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의 계보』 마쓰모토 세이초 (북스피어, 2012)

· 책_롱 2012. 6. 4. 13:53
  • 저도 주말에 이 책을 받았답니다. 초판 부록 원고지도 함께!

    BlogIcon kohdongki 2012.06.04 14:26 신고
    • 으흐흐. 근데 이 원고지로 해야 할 일이 벌써 생겨버려서 참. 북스피어 사장님은 숙제를 너무 많이 내주신다니까요ㅋ

      BlogIcon 아잇 2012.06.04 14:52 신고 DEL


미스터리의 계보 - 8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욱 옮김/북스피어


잖이 당황했다. 분명 논픽션이라고 했는데 이건 소설이잖아……가 아니었다. 총 3가지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제목도 그럴싸하다. 「전골을 먹는 여자」, 「두 명의 진범」, 「어둠 속을 내달리는 엽총」 ㅡ 카니발리즘을 떠올리게 하는 인육(人肉)의 희생양, 증거를 조작하는 사법부의 병폐, 문명이 단절된 산간 마을에서의 무차별 살인까지. 모두 실제 일어났던 일들인데, 타이틀의 미스터리(mystery)는 '신비'라는 뜻의 미스틱(mystic)에서 온다 ㅡ 계속 하면 misterie, mistere, mysterium, mysterion, mysteria, mystes, muo, mueo까지 갈 테니 여기서 끊자! 어쨌든 신비라는 단어를 내가 가지고 있는 사전(『현대 국어대사전』, 한서출판, 1973)에서 찾아보자면 이런 뜻이 나온다. 영묘하고 이상야릇한 비밀, 이론이나 인식을 초월한 일, 인간의 지력으로는 알 수 없는 비밀.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서 검색해도 크게 다르지 않은 뜻풀이를 찾아볼 수 있다. 세이초는 책에서 비일상적 공포를 선사하지만 모두가 실제 이야기이며 그 기저에는 평범한 일상이 깔려있다. 다시 말해 비일상이 일상을 침범하는 꼴이다. 으음, 그런데 이 미스터리라는 말 뒤에 '계보(系譜)'가 있군. 계보? 족보? 조상? 그 선단에는 뭐가 있을까? 신비스럽기까지 한 비일상적 공포의 시작과 끝에는 언제나 '인간'이 들러붙어있다. 너무나도 평범한 인간 한 개(個)가 어찌 보면 순식간에 불가해한 연유로 괴물이 되는 것이다 ㅡ 이 점에서는 심농(Georges Simenon)의 다음과 같은 말과 궤를 함께 한다.





어떤 이유 때문에 한 남자가 범죄를 저지르고 (...) 그는 더 이상 인간 공동체에 속하지 못하게 되고 하나의 괴물이 되어 버린다 (...) 단 5분 만에 사람들은 그를 혐오의 눈길로 바라본다 (...) 혹시 재판에 참석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경관 사이에 앉아 있는 그 사내의 고독은 아주 인상적이다. 그는 더는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이제 아무도 자신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도.




수록된 사건들이 갖는 날카로운 비명에 비해 세이초의 붓은 건조하다. 그는 책에 이런 말을 써놓았다. 「사건의 배경이 평범하면 평범할수록 이야기의 비참함은 극적으로 고조된다. 무대가 단조롭기에 드라마가 보여 주는 자극은 희석되지 않고 박력을 띠어 간다. 담담하게 서술하며 단순하게 구성된 문장으로 기괴한 내용을 전달할 때 활자의 행간에서 무시무시한 박진감이 솟구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서 문장을 꾸며 봐야 호소력과 설득력이 감쇄되는 무익한 작업일 뿐이다.」 특히 첫 번째 이야기 「전골을 먹는 여자」를 읽으면 고개를 주억거리리라. 한 여자를 데려다놓고 그녀가 딸을 죽였다는 의심을 품은 형사가 「당신 계속 거짓말하고 있지? 도라(딸)는 왜 죽였어!」라고 윽박지르자 그녀는 이렇게 대꾸한다. 「먹었어.」(부모와 딸 모두 지적 장애가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범죄는 우리 옆구리 근처에서 어정거리며 존재해왔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그땐 그랬지' 라는 말이나 '추억은 방울방울'처럼 항상 포근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을 거다. 「두 명의 진범」은 역자 후기에도 나오듯 사법체계에 서있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자신감 과잉이 초래하는 엉뚱한 결과를 얘기한다. 여기서는 '단승식이건 복승식이건 상관없잖아' 하는 식의 작태를 볼 수 있다. 또한 재판관의 심리와 주관이 사건의 증거 판단과 양형(量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피력하는 세이초 나름대로의 추론도 음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다시 심농을 불러본다.





