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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인터넷 빨간책』 백욱인 (휴머니스트, 2015)


인터넷 빨간책 - 10점
백욱인 지음/휴머니스트


자 백욱인이 한국어로 옮겼던 니콜라스 네그로폰테의 『디지털이다』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하루에 최소한 3시간 정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이렇게 몇 년 동안 해왔지만 아직도 가끔씩 컴퓨터에 대하여 좌절감을 느낀다. 컴퓨터를 이해하기란 은행 청구서를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이 책이 나온 것은 20년 전이고, 이제 우리는 컴퓨터와 더불어 스마트폰을 통해 손가락을 적당한 각도로 옴직거리는 것만으로도 월드와이드웹의 거미줄 속을 제멋대로 돌아다닌다. 어디 돌아다니기만 할까. 언젠간 호수만 바라보던 나르키소스마냥 무언가에 홀려 거기에 빠져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나 또한 스마트폰을 소유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하루 몇 시간 동안이나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내 얼굴 아래에 있는 목주름이 독서에 의한 것인지 상념에 잠긴 흔적인지는 구분할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우리는 인터넷과 그것을 쉬 가능케 하는 스마트폰과의 혼연일체를 이루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때때로 기계 팔(셀카봉)에 협력을 요청해 제 얼굴을 찍어대기 바쁘다. 이와아키 히토시의 만화 『기생수(寄生獸)』에서처럼 눈과 입을 떼어 손에다가 붙여버리고 나면 ㅡ 나와라, 만능 팔! ㅡ 스마트폰 다루기가 좀 더 편해질까? 그때가 오면 우리는 반인반기(半人半機)를 버리고 조립(組立)인류란 말을 국어사전에 등재시켜야 할 것 같다.





질량 없이 부유하는 것들의 집합소인 사이버스페이스에선 살을 맞대는 것 말고는 어떤 것도 가능할 듯싶다. 나는 여기에 있는 이 정보(자료)를 저편으로 옮길 수도 있고 키보드를 몇 번 두드려 끼니를 해결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타인을 궁지로 몰고 매도하여 그/그녀로 하여금 죽음으로 이르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런저런 사상가들 혹은 철학자들의 말을 끌어오지 않아도, 그럴 능력도 없고, 이용자의 주권이란 측면에서 볼 때 우리의 수동성은 분명해졌다. 이는 그리 호들갑 떨 일이 아닌데, 나는 인터넷을 통해 일종의 관계를 맺기보다는 그저 다종다양한 배열에 합류하고 만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인터넷 빨간책』이 실은 내가 심오한 척하는 감상을 주절거릴 만큼 슬쩍 읽을 만한 책은 아니어서, 가요의 노랫말을 빌려 앞서 말한 '배열되는 기분(배열 속에 합류되는 기분)'을 설명할 정도의 깜냥만 부려본다. 「공중전화를 걸면서 나누던 우리들의 지난날의 얘기들은 퇴색되고 너, 나, 아니 우리 모두가 핸드폰을 가진 자가 멋있다고 느끼고 있어.」(클론 「다 잘못됐어」) 니콜라스 네그로폰테의 책이 출간되었을 즈음 나온 노래인데, 이 부분만 놓고 보면 '잘못됐다'는 것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가로지르는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사실은 이 뜻이 아닐지라도). 하여간 이 비유가 어울리는지 어떤지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가상의 공간과 더불어 집 밖 거리에서마저 우리의 처신이 희석되는 한편 말을 잘 듣는 집짐승이나 짐말이 되어 임시적 거처를 기웃거리는 뜨내기가 되었다는 것만큼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