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샹떼』 강신주, 이상용 (민음사, 2015)

· 책_롱 2015. 6. 4. 16:36

씨네샹떼 - 8점
강신주.이상용 지음/민음사


때로 『씨네샹떼』와 같은 책은 가혹하다. 『씨네샹떼』엔 이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택시 드라이버>도 없고 이 세계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버디>도 없으며, 이 세계에서 가장 머저리 같은 <위대한 레보스키>도 없다. 히치콕의 <싸이코>보다는 <이창>이 실려 있었으면 했고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보다는 <라임라이트>를 얘기했으면 싶었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라도 내가 줄기차게 인간에 대해 곱씹는 것은, 누가 됐든지 간에 무엇을 만들 때보다 이미 만들어진 것을 가지고 노는 걸 더 좋아한다는 습성이다. 때문에 동시에 드는 생각, 나는 이렇게 봤는데 이자들은 왜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거지(1. 생각의 차이 혹은 전문가 집단의 전문가답지 않음), 정말 감독이 작정하고 의도한 게 맞기나 하는 건가(2. 헛다리 짚기), 고작 시계 하나와 쥐 한 마리를 가지고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것 같은데(3. 꿈보다 해몽), 그럼에도 이 부분은 기발했어(4. 이제야 좀 낫네), 등등.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이런 습성에서 기인한 저마다의 다종다양한 해석은 재미있는 것이며, 그 흥미가 충족되려면 고교 수능 모의고사 언어영역에서 이러쿵저러쿵 미주알고주알 주저리주저리 씨불이는 답안지의 천편일률적 보기 항목과는 반드시 달라야만 할 거다. (특히 이 책에서는 강신주가 조금이나마 어깨의 힘을 뺀 듯한 느낌인데,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비일상을 걷어내는 효과를 얻는 동시에 편해졌다는 것 그리고 그 비일상을 걷어낸 만큼 안정적 일상이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강신주와 이상용은 <싸이코>에서 일반 귀신론을 맛보려 하고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보수의 '지켜라'와 진보의 '변해라'를 읽고자 하며 <동경 이야기>에서는 비극적 무화(無化, 그러나 이건 때로 적극적인 무엇일 수도 있다)를 본다. 그런가하면 책에서 유일하게 간택된 한국영화 김기영의 <하녀> 또한 눈에 띈다. 어딘지 모르게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만(卍)」이 떠오르는데, 다니자키의 소설에서건 김기영의 영화에서건 얽히고설킨 남녀의 섹스어필, 더러움과 추잡함(이것이 모든 인간의 진실 아니던가!)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나는 책에 실린 영화들 중 <하녀>에 관한 부분이 가장 재미있었다. 다만 나는 섹스와 가족의 해체를 연결시키고 싶지는 않으며 섹스라는 행위가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논리 위에서 어떤 양태로 움직이는지가 흥미로울 뿐이다. 물론 이상용의 '이름 없는 하녀' 분석은 꽤나 유효한데, 김기덕의 <나쁜 남자>의 시작에서 한기가 선화에게 강제로 키스하는 것 역시 빌어먹을 계급(의식)을 동등의 것으로 뒤집어버리는 쾌감을 준다(그러고 보니 이 영화도 『씨네샹떼』에는 없군). 이름 없는 하녀가 동식을 추락시키듯 한기 또한 선화를 끌어내리는 거다. 1. 하녀 따위가 집주인 부부를 농락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2. 깡패 따위가 여대생과 벤치에 나란히 앉을 수가 있는가? 어느 쪽이건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주도해 나가는 것은 남녀라는 차이만 있을 뿐 명백히 계급 아래쪽에 있는 자다. 그리고 양쪽 모두 하녀의 지위가 상승되거나 깡패의 지위가 상승되지 않는다. 고매한 척만 할 줄 아는 집주인 부부는 '이름 없는 하녀'와 같이 되고 '나 이래봬도 여대생이에요' 티를 내는 여자는 순식간에 매춘부가 된다. 심지어 <나쁜 남자>의 여대생은 서점에서 몰래 책을 찢어가며 주운 지갑을 가지고 화장실로 도망한다. '이래도 깡패와 여대생이라는 상징이 같은 고깃덩이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를 말하려는 것이 역력하다. 너무도 역력하다) 비단 영화뿐 아니라 소설이건 뭐건 이야기의 매력과 힘은 무궁무진하다. 보통 나는 재미를 얻기 위해 그것들을 취하는데, 개중엔 이런저런 반성과 성찰을 위해 서점과 극장에 가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어떤 경우든 다 좋다. 작가와 감독이 의도했다고 여겨지는 바를 고스란히 인지해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좋다. 심지어 나는 다 보고(읽고) 난 뒤 당최 줄거리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재미있었어, 라고 만족하기만 해도 좋다고 본다. 예술은 만족감을 주건 당혹감을 주건 응당 쾌감과 재미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니겠냐는 것. 예술을 난도질하며 갖가지 방법으로 풀이하는 것과 더불어 그걸 곁눈질하는 것 또한 재미있고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posted by 아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