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책_롱

『결혼과 도덕』 버트런드 러셀 (사회평론, 2016)

결혼과 도덕 - 8점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사회평론


결혼과 도덕이 함께, 동시에 필요할까. 경제학은 음식을 입수하는 일에 관심을 두지만 인간은 자신과 더불어 가족의 배를 채우기 위해 음식을 구하려 한다는 말로 책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 가족이 성립될 수 있는 여러 방편 중의 하나가 바로 결혼이다. 물론 러셀이 소개하고 있는 성 바울의 결혼관은 지금으로서는 믿기 어렵고도 따르기 힘든 것이긴 하지만. 왜냐하면 성 바울이 제시한 입장은, 결혼이 자손 생산이 아니라 간음을 예방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쪽에 서 있기 때문이다(이로써 현대 생활에서 이성의 지배를 벗어난 세 가지 주요한 활동으로 러셀이 언급한 것 중의 하나가 어느 정도는 명확해진다. 그는 그 세 가지로 전쟁, 사랑과 함께 종교를 말한다). 얼핏 종교와 결혼, 성(윤리)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처럼도 보인다. 또한 혼외에서 이루어지는 섹스가 비도덕적이라는 관점은 종교와 더불어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러셀은 이렇게 적고 있다. 「금욕주의가 지배적인 곳에서 이루어지는 성관계는 추잡하고 거칠어지기 십상이다. 금주법이 시행될 때 음주 행위가 추잡하고 거칠어지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이렇게 해서 사랑의 기교는 망각 속에 묻히고 결혼은 추잡한 것이 되고 말았다.」 특히 성과 그에 따른 윤리적 문제를 다룰 때 흔히 여성은 핍박과 구속받는 입장이 되곤 한다. 이것은 훗날 피임법의 발명과(과거 종교적 압력이 지금보다 더 거셌을 때엔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이라는 무언의 인식과 임신이 두려움의 요소로 작용했을 게 빤하다) 여성해방이라는 과정을 거쳤음에도 여전히 잔존하는 현상이다. 여권운동과 여성의 해방이 이루어진 것에 대해 러셀은 민주주의 이론이 미친 영향과 가정 밖에서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여성이 늘어난 것을 요인으로 본다(결혼과 도덕에 관련해 중요한 것은 여성의 사회적 해방이라고도 덧붙인다). 때로는 헉슬리나 자먀찐, 오웰 등의 소설을 통해 인생과 사랑의 끔찍한 면모를 보기도 했지만(내 기억으로 자먀찐의 소설에서는 섹스조차 당국의 명령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어쨌든 결혼, 도덕, 사랑, 섹스와 그에 따른 인식은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변해왔다. 그러나 결혼이 도덕과 함께 언급되어야 하고 남녀 혹은 인간의 관계에 있어 필요한 것이라면 이혼 또한 매한가지일 터다. 결혼이 반드시 자유 의지 하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법적 구속력이 있는 행위인 까닭이다. 이혼이 결혼을 전제로 하는 제도인 동시에 결혼 제도 내부에서 안전장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러셀의 말은 그래서 인정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 결혼 생활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의 완화라는 측면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럼 행복한 결혼이란 것이 가능한가. 행복한 결혼이란 것은 뭘까.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육체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깊이 있는 친밀감을 유지하는 것일는지 모른다(맺음말). 두 남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정말로 내 아이라는 것을 여성은 오롯이 알 수 있지만(본인의 육체를 통해 낳았으므로) 남성 쪽은 오직 본능이나 과학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그 사실을 확인할 도리가 없다는 식의 농담이 언제까지 유효함의 뉘앙스를 가져야만 하는가.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섹스와 출산과 가족의 탄생이라는 관계 위에서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