시골길 사이로 갑작스레 뛰어든 포드의 대량생산 자동차가 따로 없었던 거다. 이런 '완벽한' 진일보가 한없이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 우리가 타임머신을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니고, 날개 달린 자동차가 건물들 사이를 날아다니는 것도 아니며, 택시 미터기와 선풍기는 모양만 변했을 뿐 예전의 기능을 그대로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문득 몇십 년을 뛰어넘어 먼 과거를 돌이켜보는 순간 그것들은 상당히, '완벽하게' 달라 보인다.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가 보편성을 띠고 있는 건 바로 이런 점에서 기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