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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알코올』 기욤 아폴리네르 (열린책들, 2010)



욤(Guillaume apollinaire) ㅡ 아폴리네르라 하기엔 너무 길고 힘이 드니 개인적인 편의상 기욤이라 하겠다 ㅡ 의 『알코올』은 전반적으로 '자정에 가까운 때'의 느낌이다. 그러나 그 자정을 넘기진 않는다. 그것은 내일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어스름함이다. 사실 모든 문학이란 (어느 정도는) 모호하게 써놓고 심오하게 느껴지기를 바라는 조악한 심보를 잉태하고 있다, 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어쩌면 문학은 그럴 수 있고, 또 그러한 것이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라고도 생각한다. 시 ㅡ 를 비롯한 문학 ㅡ 는 읽는 이에 따라 얼마든지 그 전달의 효용과 수용의 반응이 다른 것 아닌가. 이런 측면에서 그의 시들은 공작의 화려한 깃털만큼이나 깊이를 달리 한 서사와 사유의 흐름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은 개개의 시들을 떼어놓았을 때의 논점이고, 『알코올』이라는 시집으로 한데 엮어놓는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공작의 깃털'이란 표현은 오히려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의 시집으로 완성된 『알코올』은 전체적으로(혹은 총체적으로) 불안함을 지니고 있다 ㅡ 이것은 시구의 배열상태와 구두점의 삭제만 봐도 알 수 있는데, 미끄러지듯 유연한 사유의 흐름을 추구하는 동시에 일종의 불안감의 표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고립된 낱말들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문장들, 작가 자신이 마치 원죄(原罪, original sin)의 희생양인 듯한 인상을 주는 체념들, 그리고 이것들이 한데 엮여 오히려 순결하고 신비한 구성을 맺는다. 나는 『알코올』에 수록된 시 중 「변두리」, 「콜히쿰」, 「궁전」, 「랜더로드의 이민」, 「달빛」, 「병든 가을」을 특히 좋아한다. 이 시들을 따로 보자면 서로 극과 극을 달린다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무척이나 성질이 다른 작품들을 선호한다는 것이 이상하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인간이란 대개 ㅡ '대개'라는 단어가 보편성을 떠나 확대해석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만약 그렇다면, 부적절한 표현이라면, 이 시들은 나에게 추호의 의미도 없으며 내 소감문 역시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할 것이다 ㅡ 그러하지 않은가(아니다, 내가 우매한 탓이다). 어쨌든 이것은 차치하고라도, 『알코올』에는 기욤 스스로가 문학을 하면서도 오히려 문학이란 것은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하며 자신을 옥죄는 칼날이라는 뉘앙스가 여기저기 심어져 있다. 이것은 시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며, 사랑하는(했던) 연인의 결핍으로 인한 초조함, 음울한 자아의 상실, 인간윤리에 대한 문제제기, 계속해서 부르고 외치는 어떤 것 ㅡ 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모든 시(문학)가 그러하겠지만 『알코올』은 유난히 난해하고, 생경하며, 접촉을 꺼려하는 작품들이 ㅡ 이 느낌은 뒤에 가서 변한다 ㅡ 많았다. 그래서 나에게 『알코올』은, 주석을 번갈아가며 눈을 대지 않으면 저 멀리 외딴 섬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그렇게 주석을 시라 여기고 시를 주석이라 여기며 정독한 후, 한 번 더 탐독할 때에는 주석에 기대어 받아들이는 감흥과 기욤이 표면에 그대로 그러낸 이야기가 묘하게 교집합을 만들며 다가왔다(그리고 지금은 속 편히 아무 쪽이나 펼쳐 마음 가는대로 읽고 있다). 나로서는, 기욤은 문학을 사랑하는 만큼 충분히, 그리고 여유롭게 언어유희를 이용할 줄 안다고 생각된다. 그가 이 언어유희와 더불어 애정과 회한, 이미지의 환상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은 마치, 메타포의 향연이라 할 수 있는 크리스토프 바타이유(christophe bataille)의 『지옥 만세』를 연상케 한다. 기욤은 상징성과 순수성, 그리고 그 존재성이 명확한 ㅡ 처음의 난해함이 나중에는 명확함으로 변주된다 ㅡ 작품을 추구하는 것이다. 작품들에서 사제들의 체모를 '이등변삼각형'으로 묘사한다든지, 자신의 나쁜 기억을 '집요한 직조공들'로 은유하는 것은 그의 끌어내는 능력과 방향전환, 시적 서정의 견고한 틀을 보여준다. 애써 작업한 문서를, '저장하기' 버튼을 누르지 않고 닫았더라도 언제든지 새로운 것을 끄집어낼 수 있는 불안과 상실과 결핍을 추구하는 자. 『알코올』의 작가 기욤 아폴리네르다.


덧) 그는 파리에서 피카소(pablo ruiz picasso)를 알게 되는데, 전반적인 분위기와 주제가 피카소의 그것과 닮아 있는 「저녁 어스름」이란 시도 이 『알코올』에 실려 있다(실제로 연관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저녁 어스름」은 떠돌이 광대들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처량하다 못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볼 수 없는 달의 뒤편처럼 애달프다.


▼ 피카소의 「곡예사 가족(family of saltimbanques)」(1905)에는, 피카소 자신과 기욤을 떠돌이 광대와 동일시하려는 의도가 역력히 드러나 있는데 피카소는 어릿광대의 모습을, 기욤은 건장한 광대의 모습을 나타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