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좀

『불야성』 하세 세이슈 (북홀릭, 2011) 하세 세이슈(馳星周) ㅡ 홍콩 배우 주성치의 이름을 뒤집어놓고 일본어로 발음한 필명 ㅡ 는 바보 같은 짓을 했다. 『불야성』 단 한 권으로(물론 시리즈가 있긴 하지만) 사람 진을 다 빼놓으려고 작정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내가 알고 있는 하드보일드 쪽이라면 대실 해밋이나 레이먼드 챈들러 정도밖에 없으니 그건 그렇다 치고, 극의 전개와 묘사며 인물의 조형이며 독자까지 배신하는 철저함이며, 뭐 하나 뛰어나지 않은 게 없다. 정말 오랜만이다, 한 자리에서 내리 읽게 만드는 작품은. 하드보일드의 태생적 특질, 여기서는 선택, 선택만이 살 길이다. 어딘가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주인공이 붙잡아야 하는 끈은 바로 거기다. 당연히도 나는 슈미트(Carl Schmitt)를 떠올리게 된다. 「적이란 바로 타인,.. 더보기
『궁극의 리스트』 움베르토 에코 (열린책들, 2010) 출판사의 샘플 교정지를 본 게 지난 8월이었다. 그 때만 해도 『궁극의 리스트』가 이렇게 '징그러운' 책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맙소사!). 200점에 가까운 삽화와, 역시나 징그러운 뱀과 같은 인용 텍스트(인용문을 읽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응당 완벽하게 읽을 수 없으리라 확신하지만, 극악무도한 발췌로 인해, 아직 오지 않은 두려움에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저자가 밝힌, ㅡ 이 책은 '기타 등등'이라는 말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서문) ㅡ 시작부터 엄습하는 '궁극의 두려움.' ㅡ '기타 등등'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축복인 셈이다. 바흐의 「무한히 상승하는 카논」이나 에셔의 판화 작품들을 생각해 보라. 『궁극의 리스트』는 리스트, 즉 '목록의 의미'를 탐구한다. 목록의 의미란 건 어쩌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