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스크랩』 무라카미 하루키 (비채, 2014)

· 책_롱 2014. 2. 19. 21:56
  • 잘 보고 갑니다~ 추천 누르고 갈게요 ^^

    BlogIcon 전포 2014.02.21 19:24 신고
  • 아니.
    그 역 커피 자판기 정말 매력있는데요? ^^ 80년대에 일본 커피숍 커피가 갑이었다니... @@

    BlogIcon 은령써니 2014.04.15 21:39
    • 그러게나 말입니다. 다시 한 번 마셔보고 싶은데 말이죠ㅎㅎ

      BlogIcon 아잇 2014.04.16 11:21 신고 DEL


더 스크랩 - 6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비채


방에도 <롤링스톤>이 한 부 있다. 일본에 있을 때 구입했던 건데(당연히 일본어판이다) 2009년 5월에 나온 것이라고 되어 있다. 'the alternative guide'라고 해서 특집으로 출간된 녀석인가 보다. 왜 이런 걸 샀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지만 당최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롤링스톤>이니까, 하면서 나도 모르게 집어 들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들춰보니 90년대의 미국문화 어쩌고 하면서 너바나, 스매싱 펌킨스, 벡, 펄 잼 등만을 큼직큼직하게 다루고 있다. 그러니 하루키의 『더 스크랩』을 관통하는 80년대와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내가 80년대 태생이라고는 하지만 사물과 인간을 제대로 인지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90년대에 들어서부터였을 테니. 그런데 이중에도 무릎을 탁, 하고 쳤던 것은 바로 도쿄의 커피에 대해서였다. 원래대로라면 커피숍에서 마시는 커피를 이야기해야겠지만 나는 좀처럼 커피숍에 가질 않는다. 나란 종자는, 무릇 커피란 것은 동전 몇 개를 짤랑거리면서 자동판매기에 넣은 다음 버튼을 눌러 '주는 대로'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메아리(亀有)에 살고 있을 때였다(여기서 반년을 살다가 신주쿠로 이사했다). 일단 출근하기 위해 역 개찰구를 지나 플랫폼에 올라서면, 차량이 들어오는 선로 바로 옆에 자그마한 매점과 자동판매기가 있다. 심지어 재떨이까지 있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흡연자들에게는 친절한 역임에 틀림없다 ㅡ 물론 금연 정책에 의해 훗날 없어지긴 했지만 그것 때문에 이사를 간 것은 아니다. 나는 매일같이 가메아리 역 플랫폼에 도착하면 일단 150엔을 챙겨 자동판매기 앞에 선다. 그러고는 동전을 하나씩 흘려 넣으면서 그것들이 쨍그랑 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감상하곤 했는데, 저 앞에서는 이미 몇몇 남녀들이 제각기 담배를 하나씩 꼬나물고 있는 것이 보인다. 자, 그리고 드디어 여기서 신통방통한 일이 벌어진다. 커피의 양과 설탕, 프림, 얼음을 넣을 것인지 말 것인지 등등을 조절해야 하는 것이다(총 다섯 단계 정도로 조절이 가능하다). 그야말로 흡연자뿐만이 아니라 커피 애호가들에게도 환영받을 일이 아닌가. 맛도 아주 좋아서 굳이 커피숍에 들르지 않더라도 빠듯한 출근길의 달큼한 시간을 보낼 수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손 치더라도 하루키가 추천하는 아오야마의 '다이보'나 그가 <뉴욕타임스>에서 인용한 요요기의 '톰스', 신주쿠의 '고히야' 같은 곳이라면 한 번쯤은 가 보고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양반은 도쿄의 커피가 유럽이나 미국의 각 도시에 비해 압도적으로 수준이 높다고까지 장담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80년대의 일이다. 당시의 커피숍들이 지금까지 남아있을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니까 결론은, 다시 한 번 제목처럼 '스크랩'된 기억들일 뿐인 거다. 무엇이든 간에 오래토록 지속되는 것도 있겠고 그렇지 않고 쉬 사라지는 것들도 많다 ㅡ 후자의 경우가 압도적일 테지만. 그의 말대로 '오오, 이런 일이' 하는 식으로 마음 편하게 책장을 넘기다 보면 늙수그레한 아저씨마냥 '그땐 그랬지' 하고 인정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나는 80년대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 스크랩은 아주 맛좋은 장편(掌篇)처럼 읽히기도 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쓰다 보니 어딘지 모르게 하루키의 커피가 아닌 내가 맛보았던 커피에 대해서만 추억을 늘어놓은 꼴이 되어버렸다. 가메아리 역 커피 자판기에 누가 관심을 가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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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무라카미 하루키 (비채, 2013)

