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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도롱뇽과의 전쟁』 카렐 차페크 (열린책들, 2010)


‘한국어 최초 완역본’, 태생은 그 해 ‘가장 아름다운 체코슬로바키아 책’이 된 1965년판. 그리고 영광스럽게도 간기면에는 ‘초판 1쇄’라고 적혀 있다. 여기 『도롱뇽과의 전쟁』에는,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는 누구냐는 질문에 키플링(아마도 『정글북』을 쓴 키플링?) ㅡ 을 꼽는 도롱뇽(놈들은 언어구사가 가능하다), 그리고 동물원에서 방문객으로부터 초콜릿과 단 것을 너무 많이 얻어먹어 위장염에 걸리는 도롱뇽(들)이 등장한다. 게슈타포가 공공의 적 No.3로 지목할 정도로 악명높은(?) 차페크의 작품. 무대가 된 체코는 책의 마지막에서 주인공 포본드라의 「내가 전 세계를 망쳐 버린 거야……」란 말을 끝으로 도롱뇽과의 전쟁을 준비한다. 파시즘의 풍자와 즉각적인 현실의 반영은 차치하고라도(그럴 수 없겠지만) 『도롱뇽과의 전쟁』은 환상문학이며 거기에 고급 저널리즘을 융화시켰다. 그리고 작가는 시종일관 영민한 위트와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한다. 사람과의 의사소통과 직립보행이 가능한 도롱뇽들에게 인간은 각종 노동을 부여하기 시작하고, ㅡ 「우리는 진주의 모험 소설 대신 환희에 찬 노동의 찬가를 부를 겁니다. 우리는 구멍가게 주인이 될 수도 있고, 창조자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p.169) ㅡ 그리하여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도롱뇽들이 그들의 거주지 확보를 위해 인간과 전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하고 싸우는 걸 더 잘했던 것 같구나 (...) 인간들끼리 서로 싸우게 만들어 놓으면, 너무 잘해서 네 녀석도 깜짝 놀랄걸?

ㅡ 본문 p.361



하! 「우두머리 도롱뇽은 이 순간, 아직은 세계를 무력으로 접수하기보다는 인류로부터 구매할 의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죠.」(p.352)라니. 게다가 ‘아직은’이라니. 작품에선 도롱뇽이 인간을 상대로 거래를 하는 세상이 온다. 게다가 말을 할 줄 알고 지식을 쌓아 교수가 된 도롱뇽(!)의 논문을 인용해 파문당한 과학자의 할복이나, 도롱뇽들이 사는 강에 독극물을 부어 그들을 독살하는 영국 사령부에 관한 에피소드는, 독자(혹은…)에게 전하는 놀라운 위트로 무장한 잘 다듬어진 촌철이다. 명랑 개그 만화처럼 ㅡ 단발적인 개그가 아니라 촘촘히 짜인 코미디에 가깝지만 ㅡ 내내 히죽거리게 만드는 『도롱뇽과의 전쟁』은 칼레이도치클루스를 떠오르게도 하는데, (모두 작가가 의도해 적었고 동시에 허구인)’도롱뇽들의 성생활’을 고찰한 부록, 도롱뇽들에 관한 각종 신문 기사들, 과학 총회를 목격하고 쓴 기록들, 저명한 명사들의 소견들, 학교 교육을 받은 도롱뇽의 회상, 국제 공산당 선언문, 전시에 보내진 전보들…… 이 색색의 면지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어로 된 부분도 있는데 일문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도저히 해독할 수 없다. 아마도 엉터리 일본어가 아닐까 한다. 어쨌든 모든 책이 그러하듯 『도롱뇽과의 전쟁』도 끝이 있다. 아쉬운 마음은, 본문에 있는 ‘작가 내면의 목소리’를 빌린다. 「이렇게 끝낼 거야?」(p.368)



리고, 여기서부터는 군말 혹은 사족 ㅡ 카렐 차페크. 소설가, 희곡 작가, 동화 작가, 기자, 전기 작가, 수필가, 삽화가, 번역가, 사상가. 그의 형 요세프 차페크는 동생과 공동집필한 희곡에서 '로봇'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이것은,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체코의 1965년판 『도롱뇽과의 전쟁』의 일러스트를 되살린 판본. 같은 해 '가장 아름다운 체코슬로바키아 책'으로 선정된 작품.


※ '로봇'은 고된 일, 노예노동이란 뜻의 체코어 '로보타(robota)'에서 유래한 말이다.



『도롱뇽과의 전쟁』은 정치 우화다. 전쟁에 대한 주제를 고집하고 그것으로 고민했기에 나치스의 '공공의 적 No.3'로 지목된 작가. 그리고(그래서) 일곱 차례나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됐지만 수상하지 못한 작가.



장 위대한 영국 작가가 누구냐는 질문에 키플링이라고 대답하는 도롱뇽.「화성에는 사람이 살까?」「펠헴 뷰티냐 고베르나도르냐 올 시즌 더비 경마 우승의 향방은?」「향기 나는 숨결을 원하세요? 지금 바로 프레쉬 치약을 구입하세요.」각종 신문 기사, 광고문 등을 외우는 도롱뇽들.



덜란드 선장 반 토흐는 수마트라 섬 근처에서 진주를 찾는다. 그러다 두 발로 걷고 말을 하는 도롱뇽을 발견하고, 시간이 흘러 이윤을 내기 위한 기업들이 개입한다. 번식을 거듭한 도롱뇽들이 이제 인간 사회에 등장, 그들은 인간들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그리고 인류의 멸망.



'작품의 특성상 지명이 많이 등장하는데, 옮긴이주 가운데 지명에 관한 것은 별도의 색인을 만들어 붙였다'며 책 말미에 200개가 넘는 지명이 '지명 색인'에 들어있다. 다채로운 색감과 파격적 형식의 편집. 학자의 연구 보고서, 여행기, 취재기, 각국의 신문 기사 등 방대한 자료까지.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작가가 창조한 가짜 자료들…… 그래서 영원히 기억될, 그리고 아름다운 판본.


『도롱뇽과의 전쟁』은 유머와 휴머니즘, 풍자와 저널리즘을 버무린 아름다운 책이다. 너무나도 아름답고 멋져서, 누구에게나 선물하고픈 그런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