나는 범죄자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들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취급한다. 그래서 그들을 감옥에 처넣어 버린다. 야수들처럼 우리에 가둬 버린다. 나는 검사가 아니라 의사와 심리학자들이 그들을 심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모든 직업에 실습 과정이 있는 만큼, 검사들이 타인을 심판하기 전에 수감자로 감옥에서 여섯 달을 보내거나.




고립된 산간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 「어둠 속을 내달리는 엽총」 또한 실제 사건이 아니었다면 쉽게 믿지 못할 이야기다 ㅡ 뭐, 임성훈 아저씨처럼 '세상에 이런 일이!' 하고 외칠 일이 어디 이것 하나밖에 없으려고(사건의 무대는 임성훈 씨의 노래 「시골길」처럼 '내가 놀던 정든 시골길'이 아니니까). 이것은 도이 무쓰오란 청년(그는 마을의 성 풍속과 폐병이라는 콤플렉스로 인해 이웃들과 단절된다)이 같은 마을 사람 서른 명을 잔인하게 죽인 일이다. 밑의 두 권의 책(▼)은 이 사건을 다룬 것들인데 그 중 왼쪽 빨간 표지에 있는 사진이 바로 도이 무쓰오다 ㅡ 사건 기록이란 측면에선 쓰쿠바 아키라(筑波昭)의 책(오른쪽)이 우수하다는 평이다. 여기에는 범인의 피해망상이란 부분도 있겠지만 마을 사람들의 그를 보는 시선 또한 분명 도화선이 됐다고 본다(의사가 흰 가운이 아닌 캐주얼한 니트에 청바지를 입고 있다면 우리가 느끼는 신뢰도에 변화가 생길까?).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은 적지 않겠다 ㅡ 다만 『미스터리의 계보』에 실린 모든 사건이 헤비급 펀치의 위력을 지녔다는 것만 언급해둔다. 이 책에 있는 이야기들과 비슷한 소설이나 영화는 엄청나게 많을 거라 생각한다. 반면 세이초는 범죄의 전모를 해체하고 조립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소설 만들기'가 아닌 '논픽션'을 택했다.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가지고서 말이다. 이 의구심은 말미의 조영일 문학평론가의 해설에 달린 각주를 보면 어느 정도 해소된다.