· 책_롱 2013. 6. 9. 13:39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 8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비채


2001년이었나. 출판사는 다르지만 같은 역자가 옮긴 『무라카미 라디오』 ㅡ 당시에는 심플한 제목이었고, 단 한 권밖에 나오지 않았었다 ㅡ 라는 책이 있었다. 그 후 10년도 더 지난 지금, '무라카미 라디오 시리즈'가 세 권으로 재출간됐다(이 책은 그 첫 번째). 그쪽 사정에 밝지 않으니 지금도 계속 연재를 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에세이만큼은 쭉 써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조만간 그의 새 소설도 국내에 번역될 것 같긴 한데, 소설은 차치하고라도 나는 오히려 에세이 쪽이 더 소설 같다는 기분이 들어서 말이다.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현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소설, 뭐 이런 논리라면 설명이 되려나. 어떤 작가가 됐건 소설보다는 조금 어깨에서 힘을 뺀 듯한 논조의 글을 읽게 되면 새롭고 재미난 발상이란 것이 더 풍경화처럼 느껴지는 까닭이다(그렇다고 푸근하다거나 반대로 뒤통수를 때릴만한 충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ㅡ 아베 고보의 작품에서였나, 풍경화는 자연 경관이 살벌한 지방에서 발달하고 신문은 인간관계가 소원한 산업 지대에서 발달한다는 문장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우리도 매일같이 자고 일어날 때 살풍경한 느낌을 받고 있으니까 말이다. 더구나 에세이집이란 건 태생이 단속적이라서 화장실에 가거나 맥주를 마시거나 야구 중계를 보는 틈틈이 읽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어지간한 중편 소설보다는 빨리 읽게 된다. 아마도 흡연자의 경우 담배 한 개비 피우는 사이에 두세 편 정도는 후딱 읽어버리지 않을까(나는 그렇다). 그래서 아무 곳에나 도그지어를 만들어 놓고 나중에 다시 읽는다고 해도 '이게 무슨 말이지'와 같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차피 소설 같긴 하지만 분량이나 흐름으로 따지면 장편(掌篇)의 느낌일 테니까. 하루키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에 '안녕을 말하는 것은 잠시 죽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대사가 있다.」고 썼다. 그는 '안녕'을 말해도 바로 죽지는 않는다고 토를 달았지만 실은 어떨까. 일단 한번 말해 볼까. 안녕? 그럼 다음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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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 히라야마 유메아키 (이미지박스, 2008)

· 책_숏 2013. 1. 1. 12:22
  • 불편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재미는 있죠.
    확실히 인간은 자극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듯요...^^;;;

    BlogIcon 블랑블랑 2013.03.25 21:45 신고
    • 어지간한 소설은 전부 불편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불쾌하지는 않으니 이것도 그러지 않을까요? ㅎㅎ

      BlogIcon 아잇 2013.03.26 10:39 신고 DEL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 - 8점
히라야마 유메아키 지음, 권일영 옮김/이미지박스


