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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인체재활용』 메리 로치 (세계사, 2010, 개정판) 인체재활용 - 메리 로취 지음, 권 루시안 옮김/세계사 학창 시절 대학병원에 부속된 장례식장에서 시신을 염(殮)하는 보조 인원을 구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확인되지 않은 풍문에 의하면, 그곳에 들어가면 일단 혼란스러운 정신을 가라앉히기 위해 술을 내어준다고 했고 집에 돌아와서도 며칠 혹은 몇 주간 몸에서 죽음의 냄새가 가시질 않는다고 했다. 내게 이야기를 들려준 친구는 그러면서도 무더운 여름의 찝찝함을 날려 보낼 수 있으며 적지 않은 '쏠쏠한' 돈까지 벌 수 있다고 덧붙였다ㅡ 나는 망자의 몸을 두고 얘기하면서 '쏠쏠하다'는 형용사를 붙이는 것에 약간 거리낌을 느꼈고 동시에 다른 종류의 새로운 찝찝함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과 매한가지로 순전히 호기심 충만한 꼬마둥이였던 나는 그것이 .. 더보기
『신의 손(전2권)』 구사카베 요 (학고재, 2012) 신의 손 1 - 구사카베 요 지음, 박상곤 옮김/학고재 「안락사를 시행하는 의사에게는 '까다로운 치료를 빨리 끝내고 싶다'는 잠재의식이 있다.」 「환자의 고통을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이기심이다. '죽지 마'라는 말이 때로는 '죽어'라는 말보다 더 가혹할 수도 있다.」 존엄사보다 안락사라는 말은 어쩐지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 분위기 조성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의 손』은 문체와 단어구사는 평이한 편이고 때로는 진부한 표현도 눈에 띈다. 또 극 흐름이 원활치 않은 부분도 있으며 참으로 조악한 설정이라는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죽음이라는 화두와 왜 안락사인가 하는 물음에 접근하는 스릴러 요소가 더해져 근사한 의학 미스터리가 되었다(어쩌면 '의학'보다 더 큰 범주에 해.. 더보기
『인간의 조건』 앙드레 말로 (홍신문화사, 2012) 인간의 조건 - 앙드레 말로 지음, 박종학 옮김/홍신문화사 태생적으로 인간이란 고통으로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 고 하면 너무 무책임한 말이려나. 소설은 역사의 바퀴 속에서 버둥거리는 군상의 모습들을 보여주지만 초점은 나약한 개개인에 맞춰져 있다. '인간의 조건'에 어떤 존엄성이 있는가, 하는 질문은 끌어 안은 폭탄과도 같이 위험천만하게만 보인다. 역사책이 아닌 하나의 소설로 읽어야 하기에 인물들의 앙다문 입 속에 들어있는 테러, 인간, 고독, 탈출, 존엄, 노동자, 코뮤니즘 그리고 그(것)들의 조건은 비극의 끝자락에서 유령처럼 희끄무레하게 번지고 있다. 과거 장제스의 공산당 탄압을 묘사하고는 있지만 『인간의 조건』에서는 부차적인 것일 뿐이고, 오히려 '인간의 조건'과 '인간의 극복'을 막연하나마 .. 더보기
『거의 모든 죽음의 역사』 멜라니 킹 (사람의무늬, 2011) 거의 모든 죽음의 역사 - 멜라니 킹 지음, 이민정 옮김/사람의무늬 죽음은 확실하고 삶은 불확실하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삶은 불완전하지만 죽음은 완전함 그 자체」이다. 그런데 조기 매장 ㅡ 사후 섣불리 입관 및 매장이 진행되어 ㅡ 으로 인해 관 속의 망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아직 숨이 붙어 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면 오히려 삶보다 죽음 쪽이 불확실하다고 해야 할지도. 나는 실제로, 무척 진지하게, 이런 일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내가 죽은 뒤 매장이 되었는데 한참 후 내 눈이 번쩍 뜨인다면! 깔끔하게(!)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 죽음 이후의 처리는 화장(火葬)으로 하기로. 이것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게 죽는 방법'이다. 어쨌거나 '불확실한 죽음.. 더보기
『애도하는 사람』 덴도 아라타 (문학동네, 2010) 애도하는 사람 -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문학동네 소화불량에라도 걸린 것처럼 무엇인가에, 어딘가에 이르려 하는 사람. 덴도 아라타는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실제로 '애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의 만남으로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하는 쪽이 중요한 게 아닐까.」 이건 죽음이라는 변수에 대한 솔루션도 아니고 사자(死者)에게 명복을 빌어줌으로써 스스로가 위안받으려 하는 것도 아니다. '애도하는 사람'인 시즈토에게서 자기위안적 의미부여에 대한 측면이 언뜻 비치기는 하지만 그게 궁극적으로 『애도하는 사람』이 시사하는 바는 아니라고 본다. 나는 오히려 일상(삶)의 패러디가 아닐는지, 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본다. 왜냐하면 시즈토의 애도하는 행위 자체를 한마디로 딱 잘라 설명할 수 없거니와 특..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