세이초에게 있어 범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겠다. 하나는 개인적인 선택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범죄이고, 다른 하나는 유전적 기질이나 사회적 압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범죄다. 이때 세이초는 정확히 전자에는 소설이라는 형식을, 후자에는 논픽션이라는 형식을 부여한다. 바꿔 말해, 전자의 경우 범죄 행위가 그것을 저지른 자에게 절대적으로 귀속되지만, 후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등장인물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소설)과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저 옛날 에도가와 란포(江戸川乱歩)는 범죄의 동기를 감정, 사욕, 이상심리, 신념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이것들은 다시 세분화될 수 있다. ㉠감정 : 연애, 원한, 복수, 우월감, 열등감, 도피 등. ㉡사욕 : 물욕, 유산 문제, 자기 보호 등. ㉢이상심리 : 살인광, 변태심리, 예술로서의 살인, 각종 콤플렉스 등. ㉣신념 : 사상, 정치, 미신, 종교 등에 기초한 범죄. ……아무리 범죄자가 뭐 빠지게 뛰어봐야 이 동기들 중의 하나에는 걸려들 것 같다(『미스터리의 계보』에 등장하는 범죄자들은 어느 쪽에 속할까) ㅡ 일본의 추리소설 비평가 곤다 만지(権田萬治)는, 세이초 작품에 등장하는 범죄의 동기는 이러한 분류를 뛰어넘는 것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 세이초는 인물보다는 그 인간을 둘러싼 환경(사회? 시스템?)을 앞세운다. 그리고 이것을 '픽션'이 아닌 '논픽션'으로 썼다. 그럼에도, 그로테스크한 묘사를 가미해 소설로 꾸미지 않았음에도, 나는 곳곳에서 공포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당사자에겐 전혀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니겠지만, 그제(2012. 6. 2) 「그것이 알고 싶다」란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25년 만에 죽었다 살아 돌아온 한 남자의 얘기를 다뤘다. 그는 1987년 당시 19살에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다고 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병원에서 수술한 후 연고가 없는 '무명남'으로 처리되어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다. 그 후 정신병원 관계자, 행려자 보호책임을 지고 있는 구청 등에서는 제대로 된 신원조회나 그의 가족을 찾아주려는 노력을 다 하지 않았다. 19세 청년이 40대 중년이 되어 25년 만에 노모 앞에 나타난 것이다(엄밀한 의미에서 범죄는 아닐지라도 당국의 무관심이 문제가 된다). 만약 당신의 가족이 같은 일을 겪었다고 생각해보라. 아니면 당신의 가족 중 한 사람이 25년간 복역한 후 출소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그 사람이 정말 범죄를 저질러 옥살이를 한 것이 아니라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수감되었다고 한다면, 진실이 규명돼도 그땐 이미 늦은 것이다 ㅡ 그것도 사법체계의 권력자들에 의해 증거가 조작된 것이 결정적 원인이라고 한다면 어떻겠는가?



……지적 장애가 있어 딸을 죽여 그 살을 먹고도 태연자약했던 여자, 나병(癩病)에는 인육이 효능이 있다는 민간 속설 때문에 소년을 죽인 남자, 증거 보강을 위해 상황을 조작하는 경찰, 고립된 산간이라는 지역성 · 얼마간의 이상심리 · 폐병 콤플렉스라는 복합적인 요인이 비극을 부른 대량 살인. 나는 『미스터리의 계보』에서 세이초의 다큐멘터리를, 무미건조한 문장 때문에 외려 머리털이 곤두서는 소설 같은 현실을 읽었다.



덧) 아래의 사진(▼▼)은 『미스터리의 계보』 초판에만 한정된 별책부록 ㅡ '세이초 미니 원고지'다. 하나 더. 책을 펴낸 출판사에서 《마쓰모토 세이초 배 일상 미스터리 논픽션 쓰기 대회》를 개최한다고 한다. 상품은 타자기와 폴라로이드 사진기. 사실 난 문예춘추에서 나온 세이초 전집이 더 좋은데. 하긴 이걸 상품으로 걸기엔 좀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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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라트비아인』 조르주 심농 (열린책들, 2011)

· 책_롱 2012. 4. 2. 11:12
  • 같은 책을 같은 날 포스팅한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일까요?^^ 잘 읽었습니다.

    빈배 2012.04.02 13:20
    • 저도요 :) 요걸 다 읽으려고 했었는데 19권을 끝으로 잠시 출간을 중단한다고 해서 슬퍼요….