지 (잘) 모르겠어도 좋다_멍텅구리 같은 이 세계에서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어째 이 모양인가_라고 해도 재미있는 건 재미있는 것. 나카지마 라모의 『인체 모형의 밤』이 그나마 가닥이 잡힌 모양새였다면 이쪽은 도대체가 왕도(王道)가 보이질 않는다_뭐가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라는 거야……. 하지만 이와 비슷한 기분을 체험한 적이 있는데 바로 잭 스나이더 감독의 《새벽의 저주》_얼개가 분명하지만 그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액션이었으니까. 《새벽의 저주》에 관해 내가 들었던 최악의 말은_내용도 없는 이딴 영화_였다. 그럼 이것도_내용도 없는 이딴 소설_이 될 거다. 뭐 어때?



posted by 아잇

『점과 선』 마쓰모토 세이초 (모비딕, 2012)

· 책_롱 2012. 10. 9. 16:57
  • 저도 그 '4분가의 트릭'에 도전해보고 싶어집니다.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행복한 수요일 보내세요.

    BlogIcon 풀칠아비 2012.10.10 14:06
    • 자신 있게 권해드립니다. 4분간의 트릭에 꼭 도전해 보시길 :)

      BlogIcon 아잇 2012.10.10 19:03 신고 DEL


점과 선 - 8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모비딕


본에 있을 적에 도쿄 역에 있는 초밥집에서 일한 적이 있다. 거기에 야스다(安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내가 깨진 유리잔에 손을 다쳤을 때 「뭐! 세 바늘이나 꿰맸다고!」 라며 우울한 얼굴로 걱정을 해주었다. 게다가 그 사람은 천성이 착했으며 약간 어눌한 기운도 있었다. 『점과 선』에서의 야스다는 정반대다. 이쪽은 철두철미한데 내가 아는 야스다 씨는 일일결산을 볼 때 계산을 틀리기도 하는, 말하자면 영락없는 사오십 대의 사람 좋은 아저씨였다. 도쿄 역 야에스(八重洲) 북쪽 출구께 있는 누마즈 우오가시즈시(沼津魚がし寿司)에 가면 야스다 씨를 만날 수 있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하여간에 『점과 선』의 야스다는 그야말로 '시간의 천재'로 등장한다는 것. 하루 중 단 4분의 틈을 찾아낸 기막힌 우연은 소설을 읽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일단 이 양반은 소설 첫머리부터 등장하는데, 이때부터 그에게서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것을 독자들도 느끼게 된다(거의 범인을 밝히고 시작하는 것과 같다). 읽는 쪽은 그렇다 쳐도, 도리카이와 미하라라는 두 형사의 분투는 정말이지 끈질기기 짝이 없다. 끊임없이 열차가 드나드는 번잡한 도쿄 역 ㅡ 하루 종일 북새통인 13 · 14 · 15번 플랫폼을 무대로, 어떻게 13번 플랫폼에서 15번 플랫폼의 열차가 보이는지 그 4분간의 매직을 밝혀내기 위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라. 뭐, 하긴 미하라는 좀 '안락의자 탐정'처럼 보일만도 했지만 말이다. 긴자의 단골찻집과 노면전차에서 비로소 머리가 번뜩이는 이 사람은 참 한가한 형사라는 소리를 들어도 좋을 정도다 ㅡ 내가 뜨악한 것은, 위키피디아에서 '점과 선(点と線)'을 검색해보면 심지어 미하라에 대한 설명으로 '긴자에 있는 단골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는 게 취미'라는 결과까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은 『점과 선』에 등장하는 특급열차 '아사카제'다. 15번 플랫폼에 들어오는 이 아사카제 ㅡ 두 남녀가 밀월이라도 떠나려는 듯이 열차에 오르는 모습 ㅡ 를 13번 플랫폼에서는 볼 수 없다는 것을 가지고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예상했겠지만, 둘은 나중에 시신으로 발견된다. 도리카이 형사가 식당 칸에서 발행된 것으로 보이는 영수증에 '1인'이라고 써진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 발상은 좋았다. 이야기는 도리카이에서 미하라로 그 추리 영역이 옮아가는데(둘은 협력관계) 그게 좀 어설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어설픈 줄거리가 볼만 하다. 미하라 ㅡ 그의 추리과정 ㅡ 는 너무 야스다에 집착한 나머지, 꼭 하나씩 빼먹고서 나중에야 '아차, 그게 있었지' 하며 뒤늦게 느려터진 제 머리를 때린다. 이것은 도리카이가 지적한 '인간이 빠지게 되는 맹점'과,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경찰이라는 이미지를 당시의 시대상과 묶어 보여줌으로써 배가된다. 사족을 좀 붙인다면 『점과 선』을 썼을 당시의 작가와 도리카이라는 인물의 나이는 얼추 비슷한 것으로 보이는데 부러 이런 설정을 통해 그보다 다소 젊은 미하라와의 대비를 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미하라가 한 발씩 늦는 것은 완전히 이해 못할 것도 아닌 듯싶다. 그가 수사 공조를 위해 타 지역 수사국에 보낸 전보의 회신만 해도 다음 날 돌아올 정도였으니까. 또 소설에는 공무원의 부정부패가 등장하는데 그 내용이 나오질 않는다. 소설이 연재됐을 당시를 살펴보건대 아마도 군수 물자나 도쿄올림픽에 관련된 사안은 아니었을까 하고 추(억)측해볼 뿐이다. 아, 이 소설의 특징이 하나 더 있다. '해답편' 내지는 '해설편'이 나중에 등장하는 것은 당연하게 볼 수도 있지만 이게 편지라는 액자를 통해 밝혀진다는 점이다. 도리카이 형사와 미하라 형사가 주고받는 두 통의 우정 어린 편지로 말이다.





