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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천사들의 탐정』 하라 료 (비채, 2016)

천사들의 탐정 - 8점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비채


대체가 남자라는 종족에 얼마나 구애되었으면 일곱 편(후기를 대신해 쓴 작품마저)의 단편 제목 끄트머리에 죄다 '남자'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인가, 하는 애교 섞인 볼멘소리를 늘어놓으며 독서를 마친다. 사와자키가 등장하는 유일한 단편집. 멱살잡이를 하고 싶을 정도로 좀처럼 작품을 내놓지 않는 하라 씨의 색다른 글쓰기. 소년, 소녀들이 주요하게 등장하는 이야기들. 일본의 어느 독자는 이 단편집 제목의 '천사'를 어른이 되지 못한 위태로운 인간들일는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책 뒷날개에 적힌 카피('그들은 어쩌면 모두 도시의 그늘을 닮은 천사는 아니었을까')를 다시금 읽고 나니 그럴싸한 풀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금털털한 블루버드와 피스. 판에 박힌 듯한, 특정 인물을 설명하고 상기시키는 데에 좋을 만한 물건들, 그것들도 이제는 새롭게 보일 만큼 정말 오랜만에 만나보는 사와자키다. (뭐, 후기를 대신한답시고 수록한 <탐정을 지망하는 남자>는 대화 일색이긴 하지만 사와자키가 탐정이 된 과정을 담고 있으므로 그것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무턱대고 거액의 현금을 녹슨 우편함에 넣고 사라진 어린 의뢰인, 자식을 잃었고 동시에 자식을 찾는 남자, 딸의 뒷조사를 의뢰받고 미행하는 도중 그 딸이 재차 아버지를 미행하는 현장을 따라가는 사와자키, 그리고 잘못 걸려온 전화로 자살 예고를 들은 뒤 이튿날 석간신문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하는 사와자키. 하나같이 현실 속에서라면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뿐이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이 천사들에겐 탐정이 필요하다. 사와자키가 필요하다. '와타나베 탐정사무소'의 와타나베가 자신이 아님을 끊임없이 설명하는 바로 그 사와자키, 서늘한 잿빛 속에서 천사들을 보듬어 줄 사와자키가(종이비행기로 안부를 전하는 와타나베가 등장한다면 그쪽도 얼마든지 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