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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수상한 라트비아인』 조르주 심농 (열린책들, 2011)


히, 장정(裝幀)만 보고도 질려버리는 케이스가 있다. 이를테면 토마스 만이랄지, 움베르토 에코의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중세 이야기들 말이다. 분량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딱딱한, 살인도구도 될 수 있으며 목침으로도 사용할 수 있을법한, 뭔가를 내려치기에 꼭 맞다싶은 표지. 물론 내용조차도 심연에 빠지기 딱 좋은 경우가 많다. 이 조르주 심농의 『수상한 라트비아인』, 가볍다, 일단 겉모양이. 헬레네 헤게만이 쓴(정말 직접 쓴 것일까?) 『아홀로틀 로드킬』과는 겉이 닮아있고,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와는 속이 닮았다(그저 그렇게 느껴졌다, '증발'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아! 비교하기엔 레이먼드 챈들러가 낫겠다, 물론 그것보다 조금 덜 묘사에 신경 쓴 것만 빼면 ㅡ 물론 확실히 다르다. 굳이 묘사라 하면 대략 이런 식이다. 라트비아인으로 나오는 피에트르(pietr)의 이름을 피트르(pitre), 어릿광대와 매치시키는가하면, 굳이 콧날의 모양, 코끝 거리, 귓불의 모양 등 인상착의를 묘사하거나,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할 때는 자연스레 주인공에게 차를 끓여 내오는 부인의 고즈넉한 자태의 기술 등을 말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그래서), 표지에 그려진 병 속에는 열쇠가 덩그러니 딸랑댄다. 주인공 매그레가 마셔대는 맥주인지 뭔지 모를 것에,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열쇠. 복잡한 트릭이나, 여러가지 도구를 이용해 만든 말도 안 되는 범행도구 따위는 일절 등장하지 않은 채, 오로지 사람의 의중을 파고들어 굳게 잠긴 자물쇠를 헤집어놓는 열쇠. 인간적이고, 인간적이다. 변장한 라트비아인과 마주앉아 기가 차게도 「선생, 콧수염이 떨어졌소이다…….」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나. 과연 누가 당장이라도 자기는 최악의 상황에 빠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것이 비극이 될 가능성은 제로라고 못박을 수 있을까. 요컨대, 소설은 인간이고, 인간이 소설이다. 우리는 때때로 거기에서 카스트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 힘없는 인간들이 만든 드라마가 예술 아닌 예술로, 그것도 추리라는 형태를 빌려 탄생한다. 취조실 혹은 안락한 소파에 앉아있는 피의자의 고독, 그리고 지금이라도 그 큰 매그레의 덩치가 이쪽으로 옴작거리는 것을 볼 수 있을 것만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