『점과 선』은 TV아사히 개국 50주년을 기념해서 2007년에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바 있다. 2부작인데 러닝타임이 4시간 정도 된다. 영상은 서로 나이가 들어버린 도리카이 형사의 딸과 미하라 형사의 재회로 시작되며, 약간 어설픈 감이 있어서 소설로 읽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비토 다케시 ㅡ 기타노 다케시, 도리카이 형사로 분(扮) ㅡ 특유의 '눈 찡긋거림'이 살아있고(허허……), 시체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를 묻는 미하라의 질문에 「살고 싶다」고 대답하는 벙거지 모자를 쓴 이 노형사의 중얼거림만큼은 기억에 남는다. 이렇게 영상물로도 만들어질 정도로 세이초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는데, 희한하게도 이 소설에서는 약간 의문이 드는 구석이 몇 있다. 의문이든 억측이든 일단 찔러보겠다. 여기서부터는 책을 읽어봐야 이해할 수 있을 텐데 ㅡ ①역에서 사람을 기다릴 때는 보통 대합실에 있지 않나? 그런데 '역 플랫폼이 아니라 대합실로 마중을 나오라고 한 까닭'에 대해 미하라가 생각하는 이유가 나옴으로써 문제는 그의 추리가 아니라 세이초에게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②초반부에 야스다가 레스토랑에서 나와 도쿄 역까지 5분 만에 도착했다고 하는데 그것을 설명하며 5시 35분에 레스토랑에서 출발했더니 도쿄 역에는 6시 조금 전에 도달했다는 부분. ③당시를 생각해볼 때 가시이 역(어디라도) 앞의 과일 가게가 밤 11시까지 영업했다는 것도 약간 미심쩍다. 자, 이것들을 상쇄할만한 크나큰 충격이 있을는지? 어쨌거나 나는 범죄의 완성도나 틈 없이 몰아가는 일련의 추리 과정이 매력적인 이 작품은 물론이거니와, 일본의 철도(망)에 경의를 표하고 싶은 심정이다.



