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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미야베 미유키 (북스피어, 2015)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스기무라의 인생행로야 예견된 것이긴 했다. 그런 식의 부적합한 생활이 가능할 리 없으니까 말이다. 연작이니만큼 더치고 더친 이야기들의 과정에서 스기무라의 터닝 포인트가 어느 시점에서 나올까 하는 것만이 중요한 과제였을 듯하다. 『누군가』와 『이름 없는 독』에 이은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 세 번째 작품. 운전기사의 죽음과 뺑소니, 청산가리에 의한 죽음에 이어 이번엔 다단계다. 다만 『화차』에서만큼의 집약된 표현이 다소 아쉬운데, 『솔로몬의 위증』에서 느꼈던 감정과 대동소이해 '역시 미야베 미유키는 시대물인가' 하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한 소설이 될 것만 같다. 버스가 통째로 납치되고, 느닷없이 권총을 든 노인이 나타나는가하면 나중에는 경찰의.. 더보기
『화차』 미야베 미유키 (문학동네, 2012) 지난 해였던가. 일본에서 제작된 드라마 버전을 봤는데 조금 실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기억으로는 다소 낡아보였고 서사구조도 핀트가 좀 안 맞는달까. 그래서 역시 책으로 읽어야겠다고 결심, 최근 출간된 개정판을 보았다. 읽는 데 두 시간 정도 걸린 것 같으니 일단 몰입도는 상당히 좋다. 나에게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은 기대한 만큼을 웃도는 것들도 많고 ㅡ 사실 (거의) 다가 그렇다. 소비자는 돈을 가지고 있고 자본가는 상품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돈을 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본가는 우리에게 허용된 순간적인 자유나 우월함을 오래 참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소비자의 돈을 다시 회수하지 못할 경우, 잉여가치를 얻을 수 없고 나아가 그 돈으로 생산에 재투자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자본.. 더보기
『흑백』 미야베 미유키 (북스피어, 2012) 이를테면 텍스트와 서브텍스트의 맞물림. 그거다. 미스터리나 이런 괴담이 갖는 강력한 헤게모니는 현실에서 느끼는 두려운 마음을 일종의 (설명하기 힘든) 형태로 만들어준다는 것에 있다고 여기고 싶다. 뭔가를 맞닥뜨리고 인식하고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단숨에 퓽, 하고 쏟아내는 거다. 어떤 생각들을 전부 마음에 넣어 뚜껑을 닫아버리면 그만이지, 하고 쉬이 치부할 수 없다. 뭔가를 말한다는 것은 짐을 내려놓는다는 뜻도 될 수 있으며, 타자에게 마음을 내비침으로써 그 두려움이 내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재확인할 수도 있는 까닭이다. 마지막 이야기 「이에나리(家鳴り)」에서 저택을 지키는 관리인 ㅡ 왠지 웃을 수만은 없는 ‘끝판 왕’ 같은 느낌인 걸 ㅡ 이 저세상과 이 세상을 잇는 길목에서 손님을 맞이한다는 것을 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