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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검은 수첩』 마쓰모토 세이초 (북스피어, 2014)


검은 수첩 - 10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남궁가윤 옮김/북스피어


쓰모토 세이초라면 덮어놓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는 마당에, 지난 『10만 분의 1의 우연』 이후 그의 작품이 출간되지 않은 것에 대해 내심 조마조마하던 차였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한두 권은 나올 것이라는 소식은 들었지만 느닷없이 '박람강기 프로젝트'의 하나로 그의 에세이가 출간될 줄은 몰랐다. 내용인즉슨ㅡ 추리소설이란 무엇일까 혹은 사회파 추리소설이란 무엇일까, 하는 물음에 답한 텍스트라고 보면 되겠다. 내가(우리가) 최근 들어 하고 있던 생각을 그는 꽤 오래 전부터 해 왔다. 이를테면 순문학과 장르문학이라는 용어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소위 '중간 소설'이라 불리는 요상한 존재에 대해서도 세이초는 수상쩍게 다가간다. 특히 '가장 에세이답다' 라고 느껴지는 1장이 이 책에서 탁월하다고 느꼈다. 대체 어떻게 쓰인 작품을 순문학이라 불러야 할는지, 거기에 추리적 요소가 어느 정도까지 틈입하면 순식간에 '순문학 → 추리소설'로 변용되는지에 대해 고민거리를 안긴다. 「……소설은 재미가 본질이다. 재미를 잃어버린 소설에서 독자가 떠나가는 것을 아무도 비난하지 못한다. 오늘날의 문제를 언급하는 소설이라 해도, 추상적으로만 만들어서 관념적인 사상으로 요란하게 꾸몄을 뿐 모래를 씹듯 무미건조하다면, 많은 독자가 꺼리는 것은 당연하다.」 옳은 말이다. 그럼에도 세이초가 묘사한 것과 같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분명히 그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문 사례라서, 이를테면 '평론가들이나 좋아할 법한 소설'이라는 딱지가 붙기 십상인 것이 사실이다. 세이초 자신도 말했듯 소설 자체가 재미있으면 비평가에게 경멸받는 것만 같다. 여기서 말하는 재미란 앞서 언급했던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사상으로 요란하게 꾸민' 것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뭔가 그럴듯한, 무척이나 애매모호해서 그 작품이 대단한 것처럼ㅡ 심지어 문학성이 출중하다는 둥 인간의 본질을 꿰뚫었다는 둥 하는ㅡ  기분이 느껴지는 작품의 대척점에 있는 소설들이다. 물론 이러한 각론이 모든 경우에 딱 들어맞을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의 풍토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그러니까 대사와 행동 위주가 아니라 인물의 감정과 사유를 꾸미고 명확하지 않은 형용사가 남발하는 작품들이 분명 존재하고, 반대로 그렇지 않은 작품 또한 존재하는 법이다. 이런 것을 두고 왈가왈부하고 싶진 않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문학성이냐 현실성이냐, 추상의 모호함이냐 구체적 흥미냐 하는 것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명제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다만, 이 책의 제목이 어째서 '검은 수첩'으로 정해졌는지 궁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