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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닥터 슬립(전2권)』 스티븐 킹 (황금가지, 2014)


닥터 슬립 1 - 8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


두막 열병. '함께 갇힌' 사람들에 대한 증오감으로 발현되어 사소한 다툼, 환각, 폭력 행사, 최악에는 살인까지 벌어진다. 곱상한 문학 앞에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올린 『샤이닝』은 《데스티네이션》의 모태라 할 만한 가운데 먼 훗날 『닥터 슬립』까지 오며 어린 댄을 콜 시어에서 존 콘스탄틴으로 성장시켰다ㅡ 「I see dead people.」 → 「This is Constantine. John Constantine, Asshole.」 ……『샤이닝』의 후속작 치고는 전작에 비해 공포의 강도가 조절되어 있기도 하고, 또 킹 자신이 죽은 잭과 같은 경험(알코올 중독)을 했으며 이번에는 그의 아들이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굳이) 집어넣음으로써 어찌 보면 킹 스스로의 치유 일환으로 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결과적으로 전작과 함께 보면 말랑말랑하다고 해야 할 듯도 하다. 『샤이닝』에서 킹은 무엇을 보여주었던가. 미친놈과 미친 재주를 가진 미친놈의 아들이었다ㅡ 원작자는 한숨을 쉬었을지언정 내 판단으로는 큐브릭의 영화도 꽤 괜찮았다고 생각한다(소설 『샤이닝』의 미친놈 이름은 잭이고 영화 《샤이닝》에 출연해 미친놈 역할을 한 남자 이름도 잭이며, 내가 영화의 백미로 꼽는 것은 웬디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다. 그녀 스스로도 개의치 않고 주위 사람들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그게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그 미친놈의 아들은 커서도 제 버릇 남 못 준 채 고급 기술 '샤이닝'을 한 번 더 발휘한다. 다만 『샤이닝』에서 잭을 고용해 일을 꾸민 것이 오버룩 호텔 자체였다면 『닥터 슬립』에서는 약간 모호해진다. 그러므로 공포란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발생하지만 희한하게도 그 공포를 몰고 오는 자를 가장 친숙한 가족으로 설정했던 전작과는 다르다ㅡ 벌집에 손을 집어넣을 때의 기분을 기억한 채 이번에는 달큼한 꿀도 한 줌 집어 먹는다. 『닥터 슬립』은 샤이닝을 구사할 줄 아는 자들의 머릿수를 조금 더 늘리고, 거기에 요리사 딕과 217호실의 메이시 부인 등을 다시금 소환하고 있으며, 댄보다 더 강력한 샤이닝을 지닌 소녀 아브라를 짝지어주어 역시 샤이닝을 쓸 줄 아는 집단 트루 낫(true knot)과의 대결 구도를 만든다(어딘지 모르게 『조이랜드』의 냄새가 나고, 트루 낫이 다소 손쉽게 처리된 것이 아쉽다). 그리고 전작에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어린 댄은 멀리 떨어진 딕에게 구조 요청을 하고, 여기서는 성장한 댄에게 반대로 어린 아브라가 깜찍한 SOS를 보내면서부터(hEll☺) 이야기는 시작된다. 완결에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린 이 '오버룩 2부작'은 그야말로 소설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시작부터 불길했던 살아 움직이는 호텔 이야기는 펑크 냄새 물씬한 소설로 탈바꿈했고, 철저하게 고립된 일상의 공포를 뽐내던 것은 (당장은 모르지만) 영화 제작 예산을 한껏 부풀려 놓으며 다시 콜로라도의 오버룩에서 끝을 맺는다……. 『닥터 슬립』을 읽는 데에 『샤이닝』 읽기가 반드시 필요한 것만은 아닙니다, 라고는 해도 내가 보기엔 전작의 독서가 동반되어야 할 것만 같다. 아니면 차라리 『샤이닝』만이라도 읽어 보기를. 그러면 자연스럽게 꼬마 대니가 살이 쪘는지 키가 컸는지 여자관계는 무탈한지 궁금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