      BlogIcon 아잇 2012.04.02 14:47 신고 DEL


히, 장정(裝幀)만 보고도 질려버리는 케이스가 있다. 이를테면 토마스 만이랄지, 움베르토 에코의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중세 이야기들 말이다. 분량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딱딱한, 살인도구도 될 수 있으며 목침으로도 사용할 수 있을법한, 뭔가를 내려치기에 꼭 맞다싶은 표지. 물론 내용조차도 심연에 빠지기 딱 좋은 경우가 많다. 이 조르주 심농의 『수상한 라트비아인』, 가볍다, 일단 겉모양이. 헬레네 헤게만이 쓴(정말 직접 쓴 것일까?) 『아홀로틀 로드킬』과는 겉이 닮아있고,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와는 속이 닮았다(그저 그렇게 느껴졌다, '증발'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아! 비교하기엔 레이먼드 챈들러가 낫겠다, 물론 그것보다 조금 덜 묘사에 신경 쓴 것만 빼면 ㅡ 물론 확실히 다르다. 굳이 묘사라 하면 대략 이런 식이다. 라트비아인으로 나오는 피에트르(pietr)의 이름을 피트르(pitre), 어릿광대와 매치시키는가하면, 굳이 콧날의 모양, 코끝 거리, 귓불의 모양 등 인상착의를 묘사하거나,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할 때는 자연스레 주인공에게 차를 끓여 내오는 부인의 고즈넉한 자태의 기술 등을 말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그래서), 표지에 그려진 병 속에는 열쇠가 덩그러니 딸랑댄다. 주인공 매그레가 마셔대는 맥주인지 뭔지 모를 것에,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열쇠. 복잡한 트릭이나, 여러가지 도구를 이용해 만든 말도 안 되는 범행도구 따위는 일절 등장하지 않은 채, 오로지 사람의 의중을 파고들어 굳게 잠긴 자물쇠를 헤집어놓는 열쇠. 인간적이고, 인간적이다. 변장한 라트비아인과 마주앉아 기가 차게도 「선생, 콧수염이 떨어졌소이다…….」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나. 과연 누가 당장이라도 자기는 최악의 상황에 빠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것이 비극이 될 가능성은 제로라고 못박을 수 있을까. 요컨대, 소설은 인간이고, 인간이 소설이다. 우리는 때때로 거기에서 카스트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 힘없는 인간들이 만든 드라마가 예술 아닌 예술로, 그것도 추리라는 형태를 빌려 탄생한다. 취조실 혹은 안락한 소파에 앉아있는 피의자의 고독, 그리고 지금이라도 그 큰 매그레의 덩치가 이쪽으로 옴작거리는 것을 볼 수 있을 것만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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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레 씨, 홀로 죽다』 조르주 심농 (열린책들, 2011)

· 책_숏 2012. 4. 2. 11:05

갈레 씨, 홀로 죽다 - 8점
조르주 심농 지음, 임호경 옮김/열린책들


리즈 제1권인 『수상한 라트비아인』과 비교한다면 일단 트릭이라고 할 만한 것이 등장한다_뭐 그렇게 기발하다거나 기존 추리소설에서 봐왔던 것들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_정작 중요한 건 정작 무척이나 빠른 전개와 군더더기 없는 간결함으로 무장한 서사일 거다_그러므로 독자의 바지 앞단에 수북이 쌓이는 담뱃재의 처치 곤란함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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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폴리앵에 지다』 조르주 심농 (열린책들, 2011)

· 책_숏 2012. 4. 2. 10:49

생폴리앵에 지다 - 8점
조르주 심농 지음, 최애리 옮김/열린책들


200페이지 남짓한_그래서 순식간인_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끝나고 마는 소설. 결코 쓸 일이 없을 것 같던 칼날은 비틀비틀_절대 아물 수 없는 상처는 가닐가닐. 그래서 누군가는 죽고_죽인 자는 발 뻗고 잠을 못 잔다. 소크라테스 왈_ 우리가 어떤 일이 악행인 줄 알면서 자발적으로 그 일을 저지르는 것은 불가능하다_만일 악행을 저지른다면 그것은 무지에서 기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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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의 복합』 마쓰모토 세이초 (모비딕, 2012)

