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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20세기 사상 지도』 대안연구공동체 (부키, 2012) 20세기 사상 지도 - 대안연구공동체 기획/부키 생산의 힘이 역사를 만든다며 계급투쟁을 부르짖었던 맑스는 그것 때문에 보드리야르로부터 비판당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말년에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맑스주의자가 아니다.」 ……철학책을 (두서없이) 읽다보면 '지금의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의 내가 아닌'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갈 때가 분명히 있다. 불한당들을 모조리 때려눕히고 유유히 사라지는 히어로를 만끽한 다음 영화관에서 나올 때처럼. 하지만 그럼에도, 철학은 수많은 은유로 점철된 소설이나 시에 비해 더 어렵게 느껴질 때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철학을 접하려면 끈기가 필요하다. 아주 약간의 끈기가. 『20세기 사상 지도』는 연대.. 더보기
『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황금가지, 2012) 제노사이드 -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황금가지 도미노 요시유키 감독의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에는 '뉴타입(new type)'의 개념이 등장하는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인간으로부터 새롭게 발현된 정신능력, 제6감, 초능력, 텔레파시, 천리안 등의 공감각(共感覺) 능력에 대한 것이다. 아니면 《인랑》 ㅡ 이것을 예로 드는 것은 좀 꺼려지지만 ㅡ 은 또 어떨는지. 이른바 '평행세계(parallel world)'를 도입했으니까. 이것도 아닌가? 그럼 브라이언 레반트의 《베토벤》은? 그야말로 '슈퍼 개'가 주인공으로 나와 불법 동물실험을 하려는 작자에게 한방을 날리는 영화 말이다. '인류보완계획'을 내세운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또 어떻고……. 『제노사이드』에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집착하던 신기루 같.. 더보기
『페르소나』 그웨나엘 오브리 (열린책들, 2012) 페르소나 - 그웨나엘 오브리 지음, 임미경 옮김/열린책들 ㉠ 관념운동(觀念運動)처럼 써버리고야 마는 엇비낀 페르소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갖가지 목소리들에 의해 굳건해진 세계, '소설로 쓸 것'이란 아버지의 메시지. ㉡ 낡은 종이가 발산하는 광채는 한순간에 재탄생이란 영원성으로 변모하지만 아버지의 딸이 느끼는 내부에서의 되살아남은 과연 무엇일까. ㉢ '더 이상은' 그 누군가가 되지 않을 권리, 위험천만한 자갈투성이의 상념들, 그리고 아버지의 자식이 여기, 이렇게 남아있다. ㉣ 루 ㅡ 이름, 아버지로부터 받은 성 앞에 붙는 이름, 더 정확히 말해 아버지의 딸이 아기였을 때 그가 딸을 부르던 이름 ㅡ 의 의식을 파편으로 만들어버리는(재구성하는) 과거와 현재. ㉤ 메모 덩어리는 그렇게 역사를 쌓고, 시간.. 더보기
『이진경의 필로시네마』 이진경 (그린비, 2008, 개정판) 아, 좀 쉽게 풀어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근본적으로 영화 얘기를 하고 있긴 한데 거기에서 뽑아낸 철학적 구조가 중심이 되니, 뭐 철학 용어가 나와도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필로시네마』는, 살짝 늘어붙은 '탈주의 철학에 대한 10편의 영화'라는 부제처럼 온갖 스펙트럼의 탈주를 갖고서 진행되는 영화 이야기다. 인간은 뭐든 사유하기 마련인데 여기선 빠르게 동작하는 이미지에서 어떤 사유를 뽑아낼 수 있을까, 하는 게 문제가 된다. 그것도 '탈주'를 ㅡ 삶으로든 삶에서든, 어느 쪽이든 간에. 그러니까, 이건 철학서다……. 근데 그 '탈주'라는 게 사실은 에셔(Maurits C. Escher)의 판화처럼 돌고 도는 것이라면? 그래서 어떻게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면? 탈주.. 더보기
『위대한 질문』 레셰크 코와코프스키 (열린책들, 2010) 『위대한 질문』을 펴낸 열린책들의 편집자 노트(웹 카페를 통해 확인)를 보면 이 책 자체를 놓고 '위대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왜 이 책에 악행을 저지르는가? 이 책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어째서 아무것도 없는데 무언가를 만들려 하는가? 최선의 편집 형태는 무엇인가? ……그럼 나도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을 읽는 나는 지금 여기에 실재하는가? 나는 이 책을 읽는 행위로써 행복한 것인가? 나는 이 책의 텍스트를 믿어야만 하는가? ……에픽테토스의 철학은 불교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닮아있다. '하늘을 긍정하고 운명을 사랑하라', 또는 '운명의 긍정'이란 하나의 구절로서 표현되는 그것이다. 그래, 이건 쉬이 생각할 수 있는 명제다. 그럼 고르기아스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고 헤라클레이토스 ㅡ..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