각설하고, 시간을 해결했더니 사망 장소가 달라지고, 사망 장소를 해결하려니 시간상 범인의 알리바이가 완벽해지는 이 두 번 세 번 꼬아지는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좀처럼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나조차도 '4분간의 트릭'을 깨려고 책과는 별도로 아예 시간표를 따로 만들어볼 정도였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점과 선』이 어떻게 사회파 소설일 수 있는가 하는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트릭 외의 이야기가 있으니 어떻게 봐도 좋다는 생각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트릭에 더 비중이 있다 보니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뿐이다(오히려 여기서의 것이 '알리바이 깨뜨리기'의 원형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왜 살인이 일어났는지를, 살인 계획이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나왔는지를, 모든 것이 해결된 후 괴상한 현실의 양태를 봐야 할 것이다 ㅡ 그리고 맙소사, 나는 범인조차 동정해버리고 만다……. 음, 세이초 얘기를 할 때마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멘트도 이제는 식상하군) 중의 하나는 발군의 '제목 짓기'이다. 『点과 線』은, 악마의 시간이 무너져 떨어져 있는 두 개의 点이 비로소 線으로 이어지려는 찰나 또 다른 点이 발견되고 먼저 존재했던 다른 線과 맞닿아 새로운 線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우라질!). 부추기는 건 아니지만 혹 이런 식의 범죄를 기획하고 있다면 하지 않는 게 좋다. 머리가 아플 테니까. 내가 알기로 도리카이 · 미하라 콤비는 '점과 선 2탄' 격인 『시간의 습속(時間の習俗)』에서 재등장한다던데, 이 『점과 선』이 소세키의 '선생님의 유서'(나쓰메 소세키, 『마음』)의 형태인 것에 비해 또 얼마나 멋진 소설일까를 기대하게 한다.



덧) 일본 문예춘추사의 마쓰모토 세이초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판을 본떠, 2012년 한국어판 『점과 선』에도 삽화와 열차 운행표가 수록되어 있다.

posted by 아잇

『신의 손(전2권)』 구사카베 요 (학고재, 2012)

· 책_롱 2012. 8. 15. 13:12


신의 손 1 - 8점
구사카베 요 지음, 박상곤 옮김/학고재


「안락사를 시행하는 의사에게는 '까다로운 치료를 빨리 끝내고 싶다'는 잠재의식이 있다.」 「환자의 고통을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이기심이다. '죽지 마'라는 말이 때로는 '죽어'라는 말보다 더 가혹할 수도 있다.」 존엄사보다 안락사라는 말은 어쩐지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 분위기 조성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의 손』은 문체와 단어구사는 평이한 편이고 때로는 진부한 표현도 눈에 띈다. 또 극 흐름이 원활치 않은 부분도 있으며 참으로 조악한 설정이라는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죽음이라는 화두와 왜 안락사인가 하는 물음에 접근하는 스릴러 요소가 더해져 근사한 의학 미스터리가 되었다(어쩌면 '의학'보다 더 큰 범주에 해당될지도). 이야기는 스물한 살의 청년이 안락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육체는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젊고 강한 심장은 좀처럼 지치지 않았다. 덕분에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 계속되었다.(p.14) 안락사는 고령자들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한편엔 생명력이 왕성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죽을 수 없는 젊은 환자들이 있다. 인공호흡기를 달면 돈이 들므로 죽는다, 가족 안에서 천덕꾸러기가 될 바에는 죽고 싶다, 차라리 나는 깨끗이 죽겠다.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으나 과거 군인이 되기 위해 자원입대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면에 경제적 요인이 작용한 경우가 흔히 있었다. 그게 과연 '자원'이라 불릴 수 있을까. 마찬가지, 이제 그만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안락사를 선택하겠다는 사람의 속내를 보자면 온전히 환자 본인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결정했다고 볼 수 있을까. 물론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인해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면 차라리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 그 '참을 수 없는 고통'이란 대체 뭘까. 결국 거기에는 의사의 판단이 더해진다. 환자는 끝내고 싶다고 하고, 의사는 좀 더 버티라고 한다. 의사가 보기엔 아직 더 참을 수 있고 조금이라도 더 살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반대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를 보며 이제는 가망이 없으니 환자 본인에게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려는 의사도 있을 거고…….



