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은씹어야제맛이지

『현청접대과』 아리카와 히로 (비채, 2014) 현청접대과 - 아리카와 히로 지음, 홍은주 옮김/비채 소설에서 이야기되는 접대과, 정말 있었다. 고치 현청 홈페이지에 떡하니 '접대과'라는 링크가 있었던 거다. 그중 업무내용이란 항목이 있기에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것은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관광객 접대, 관광지 미화 작업, 관광 가이드, 통역, 관광 안내 및 유도 표지 정비 등. 『현청접대과』의 무대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것도 공공성을 표방한 관청이다. '접대과'라는 다소 솔직한 명칭의 부서가 신설되지만 도대체가 이곳에 소속된 사람들은 융통성이라고는 없다. 소위 철밥통 기질이 충만한, 보신적 내용만 가득 담긴 서류뭉치와 위계체계에 찌든 공무원들이 있을 뿐이다. 그들의 목표는 현의 관광 부흥. 그러나 야심적으로 시도한 관광 .. 더보기
『포수란 무엇인가』 김정준 (브레인스토어, 2014) 포수란 무엇인가 - 정철우.김정준 지음/브레인스토어 프로야구가 출범한 지 33번째 맞는 봄이다. 사회인 야구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고 또 올해는 2012년에 이어 다시 한 번 700만 관중 시대에 도전하는 해이기도 하다. 각종 매체가 구단과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아 만든 책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이때에, 다소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 책 한 권이 출간되었다. 일단 저자의 이름부터 묵직하다. '야신 김성근 감독의 아들'과 '전력분석의 대가'로 더 알려진 김정준 현 SBS 해설위원이다. 그러나 이 책이 더 눈에 띄는 점은 잔디 위에 있는 모든 선수들을 한 번에 볼 수 있으며, 그라운드의 사령탑 또는 안방마님이라고도 불리는 단 하나의 포지션만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바로 시속 150㎞에 육박하는 강속.. 더보기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크리스토퍼 히친스 (알마, 2014)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알마 매트리스로 만들어진 푹신한 무덤 위에 올라앉아서도 그는 (굳이) 소설가 앰브로즈 비어스가 말한 '기도'의 정의를 중얼거린다. 「기도: 스스로 무가치하다고 고백하는 탄원자가 자신을 위해 자연의 법칙을 정지시켜달라고 탄원하는 것.」 히친스는 끝까지 이런 식이다……. 그가 식도암으로 죽기 전 써내었던 이 책을 읽으면 어딘지 모르게 나카지마 라모의 소설이 떠오른다. 라모는 매일같이 마셔댄 술 탓에 알코올성 간염으로 입원하게 되는데 그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 바로 『오늘 밤 모든 바에서』이다. 그러나 그는 술 때문이 아니라 뇌좌상과 외상성 뇌내혈종으로 사망했다. 생전에 '나는 계단에서 떨어져 죽을 것'이라 말했다는데 실제로도 계단을 .. 더보기
『대구』 마크 쿨란스키 (RHK, 2014) 대구 - 마크 쿨란스키 지음, 박중서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과거 세 차례에 걸쳐 벌어진 소위 '대구 전쟁(the Cod Wars).' 생선의 이름에 전쟁이란 단어를 붙이다니 이상할 법도 하건만 실상을 알고 보면 자연히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우리가 2차 세계대전이라 부르는 지루하고도 커다란 전쟁이 막을 내리고 나자 북대서양의 어족은 크게 늘어났고, 더불어 이때 각국의 어업에 관련된 '영해 문제'가 대두하게 된다. 새로운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영해선 안쪽으로 들어온 선박을 나포하고, 대륙붕에 기인한 영해에 관해 국제사법재판소에 중재를 요청하며, 해안 경비대 선박에 무기가 장착되는가하면 이 대구 전쟁은 공해상에서의 '범퍼카' 게임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변해버렸다.(p.200)ㅡ 지난했던 시간이 흐른.. 더보기
『파계 재판』 다카기 아키미쓰 (검은숲, 2014) 파계 재판 -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검은숲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무엇보다 속독과는 거리가 먼 내 습성을 우선 탓해야 할 테지만, 든든하게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잠이 들 때까지ㅡ 꼭 이 정도의 시간이라면 깔끔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백 퍼센트 법정에서만 일어나는 일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딱딱하게 굳은 느낌이 없고, 꽤 오래 전에 출간된 작품임에도 거리감이라고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현직 판사(동시에 그는 추리 소설가이다)마저 어느 작품보다 실제에 가깝고 법적 오류 또한 전혀 없다고 하니 이야기의 무대만큼은 구조가 완벽한 셈이다. 한 남자가 법정에 섰다. 두 번의 살인과 두 번의 사체유기. 그는 앞서 발생한 사건에서의 사체유기 한 건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죄를 부정한다. 소설은 법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