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라캉

『화차』 미야베 미유키 (문학동네, 2012) 지난 해였던가. 일본에서 제작된 드라마 버전을 봤는데 조금 실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기억으로는 다소 낡아보였고 서사구조도 핀트가 좀 안 맞는달까. 그래서 역시 책으로 읽어야겠다고 결심, 최근 출간된 개정판을 보았다. 읽는 데 두 시간 정도 걸린 것 같으니 일단 몰입도는 상당히 좋다. 나에게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은 기대한 만큼을 웃도는 것들도 많고 ㅡ 사실 (거의) 다가 그렇다. 소비자는 돈을 가지고 있고 자본가는 상품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돈을 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본가는 우리에게 허용된 순간적인 자유나 우월함을 오래 참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소비자의 돈을 다시 회수하지 못할 경우, 잉여가치를 얻을 수 없고 나아가 그 돈으로 생산에 재투자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자본.. 더보기
『망량의 상자(전2권)』 교고쿠 나쓰히코 (손안의책, 2005)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는 코나투스(conatus)의 개념을 ‘자신의 존재 안에서 지속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정의했다. 반면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어땠나. 그는 스피노자의 코나투스를 이렇게 비판했다. 「자기 보존 명제는 틀렸다. 그 반대가 참이다. 바로 살아 있는 것들 전부가 가장 명료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것들은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이상이 되기 위해서 행위한다.」 이것은 물론 니체의 ‘힘에의 의지’라는 명제로 뻗어나가는 개념이 되겠지만, 잠시 『망량의 상자』에서의 가나코와 요리코의 경우에 빗대어 볼까. 철로에 떨어진(혹은 떨어뜨린) 행위는 가나코와 요리코를 이어주는 끈이다. 하나가 다른 하나로 환생한다는 소녀들의 생각에서 말이다. ‘그 이상이.. 더보기
『느림』 밀란 쿤데라 (민음사, 2012, 2판) 곤란하다, 상당히. 젠장. 대관절 뭘 말하고 싶은 거지. 나는 절망한다. ‘이 느림을 느리게’ 읽지 않으면 얼간이가 되겠는 걸, 하면서 말이지. 책이 명쾌하지 않으니 나도 명쾌하게 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건, 음, 이건 ‘성이 호텔로’ 변신한 이야기로구나, 하는 것. 하나의 연극이 펼쳐지는 마룻바닥 위구나. 그리고 사랑 또한 변해버린 이야기. 아니, 사랑과 인간은 그대론가? 「시간이란 무엇인가? 아무도 내게 묻는 자가 없을 때는 아는 것 같다가도 막상 묻는 자가 있어서 그에게 설명하려 하면 나는 알 수가 없다.」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인 게지. 시간이란 놈은 좀처럼 알 수 없는 것이므로 T 부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느림과 한가로움 역시 나로서는 잘 입증이 되질 않는다. 느리게 행동하는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