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방인

『웰컴, 삼바』 델핀 쿨랭 (열린책들, 2015) 웰컴, 삼바 - 델핀 쿨랭 지음, 이상해 옮김/열린책들 시효가 만료된 임시 허가증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당신이 당신인 것을 증명할 수도 없고, 반대로 당신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줄 수도 없으며, 그저 공무원 옆구리의 서류철 바깥에서 맴돌 뿐이다. 갈가리 찢긴 접수증도 마찬가지. 왜? 그쪽 역시 유효기간이 끝나버렸으므로. 종이에 찍힌 숫자놀음, 그리고 급여 명세서와 각종 청구서, 은행계좌 출금 명세서와 같은 '생활의 증거들' 없이는, 당신은 당신이 살아있는 것인지 죽어있는 것인지조차 소리 내어 말할 수 없게 된다. 「이민국 국장은 널 믿지 않아. 중요한 건 네가 체류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야.」 삼바가 그의 삼촌으로부터 체류증을 '물려받는' 것 또한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신분증이 없다는.. 더보기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크리스토퍼 히친스 (알마, 2014)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알마 매트리스로 만들어진 푹신한 무덤 위에 올라앉아서도 그는 (굳이) 소설가 앰브로즈 비어스가 말한 '기도'의 정의를 중얼거린다. 「기도: 스스로 무가치하다고 고백하는 탄원자가 자신을 위해 자연의 법칙을 정지시켜달라고 탄원하는 것.」 히친스는 끝까지 이런 식이다……. 그가 식도암으로 죽기 전 써내었던 이 책을 읽으면 어딘지 모르게 나카지마 라모의 소설이 떠오른다. 라모는 매일같이 마셔댄 술 탓에 알코올성 간염으로 입원하게 되는데 그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 바로 『오늘 밤 모든 바에서』이다. 그러나 그는 술 때문이 아니라 뇌좌상과 외상성 뇌내혈종으로 사망했다. 생전에 '나는 계단에서 떨어져 죽을 것'이라 말했다는데 실제로도 계단을 .. 더보기
『이방인』 알베르 카뮈 (열린책들, 2011) 『이방인』을 두고 페이거니즘의 세계를 느낀다면 그거야말로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허위의 도덕을 강요하는 인간들, 전통적 가치의 옹호자들에 의해 사람 한 개(個)가 검토되고 남이 나를 대신하는 소외감. 카뮈가 「사회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릴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 것은 말 그대로 사회 질서란 이름으로 소외당하는 이방인의 삶의 진실성을 자각하게 한다. 사회는 말할 것도 없이 진실성과 허위의 문제를 그 전체적인 넓이 속에서 취급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달리 말하면 허위의 도덕을 무시한 작용은 본질적으로 사회로부터 거부당한다는 거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척 혹은 잘 모르지만 응당 그러한 척, 서로 사회적 관습의 교환을 바라는 여러 가지 집단의 구성원에게 널리 알려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