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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알랭 레몽 (비채, 2015)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 8점
알랭 레몽 지음, 김화영 옮김/비채


가 살던 집. 나뿐 아니라 내 가족이 함께 살던 집. 그 집은 오래전 다른 사람들에게 팔려버렸고, 나는 더 이상 그 집에 살지 않는다. 좋이 이십 년은 발붙이고 살았던 집. 지독했고, 행복했고,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바로 그 집. 내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제들이 함께 잠을 자던 집. 끈덕지게도 기억 속에서 끌어올리는 레몽의 빌어먹을 그 집. 내 집, 우리의 집. 문득 옛날에 내가 살던 집 앞을 지나쳤다는 친구의 말이 이상하게 들린다. 지금 그 집엔 누가 살고 있을까. 언제쯤 우리 가족은 그 집을 떠나왔던 것일까. 그리고 대체 그 집이 어떻게 생겼었더라. 골목에 틀어박혀있고, 마당이랍시고 길 건너 저쪽에 있는 공간에다가, 난방도 되지 않고 좁디좁게 쪼갠 방들이 그득했던 집. 내가 여섯 살 무렵 이사 갔던 집. 그 집에 지금은 누가 살고 있는지 아느냐고? 친구의 물음에 나는 대답하지 못한다. 상관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자꾸만 옛날 생각이 난다. 내 머리통이 자라고, 누이와 형들이 함께 성장하고, 어느 날 아버지가 소형 오토바이를 가지고 오시고, 그러던 그가 돌아가시고, 나는 외국에 나가서 살게 되었다. 레몽은 자신이 어릴 적 살았던 집에서 이제 누가 어떤 기억을 쌓고 어떤 추억을 만들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어쩌다 그 집 앞을 지나는 때에도 걸음을 멈출 수가 없다. 그 집을 쳐다볼 수가 없는 것이다. 저 옛날 아버지의 나이가 된 레몽은 이제 자신의 아버지 꿈을 꾼다. 그것은 어색하기 짝이 없는 경험이고, 그는 여전히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투는 장면을 떠올리며 겁을 낸다. 내가 있었던 공간에 나는 없고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레몽의 친구가 그 집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더라면 그는 별다른 생각 없이 쭉 지낼 수도 있었다. 그 집에 지금은 누가 살고 있는지 아느냐고? 알다마다. 거기엔 내 형제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