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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잠복』 마쓰모토 세이초 (모비딕, 2012) 잠복 -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모비딕 문학의 본질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만 누락되는 삶 역시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수녀의 일기처럼 순수했던 사람 하나가 웬일인지 범죄자가 된다. 가업을 이으려 착실히 반죽을 개던 선량하기만 한 메밀국수집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를 해한다는 식의(이유야 어쨌든 그런 상황에 몰릴 수밖에 없는) 범죄. 동기는 너무나도 분명하지만 거기서부터 범죄에 이르기까지의 경위가 애달프다. 고도의 경제 성장, 샐러리맨의 급증, 그에 따라 반듯하게 재단된 사회로부터의 사회적 배경과 인간의 정념이, 얼굴 뒤쪽 보이지 않는 손짓의 '거절하지 못할 제안'과 반응해 몰락의 길을 걷고 만다. '증명 시리즈'로 악명 높은(!) 모리무라 세이치(森村誠一)는 이런 말을 했.. 더보기
『영원의 아이(전2권)』 덴도 아라타 (북스피어, 2010) 영원의 아이 - 상 - 덴도 아라타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어덜트 칠드런(일본에서 사용하는 한정된 의미가 아닌)의 이야기다. 그리고 「부모를 기쁘게 하고 싶다 (...) 의식 밑바닥에, 실은 '네가 열심히 하라고 말했기 때문이다'라는, 분풀이와도 비슷한 분노의 감정이 숨어 있지는 않을까 (...) 봐, 난 이렇게 하고 있어. 어때, 칭찬해, 인정하란 말이야」라는 료헤이의 상념이 이승환의 노랫말 ㅡ '어떡해야 내가 부모님의 맘에 들 수가 있을지'(「가족」) ㅡ 을 만나면 참 우스운 꼴로 변하기도 한다. 실은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숀이 윌에게 했던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It's not your fault.」 아이와 마찬가지로 부모 역시 빈약한 존재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동병상련의 그 '련(憐)'의.. 더보기
『미스터리의 계보』 마쓰모토 세이초 (북스피어, 2012) 미스터리의 계보 -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욱 옮김/북스피어 적잖이 당황했다. 분명 논픽션이라고 했는데 이건 소설이잖아……가 아니었다. 총 3가지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제목도 그럴싸하다. 「전골을 먹는 여자」, 「두 명의 진범」, 「어둠 속을 내달리는 엽총」 ㅡ 카니발리즘을 떠올리게 하는 인육(人肉)의 희생양, 증거를 조작하는 사법부의 병폐, 문명이 단절된 산간 마을에서의 무차별 살인까지. 모두 실제 일어났던 일들인데, 타이틀의 미스터리(mystery)는 '신비'라는 뜻의 미스틱(mystic)에서 온다 ㅡ 계속 하면 misterie, mistere, mysterium, mysterion, mysteria, mystes, muo, mueo까지 갈 테니 여기서 끊자! 어쨌든 신비라는 단어를 내가 가지고 있.. 더보기
『일본의 검은 안개(전2권)』 마쓰모토 세이초 (모비딕, 2012) 일본의 검은 안개 - 상 -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모비딕 안개……. 어떤 사실이나 비밀이 밝혀지지 않을 때 우리는 '안개 속에 묻히다'와 같은 관용구를 쓴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이 논픽션은 패전 뒤 일본이 미국에 점령되었던 시대에 일어난 12가지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데, 하나같이 모두 미해결로 끝이 났다(그런데 마찬가지로 한국의 일제강점기 혹은 지금 이 순간에 빗대어도 이 '안개'는 역시 존재하는 것 같다). 이 사건들에는 모두 GHQ(연합국 총사령부)라는 존재가 버티고 있다고 추측되는데 이런 일련의 사건들에서 최대의 이익배당을 챙긴 것 역시 GHQ라고 생각된다(하권 p.360). 내가 보기에, 텍스트를 읽으면 읽을수록 어떻게 해도 결과는 '미해결'이라는 형태로 또는 '안개' 속에 묻힌 채.. 더보기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 유키 쇼지 (검은숲, 2012)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 - 유키 쇼지 지음, 김선영 옮김/검은숲 박력 만점이다. 1960년대 베트남의 정치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스파이물인데 지금 읽어도 낡은 느낌이 전혀 없는 왕도라고 할까. 속도감도 대단해서 다 읽는 데에 한 시간이 좀 안 걸린 것 같다. 그만큼 텍스트를 읽는 것에는 불편함이 없다. 인물들의 개성도 잘 드러나 있고. 1차적인 발단은 동료의 실종이지만 그 후 주인공과 착각을 일으켜 대신 죽어간 남자의 한 마디가 소설을 이끈다.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 이제야 탁월한 타이틀이 빛을 발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마이너스 인간들의 배신과 배신, 또 배신. 외려 천진난만하게까지 보이는 리엔의 육체가 베트남이란 덩어리와 겹쳐질 정도로 모리가키를 위시해 죽은 가토리, 토, 훈, 득 등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