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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

『현청접대과』 아리카와 히로 (비채, 2014) 현청접대과 - 아리카와 히로 지음, 홍은주 옮김/비채 소설에서 이야기되는 접대과, 정말 있었다. 고치 현청 홈페이지에 떡하니 '접대과'라는 링크가 있었던 거다. 그중 업무내용이란 항목이 있기에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것은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관광객 접대, 관광지 미화 작업, 관광 가이드, 통역, 관광 안내 및 유도 표지 정비 등. 『현청접대과』의 무대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것도 공공성을 표방한 관청이다. '접대과'라는 다소 솔직한 명칭의 부서가 신설되지만 도대체가 이곳에 소속된 사람들은 융통성이라고는 없다. 소위 철밥통 기질이 충만한, 보신적 내용만 가득 담긴 서류뭉치와 위계체계에 찌든 공무원들이 있을 뿐이다. 그들의 목표는 현의 관광 부흥. 그러나 야심적으로 시도한 관광 .. 더보기
『네메시스』 요 네스뵈 (비채, 2014) 네메시스 -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비채 시리즈라는 건 모름지기 옆에 쌓아둔 채 ㅡ 처음부터 끝까지, 죄다 앉은자리에서 ㅡ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한 권씩 출간될 때마다 읽는 맛이 더 좋다는 사람들의 말은 이따금씩 이해가 안 되는 순간이 있다. 이것은 (내가 조바심 그득한 놈팡이임에는 틀림없지만) 통독의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인물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에 영 재주가 없기 때문이다. 할보르센이 누구였지? 묄레르는? 엘렌은? 볼레르는? 이런 식으로 자문하면서 다시 한 번 전작들의 내용을 꿰어 맞추어야 한다(물론 해리는 제외시켜도 상관없지만 나로서는 그리 쉽지 않은 작업이다). 다행히 전작에서 시작된 하나의 사건이 이 『네메시스』를 거쳐 후속편에서 마무리될 .. 더보기
『박쥐』 요 네스뵈 (비채, 2014) 박쥐 -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비채 특정 시리즈물의 첫 작품을 건드린다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어딘지 모르게 제어하기가 힘들어 보이는 인물들, 다소 다듬어지지 못한 호흡, 복잡함을 택하기보다는 과감히 밀고 나가는 거친 박력. 확실히 『박쥐』에서의 해리는 지금까지 출간된 『스노우맨』이나 『레오파드』에서와는 달리 작가 스스로가 말하듯 통제 불가능한 느낌에 가깝다. 그가 처음 본 여자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꾀는 모습은 후속작들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것이고(그녀들을 낙담하게 만드는 짓거리 역시) 더군다나 낯선 자들과 금세 말을 터 친구처럼 지내는 모양새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조금 더 어리고, 상처를 덜 받고, 무언가를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젊은이들은 다 이런 모양이지ㅡ 물론 상.. 더보기
『더 스크랩』 무라카미 하루키 (비채, 2014) 더 스크랩 -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비채 내 방에도 이 한 부 있다. 일본에 있을 때 구입했던 건데(당연히 일본어판이다) 2009년 5월에 나온 것이라고 되어 있다. 'the alternative guide'라고 해서 특집으로 출간된 녀석인가 보다. 왜 이런 걸 샀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지만 당최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이니까, 하면서 나도 모르게 집어 들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들춰보니 90년대의 미국문화 어쩌고 하면서 너바나, 스매싱 펌킨스, 벡, 펄 잼 등만을 큼직큼직하게 다루고 있다. 그러니 하루키의 『더 스크랩』을 관통하는 80년대와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내가 80년대 태생이라고는 하지만 사물과 인간을 제대로 인지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90년대에 들어서부터.. 더보기
『녹색 고전』 김욱동 (비채, 2013) 녹색 고전 : 한국편 - 김욱동 지음/비채 이규보의 「슬견설(蝨犬說)」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그의 시 「이를 잡다(捫蝨)」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거기에서는 이를 잡아 화로에 넣지 않고 땅에 던지는 것으로 끝내고 만다. 사람이 집이라는 공간 없이 살아나갈 수 없듯 이 역시 사람의 몸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크기에 관계없이 생명이 있는 짐승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똑같이 불쌍히 여기고 덩치가 큰 짐승에서 작은 미물에 이르기까지 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하나같이 다 죽기를 싫어하니, 그러므로 개의 죽음이나 이의 죽음이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는 그의 말이다. 저자가 이것을 어떻게 비유하는가 하면, 앞으로 개고기를 먹지 않겠다던 길손을 소극적 생태주의자로 그리고 이규보 자신을 적극적 생태주의자로 옮겨 놓는다. 그러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