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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

『점과 선』 마쓰모토 세이초 (모비딕, 2012) 점과 선 -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모비딕 일본에 있을 적에 도쿄 역에 있는 초밥집에서 일한 적이 있다. 거기에 야스다(安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내가 깨진 유리잔에 손을 다쳤을 때 「뭐! 세 바늘이나 꿰맸다고!」 라며 우울한 얼굴로 걱정을 해주었다. 게다가 그 사람은 천성이 착했으며 약간 어눌한 기운도 있었다. 『점과 선』에서의 야스다는 정반대다. 이쪽은 철두철미한데 내가 아는 야스다 씨는 일일결산을 볼 때 계산을 틀리기도 하는, 말하자면 영락없는 사오십 대의 사람 좋은 아저씨였다. 도쿄 역 야에스(八重洲) 북쪽 출구께 있는 누마즈 우오가시즈시(沼津魚がし寿司)에 가면 야스다 씨를 만날 수 있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하여간에 『점과 선』의 야스다는 그야말로 '시간의 천재'로 등.. 더보기
『잠복』 마쓰모토 세이초 (모비딕, 2012) 잠복 -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모비딕 문학의 본질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만 누락되는 삶 역시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수녀의 일기처럼 순수했던 사람 하나가 웬일인지 범죄자가 된다. 가업을 이으려 착실히 반죽을 개던 선량하기만 한 메밀국수집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를 해한다는 식의(이유야 어쨌든 그런 상황에 몰릴 수밖에 없는) 범죄. 동기는 너무나도 분명하지만 거기서부터 범죄에 이르기까지의 경위가 애달프다. 고도의 경제 성장, 샐러리맨의 급증, 그에 따라 반듯하게 재단된 사회로부터의 사회적 배경과 인간의 정념이, 얼굴 뒤쪽 보이지 않는 손짓의 '거절하지 못할 제안'과 반응해 몰락의 길을 걷고 만다. '증명 시리즈'로 악명 높은(!) 모리무라 세이치(森村誠一)는 이런 말을 했.. 더보기
『일본의 검은 안개(전2권)』 마쓰모토 세이초 (모비딕, 2012) 일본의 검은 안개 - 상 -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모비딕 안개……. 어떤 사실이나 비밀이 밝혀지지 않을 때 우리는 '안개 속에 묻히다'와 같은 관용구를 쓴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이 논픽션은 패전 뒤 일본이 미국에 점령되었던 시대에 일어난 12가지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데, 하나같이 모두 미해결로 끝이 났다(그런데 마찬가지로 한국의 일제강점기 혹은 지금 이 순간에 빗대어도 이 '안개'는 역시 존재하는 것 같다). 이 사건들에는 모두 GHQ(연합국 총사령부)라는 존재가 버티고 있다고 추측되는데 이런 일련의 사건들에서 최대의 이익배당을 챙긴 것 역시 GHQ라고 생각된다(하권 p.360). 내가 보기에, 텍스트를 읽으면 읽을수록 어떻게 해도 결과는 '미해결'이라는 형태로 또는 '안개' 속에 묻힌 채.. 더보기
『D의 복합』 마쓰모토 세이초 (모비딕, 2012) 괜히 장르문학이라고 편을 갈라 사람 위에 책 있고 사람 아래 책 있는 것처럼 말하면, 나는 싫다. 짐짓 도저하게 ‘장르’문학이라는 딱지는 붙여놓았지만 ‘순’문학과 비교하며 순간의 오락거리로 치부해버리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심농(Georges Simenon)은 ‘선전 속 인간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는데 세이초 자신도 ‘환상이 아닌 리얼리즘 안에서’ 미스터리를 쓰고 싶다고 했다(실제로 둘은 동시대를 살았다). 복잡다단한 트릭이나 특수한 환경이 아니라 어디서나 일어날 것 같은, 그것. 세이초 작품은 그래서 ‘여흥’이 아니다. 그런데 그의 작품은 언제나 뻑적지근하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그런가. 이런저런 말을 붙여도 역시 초반은 힘이 조금 든다. 얼마 읽지도 않았는데, 뭐야 이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