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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채

『미국의 송어낚시』 리처드 브라우티건 (비채, 2013) 미국의 송어낚시 - 리차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비채 내가 아는 어떤 남자는 『미국의 송어낚시』를 읽으면 이 노래가 생각난다고 했다. 란 제목의 이 곡은 피노체트 쿠데타 이후 칠레 민중의 저항 가요로 널리 불린 노래다. 뜬금없는 소리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로부터 발음하기도 힘든 노래 제목을 들은 이후, 나는 줄곧 이 곡을 mp3플레이어에 넣어서 듣곤 했다. 개정판으로 출간된 브라우티건의 소설을 새로이 읽으니 어딘지 모르게 그 남자의 기분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인텔리겐치아나 혁명 따위의 단어를 늘어놓지 않더라도, 이 작품이 실은 전혀 목가적이지 않다는 것을 저 칠레 민중의 노래가 반증하고 있으므로. 더군다나 여기에 시종일관 간섭하는 것이 바로 '송어(낚시)'의 정체와 의미인 것인데, 어쩌면 이탈.. 더보기
『셜록 : 케이스북』 가이 애덤스 (비채, 2013) 셜록 케이스북 - 가이 애덤스 지음, 하현길 옮김/비채 셜록. 셜록. 어쩌다 우리가 홈스를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는가. 셜로키언들의 압사당할 정도의 주석과 멋들어진 삽화로 중무장한 고급 하드커버가 셜록 홈스의 '끝판 왕'이라고 생각했을 적에는, 적어도 그때는 그것이 추론의 과학을 예술로 승화시킨 모델에게 합당한 대우라고 여겼음에 다름 아니다. 환상보다 더 환상 같은 환상을 만들어낸 위대한 자를 단순히 '셜록'이라고만은 부를 수 없었던 것일 터다. 더욱이 밀레니엄을 지나오면서 몇 차례나 거듭된 셜록 홈스 이야기들과 더 이상은 새로울 것이 없었던 책들 또한 쏟아지기를 반복했는데, 그 중에서도 대중의 시각적인 측면을 즐겁게 했던 것은 가이 리치 감독이 연출한 영화 정도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러구러.. 더보기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무라카미 하루키 (비채, 2013)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비채 2001년이었나. 출판사는 다르지만 같은 역자가 옮긴 『무라카미 라디오』 ㅡ 당시에는 심플한 제목이었고, 단 한 권밖에 나오지 않았었다 ㅡ 라는 책이 있었다. 그 후 10년도 더 지난 지금, '무라카미 라디오 시리즈'가 세 권으로 재출간됐다(이 책은 그 첫 번째). 그쪽 사정에 밝지 않으니 지금도 계속 연재를 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에세이만큼은 쭉 써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조만간 그의 새 소설도 국내에 번역될 것 같긴 한데, 소설은 차치하고라도 나는 오히려 에세이 쪽이 더 소설 같다는 기분이 들어서 말이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현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소설, 뭐 이런 논리라면 설명이 되려나. 어떤.. 더보기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미쓰다 신조 (비채, 2012)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비채 염매(厭魅): ①가위 누르는 귀신. ②짚으로 만든 인형(제웅)을 매개로 삼는 주술의 일종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병에 걸리게 하려고 귀신에게 빌거나 방술을 쓰는 행위. 민속학습서쯤 되려나. 이미 '도조 겐야 시리즈'가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과 『산마처럼 비웃는 것』이 번역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이 시리즈의 첫 작품이긴 하지만 시간상 나중에 국내 출간됨으로써 그렇게 느껴질 만도 하다는 생각이다. 아마도 거듭되는 작품에서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부분을 줄여나간 게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든다. 호러와 미스터리는 대립항처럼 보이기도 하고 융합의 접점을 보이기도 하는데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은 후자의 매력을 양껏 포함하고 .. 더보기
『뿔』 조 힐 (비채, 2012) 뿔 - 조힐 지음, 박현주 옮김/비채 먼저 패닉의 「뿔」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머리가 간지러워서 뒤통수 근처를 만져보니 뿔이 하나 돋아났네, 이쯤은 뭐 어때 모자를 쓰면 되지 뭐, 직장의 동료들 한마디씩, 거 모자 한번 어울리네, 어쩐지 요즘엔 사는 게 짜릿짜릿해, 나만이 간직한 비밀이란 이렇게나 즐거워……. 이에 반해 조 힐에게 돋아난 뿔은 위치도 다르거니와 게다가 패닉의 경우처럼 낭만적이지도 않다. 어쩐지, 빌어먹을 『말벌 공장』 같은 책이다. 아, 뭐 그렇다고 정말 '빌어먹을 뭣 같은 책'이란 건 아니고. 그럼 뭐가 문제냐. 종교적 해석? 프로이트 대입? 상징에 또 상징? 맙소사. 이 소설을 읽으려면 정신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거다. 주인공 이그가 태생적으로 트럼펫을 불 수 없게끔 설정된 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