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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미학

『겨울 일기』 폴 오스터 (열린책들, 2014) 겨울 일기 -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열린책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당신은 그런 일이 당신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일어날 리 없다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나도 당신에게만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에 이어질 내용으로 나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만든 바 있다. 「겨울철 빙판이 되어버린 2차선 도로에서 한바탕 신 나게 구른 뒤, 기어 봉에 눈두덩을 찧어 의안을 착용하게 된 달갑지 않은 사건만 하더라도 어떤가. 보라, 결국 그렇게 될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우습지만, 당연하게도 『겨울 일기』에 이러한 잔인함은 없다. 사실 잔인한 묘사가 없을 뿐이겠지만. 이것을 쓰는 것이 여타 소설에 손을 대는 것보다 몇 갑절은 더 힘들었을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ㅡ .. 더보기
『뉴욕 3부작』 폴 오스터 (열린책들, 2006, 보급판) 홈런성 타구로 시작해서 플라이아웃으로 끝난다는 기분, 혹은 이 3부작의 실체는 결국 클리셰가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을는지 모르겠으나, 수록된 세 편의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쫓기는 자라기보다는 숨어있는 자라서, 인간들이라기보다는 유령들이라서 ㅡ 작품의 의미를 어떻게 변주하여 끌어낼 것인가에 그 포인트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 판단에 의해 『뉴욕 3부작』은 인물들의 헤맴의 정점에서 자칫 병리적이기도 한 삶의 문제를 어떻게든 우리의 사고 반경 안으로 이동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볼 수 있게 한다. Q. 내(삶)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 어째서 계속 살고 있는 건가? 1) 시간을 때우기 위해. 2) 어쨌든 별것 아닌 일이므로. 3) 이건 그저 삶일 뿐이니까. 「유리의 도시」의 공간 중 하나인 센트럴 역에서 한 여자는 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