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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콘트라베이스』 파트리크 쥐스킨트 (열린책들, 2000)



트라베이스 연주의 그것처럼 포르테로 시작해서 피아노, 피아니시모, 그리고 메조포르테와 포르티시모를 넘나드는 정서의 변화가 강하게 느껴진다. 중학교 도서관에서 처음 보았지만 딱히 감흥이랄 것도 느끼지 못하고서 책을 덮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ㅡ 책이 무척이나 얇은 것이, 당시 나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스물을 갓 넘겼을 때 신판을 구입해 읽고, 또 읽고, 아무 페이지나 열어 읽었다. 그래도 항상 『콘트라베이스』가 내게 주는 정서는, 그 강약이 다르더라도, 시종일관 스산하고 휑뎅그렁한 어떤 것이었다 ㅡ '생각한다는 것은 아무나 심심풀이로 해보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p.96) 콘트라베이스를 낀 사내는 결을 내기도 하고 맥주를 마시기도 하며, 지극히, 무척이나, 궁극의 평범한  ㅡ 고통마저 평범하게 느껴진다 ㅡ 일상의 선로 위에서 연기 한다(그러면서도 삶의 사주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는 맥주를 들이켜려다 이야기를 시작하고, 나는 그의 연주를 듣는다. 마그리트의, 화폭 안의 이야기와 창 밖의 실재의 구분이 모호한 그림처럼, 그가 연주하는 콘트라베이스는 연모하는 성악가와, 이야기를 계속 하게끔 해주는 맥주와, 언젠가는 박살을 내고야 말겠다는 콘트라베이스 사이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ㅡ 그리고는 x를 사랑하면서도 x로 인해 실망하고, y를 사랑하면서도 y로 인해 낙담한다. 그가 뜯는 연주와 그가 내쉬는 말은 (참모습을 은폐하는)바벨의 언어가 아닌 알레테이아로 올곧게 드러나고, 거기서 우리로 하여금 일종의 의식 작용을 하게 한다.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성질들은 이러한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 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것처럼. 이러한 성질들은 쉬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끈끈하면서 저음인 화음을 만든다. 그리고 그 화음은 연주가 아니라 글로 멋지게 완성되었다. 아주 조그만 공간 안에서 완성되는 주인공의 삶은 너무나도 연약해 다치기 쉽지만, 그래도 그는 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