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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

『J. 하버쿡 젭슨의 진술』 아서 코난 도일 (북스피어, 2014) J. 하버쿡 젭슨의 진술 -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송기철 옮김/북스피어 심상찮은 넘버링 000부터 시작해서 007번이자 8권 째인 『J. 하버쿡 젭슨의 진술』까지 왔다. 솔직히 말해 코난 도일은 그간 (어쩔 수 없이) 셜록 홈스를 제외하면 물음표만 둥둥 떠다니는 작가였다. 정말이지 감가상각 없이 딱 그 정도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의 수상쩍은 작품집이 출간되었고, 내용마저 머리를 싸맨 채 범인을 밝혀야 하는 '추리물'이 아니었다. 해양구조 컨설턴트(salvage specialist)를 표방한 트래비스 맥기도 아닌 바에야 '해양 미스터리'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기에는 다소 느른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출판사 사장님의 인용을 일부 재인용하자면ㅡ 망망대해를 느릿하게 떠도는 배 한 척, 선장도 선원도 없고 사.. 더보기
『파계 재판』 다카기 아키미쓰 (검은숲, 2014) 파계 재판 -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검은숲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무엇보다 속독과는 거리가 먼 내 습성을 우선 탓해야 할 테지만, 든든하게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 잠이 들 때까지ㅡ 꼭 이 정도의 시간이라면 깔끔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백 퍼센트 법정에서만 일어나는 일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딱딱하게 굳은 느낌이 없고, 꽤 오래 전에 출간된 작품임에도 거리감이라고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현직 판사(동시에 그는 추리 소설가이다)마저 어느 작품보다 실제에 가깝고 법적 오류 또한 전혀 없다고 하니 이야기의 무대만큼은 구조가 완벽한 셈이다. 한 남자가 법정에 섰다. 두 번의 살인과 두 번의 사체유기. 그는 앞서 발생한 사건에서의 사체유기 한 건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죄를 부정한다. 소설은 법원.. 더보기
『네메시스』 요 네스뵈 (비채, 2014) 네메시스 -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비채 시리즈라는 건 모름지기 옆에 쌓아둔 채 ㅡ 처음부터 끝까지, 죄다 앉은자리에서 ㅡ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한 권씩 출간될 때마다 읽는 맛이 더 좋다는 사람들의 말은 이따금씩 이해가 안 되는 순간이 있다. 이것은 (내가 조바심 그득한 놈팡이임에는 틀림없지만) 통독의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인물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에 영 재주가 없기 때문이다. 할보르센이 누구였지? 묄레르는? 엘렌은? 볼레르는? 이런 식으로 자문하면서 다시 한 번 전작들의 내용을 꿰어 맞추어야 한다(물론 해리는 제외시켜도 상관없지만 나로서는 그리 쉽지 않은 작업이다). 다행히 전작에서 시작된 하나의 사건이 이 『네메시스』를 거쳐 후속편에서 마무리될 .. 더보기
『박쥐』 요 네스뵈 (비채, 2014) 박쥐 -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비채 특정 시리즈물의 첫 작품을 건드린다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어딘지 모르게 제어하기가 힘들어 보이는 인물들, 다소 다듬어지지 못한 호흡, 복잡함을 택하기보다는 과감히 밀고 나가는 거친 박력. 확실히 『박쥐』에서의 해리는 지금까지 출간된 『스노우맨』이나 『레오파드』에서와는 달리 작가 스스로가 말하듯 통제 불가능한 느낌에 가깝다. 그가 처음 본 여자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꾀는 모습은 후속작들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것이고(그녀들을 낙담하게 만드는 짓거리 역시) 더군다나 낯선 자들과 금세 말을 터 친구처럼 지내는 모양새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조금 더 어리고, 상처를 덜 받고, 무언가를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젊은이들은 다 이런 모양이지ㅡ 물론 상.. 더보기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미쓰다 신조 (비채, 2013)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비채 워낙에 '고립', '민속 신앙'과 같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지라 도조 겐야 시리즈는 꼭꼭 찾아 읽고 있다. 번역된 시리즈 중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다음으로 흥미롭다고는 생각하나, 끝까지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풀리지 않는 것들이 꽤 많다. 끝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의 행방, 표지를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어 놓은 것(첫 번째 의문과 이어져 있기라도 한 것일까), 소후에 시노가 느낀 '무엇'의 정체…… 만약 이것들이 단지 독자된 입장에서만 느낀 다소 비약된 것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부러 의도된 것이라면, ㅡ 전작에 이어 재등장한 소재 또한 있으니 ㅡ 그렇다면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의 속편은 반드시 나오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