· 책_롱 2012. 3. 19. 12:22


히 장르문학이라고 편을 갈라 사람 위에 책 있고 사람 아래 책 있는 것처럼 말하면, 나는 싫다. 짐짓 도저하게 ‘장르’문학이라는 딱지는 붙여놓았지만 ‘순’문학과 비교하며 순간의 오락거리로 치부해버리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심농(Georges Simenon)은 ‘선전 속 인간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는데 세이초 자신도 ‘환상이 아닌 리얼리즘 안에서’ 미스터리를 쓰고 싶다고 했다(실제로 둘은 동시대를 살았다). 복잡다단한 트릭이나 특수한 환경이 아니라 어디서나 일어날 것 같은, 그것. 세이초 작품은 그래서 ‘여흥’이 아니다. 그런데 그의 작품은 언제나 뻑적지근하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그런가. 이런저런 말을 붙여도 역시 초반은 힘이 조금 든다. 얼마 읽지도 않았는데, 뭐야 이건 변죽만 울리는 꼴이잖아, 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정도로다가. 아카데믹한 맛이라기 보단 뭐랄까, 그러니까 쇄빙선처럼 통쾌하게 한방을 먹인다기보다는 아주 야금야금 실체에 접근하고 있다. 아마도 민속학이나 여행, 역사 등과 맞물려 연결되다보니 그런 냄새도 나는 것이리라. 일단 읽다보면 제목에 나타난 것처럼 대체 ‘D’는 언제 나오나, 또 ‘복합’이라는 건 뭐지, 하고 그것이 등장할 때를 숨죽이며 기다리게 된다. 그래서 나도 야금야금 읽는다. 게다가 ‘35’니 ‘135’니, 그 계산광(狂) 여자는 또 뭐고. 주인공 이세가 『구사마쿠라』에 휘둘린 게 아니라 내가 세이초(이야기)에게 휘둘린다. 왠지 이세의 다소 ‘방임’하는 태도가 교고쿠 나쓰히코의 캐릭터 세키구치와도 비슷하고. 초인이나 만능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 버디무비. 『D의 복합』이 보여주는 것은 간단하다. ‘욕망을 추구함에 있어 일정한 분수와 한계가 없으면 안 된다.’ 얼핏 순자(荀子)와도 비슷하군. 그 양반은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지만 그것을 충족시켜 줄 재화는 매우 한정되어 있다’고 했으니 말이다. 염소수염 나라바야시나 까무잡잡하고 뚱뚱한 다케다, 열정적인(!) 하마나카, 무명작가 이세, 기모노의 사카구치까지. 섬세한 장치와 더불어 평이해서 거부감 없는(현실성 있는)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 본문의 ‘작위와 부작위의 문제’라는 장의 제목이 보여주듯 시소 양쪽이 균형을 이루며 멋지게 아귀가 들어맞는다. 다시 한 번 심농을 언급하고 싶다. 「여기 40대 중반의 한 남자가 있다고 치자. 5분 후 물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 어떤 하찮은 이유 때문에 그 남자가 범죄를 저지른다. 그러면 갑자기 그는 더 이상 인간 공동체에 속하지 못하게 되고 하나의 괴물이 되어 버린다. 단 5분 만에 사람들은 그를 혐오의 눈길로 바라본다. 그는 더 이상 사회에 속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심농이 창조한 매그레라는 인물은 지극히(지독할 만큼) 평범한 사람들에 둘러싸인 사건을 풀어나간다 ㅡ 『D의 복합』은 위의 ‘하찮은 이유’로 시작된 범죄는 아니지만 현실성이라는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 그럼 세이초는 뭐라고 했을까. 「물리적 트릭을 심리적인 작업으로 고칠 것. 특이한 환경이 아니라 일상에서 설정을 찾을 것.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일 것. 누구나 경험할만하거나, 어디서나 일어날 것 같은 서스펜스를 추구할 것. 나는 환상이 아닌 리얼리즘 안에서 미스터리를 쓰고 싶다.」


덧) 미미 여사로 불리는 미야베 미유키가 책임편집을 한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북스피어, 2009, 전3권)은 ‘엄청 안 팔렸다’고 하는데 ㅡ 이런 기억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재기발랄한 출판사 사장님의 말이었던 것 같다 ㅡ 『D의 복합』과 함께 출간된 『짐승의 길』(전2권)로 시작되는 ‘세이초 월드’가 국내 ‘장르’문학 팬들뿐만 아니라 더 폭넓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posted by 아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