안락사는 고통 받는 환자를 위한 복음인가, 아니면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의 선별인가. 모든 생명은 존엄하므로 그 생명만 구하면 된다는 건 의사의 오만이고 무신경한 태도인가, 아니면 더 이상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환자의 고통을 보고도 그것을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의사의 이기심인가. 그것이 신의 손일지 사신의 손일지를 구분하는 것은 무척이나 곤란하고 어렵다. 결국 늘 같은 딜레마에 빠져 출구가 없는 미로를 헤맬 수밖에 없다. 작가는 전일본의사회와 새롭게 발족한 JAMA(일본전의료협회, Japan All Medical Association)라는 단체를 등장시켜 그들 간의 알력을 보여주고(JAMA라는 이름을 가진 전혀 다른 단체가 일본에 존재하긴 하지만, 내 짧은 지식으로는 이것 ㅡ 의학 관련 ㅡ 은 실재하지 않는 단체이다) 후반부에 가서 두 단체 모두 붕괴시킨다. 소설을 보면 장진의 영화가 생각날 때도 있고, 거짓 죽음을 가장한 과격한 실험, 사이비 종교 같은 우스꽝스러움, 의료계와 정치를 흔드는 요소도 찾을 수 있지만(끝에는 허망하면서 놀라운 반전도 있다) ㅡ 의료 신질서, 의사의 노블레스화, 의료 정화와 같은 부수적 재료는 그럴싸하게 들린다 ㅡ 일단은 안락사를 다룬 이야기다보니 독자로서 그리고 하나의 인간으로서 괴롭고 복잡한 감정이 앞서게 된다. 아래(▼)는 소설에 등장하는 안락사법 제정을 위한 각 안의 골자인데 그 엄격함만 다를 뿐 우리가 쉬 판단할 수 없는 문맥이 상당하다. 편안한 죽음을 맞겠다는 바람의 정당성, 내 생명을 방치하는 것은 타인의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마찬가지라는 논리. 내 삶과 죽음의 선택의 자유일까, 아니면 방법만 다른 살인일까.





본인의 의사 확인

A안 : 구두를 포함한 모든 방법이 가능하다. 각서, 컴퓨터나 메일 등도 가능.

B안 : 본인 또는 대리인을 통한 서면 필요. 단, 서식은 상관없다.

C안 : 소정의 서식에 따라 본인이 자필로 기재. 변호사 또는 공증인의 승인이 필요하다.


의사 표명 뒤의 확인 기간

A안 : 1주일.

B안 : 2주일.

C안 : 1개월.


연령 제한

A안 : 20세 이상.

B안 : 40세 이상.

C안 : 75세 이상.


안락사 요건

A안 : 도카이 대학 안락사 사건에서 1999년 요코하마 지방법원이 내린 네 가지 요건.

B안 : A안과 동일.

C안 : A, B안의 네 가지 요건에 더하여 가족의 동의 필요. 주위의 정신적 압력이 없다는 증명, 사회적 · 정신적 빈곤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의무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대상 환자

A안 : 참을 수 없는 고통(육체적 · 정신적인 것 불문)이 있는 경우.

B안 : 참을 수 없는 육체적인 고통이 있는 경우.

C안 :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동반하는 말기 암에 한정.


의사의 동의

A안 : 의사 두 명의 동의 필요.

B안 : 의사 세 명의 동의 필요.

C안 : 전문의 네 명 및 근무처가 다른 의사의 동의 필요.


보고 의무

A안 : 24시간 이내에 의무적으로 경찰에 신고.

B안 : A안과 동일.

C안 : 6시간 이내게 의무적으로 검찰에 신고. 아울러 의사는 검찰관의 질문에 답하는 형태로 70개 항목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 제출.


ㅡ 2권 p.307~309




과연 구두로 의사를 표명하는 것을 사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안락사가 필요한 긴박한 상황에서 어떻게 본인이 서면을 작성할 것인가. 환자가 의사를 표명하고 곧바로 안락사를 실행하면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겠지만 환자의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가정 하에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렸을 때의 환자의 고통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연령 제한에 있어 C안의 경우는 젊은 사람은 더 살아야 하고 노인들은 죽어도 좋다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좋은가. 환자에게 있어 주위의 정신적 압력이 없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참을 수 없는 고통이란 누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posted by 아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