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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임동근, 김종배 (반비, 2015)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 8점
임동근.김종배 지음/반비


사무소(주민 센터)가 있는 나라가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하기야 일본에 있을 적만 해도 구야쿠쇼(区役所, 한국의 구청쯤 된다) 외에 접해본 행정기관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저런 기술과 통치의 발달(지금의 행정 서비스는 갈수록 광역화되는데, 심지어 쓰레기봉투 하나도 시나 구 단위로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전화기, 컴퓨터 등 각종 장비들이 많아지면서 지금은 증명서 발급도 집에 앉아서 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고 그간 많은 개편을 거치며 동(洞)의 개념이 다소 옅어진 것 또한 사실이기는 하나 그럼에도 한국에서 가장 기초적인 조직 단위는 (도시의 경우) 역시 동일 수밖에 없다. 그 동사무소의 시초가 1920년 여름 유행한 콜레라 때문이라는데, 해당 구역을 폐쇄하고 오염원들을 죄다 불태웠던 것이 당시 전염병을 처리했던 경찰의 방식이었으니 재산깨나 만지작거리던 사람 입장에서는 엄청난 손실이었단다. 때문에 몇몇 가문들이 모여 경찰을 막고 자체적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사무소가 하나씩 생겼던 것이 현재 동사무소의 시초라는 거다. 지금은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닿아있으면서 꽤 편리하게 민원을 해결할 수 있는 게 바로 주민 센터인데, 과거 크고 작은 선거들에 이 조그마한 조직이 동원되고 동장과 파출소가 엮이며 도시의 말단 세포를 통제했던 것, 바로 부정선거와도 버무려지게 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막걸리, 고무신, 쌀, 비누 등 생필품을 유권자들에게 돌리는 데에 동장이 관여한다. 앞서 말했듯 가장 기초적이고 가장 말단에 있던 집행자, 바로 동장이다. 덧붙이자면 당시엔 동장도 선거로 뽑았던 시절이었는데 1956년 정부통령 선거에 자유당 정권이 동장을 동원했음에도 패하게 되자 동장을 임명제로 바꿔버린다. 작년 교육감 선거에서 보수 진영이 참패하자 직선제를 임명제로 바꾸자는 집권당의 볼멘소리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은 이렇듯 동사무소로 시작해 서울의 확장과 맞물린 행정구역 개편, 아파트와 주택, 지방자치제 등으로 옮겨간다. 이 과정에서 서울의 변신과 함께 경제와 근대화에 간섭하는 것 중의 하나가 고속도로인데,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그린벨트 지정이 연관되어 있다는 이야기 또한 동사무소 한국 유일론(!)과 매한가지로 금시초문이다. 고속도로를 뚫기 위해 그린벨트를 정했다는 건데 그린벨트의 도입으로 개발이 제한될 것이므로 그쪽으로 향할 민간 자본을 다른 방향을 돌리겠다는 의도에서였다는 것. 물론 환경과도 맞닿아 있을 것이긴 하나 애초 한국의 그린벨트 설정은 환경보호가 아니라 고속도로 건설을 위한 출발점이었다고 해야 하겠다. 그런 식으로 생활권이 좁아지고 도시가 확장되면서 주택의 변형 ㅡ 「중심가 쪽은 날고뛰는 신식 도깨비들이나 돌아가는 곳일 터이고, 한다한 고급주택들이 늘어선 그렇고 그런 동은 썰렁하게 '맹견주의'라는 팻말이나 대문에 붙여놓고, 높은 담벼락 위에도 쇠꼬챙이에 삐죽삐죽한 사금파리나 해 박았을 터이고 아래웃집에 삼사 년을 살아도 피차 인사도 없고 냉랭하게 지내기 일쑤이다…….」 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에 나오는 대목이다. 내가 살 집인데도 완성되지도 않은 물건에 돈을 먼저 지불하는 청약저축이란 개념의 다소 이상한 주택시장의 풍경. 주택 소비를 아파트 쪽으로 끌어당기며(이와 중산층에 대한 이야기는 대담자 임동근의 『서울에서 유목하기』에서도 반복된다) 가시적으로 빠르게 사람들의 눈을 후릴 수 있는 제도였으리라 ㅡ 도 이루어진다(하나만 덧붙이자면 주택문제는 노동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논의,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고용의 형태를 바꾸었기 때문에 주택시장 또한 그 틀에서 움직인다는 논의만큼은 짚어야 할 것 같다. 도처에 불안정한 일자리뿐인데 안정되고 고정된 집을 사라고 부추기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아이러니하면서도 복잡다단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책을 읽어보면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국 정부가 중산층을 육성하는 주된 매개로 아파트를 활용했다는 맥락으로 파악될 수 있겠다. 즉 임금이 오르고 복지가 향상되면서 중산층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중산층의 규모를 키우는 경우인데, 분양가와 시장 세력들을 통제하기 위한 힘을 유지시키는 집단이 바로 독재를 지지하는 중산층이란 사실 / p.229) ……대체 이 말도 안 되게만 보이는 정치지리학,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비밀, 생활정치, 수상쩍은 개발 욕망과 도시환경, 도시인. 이런저런 장치를 해부하며 대도시에 건네는 귀엣말이 나로 하여금 내가 어떤 공간에서 살고 있는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도록 인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