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슬립(전2권)』 스티븐 킹 (황금가지, 2014)

· 책_롱 2014. 7. 28. 17:30
  • 잭니콜슨 주연의 샤이닝! 묘한 섬뜩함을 주었던 영화였습니다. 꼬마 대니가 호텔에서 자전거를 타는 장면은 숨이 조여오는 느낌을 받았었죠.

    BlogIcon 아쫑 2014.07.30 14:03 신고
    • 킹이 아무리 큐브릭 영화를 싫어했다손 치더라도 참 잘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아마 영화 덕도 봤을 거예요ㅋ

      BlogIcon 아잇 2014.07.31 09:35 신고 DEL


닥터 슬립 1 - 8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


두막 열병. '함께 갇힌' 사람들에 대한 증오감으로 발현되어 사소한 다툼, 환각, 폭력 행사, 최악에는 살인까지 벌어진다. 곱상한 문학 앞에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올린 『샤이닝』은 《데스티네이션》의 모태라 할 만한 가운데 먼 훗날 『닥터 슬립』까지 오며 어린 댄을 콜 시어에서 존 콘스탄틴으로 성장시켰다ㅡ 「I see dead people.」 → 「This is Constantine. John Constantine, Asshole.」 ……『샤이닝』의 후속작 치고는 전작에 비해 공포의 강도가 조절되어 있기도 하고, 또 킹 자신이 죽은 잭과 같은 경험(알코올 중독)을 했으며 이번에는 그의 아들이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굳이) 집어넣음으로써 어찌 보면 킹 스스로의 치유 일환으로 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결과적으로 전작과 함께 보면 말랑말랑하다고 해야 할 듯도 하다. 『샤이닝』에서 킹은 무엇을 보여주었던가. 미친놈과 미친 재주를 가진 미친놈의 아들이었다ㅡ 원작자는 한숨을 쉬었을지언정 내 판단으로는 큐브릭의 영화도 꽤 괜찮았다고 생각한다(소설 『샤이닝』의 미친놈 이름은 잭이고 영화 《샤이닝》에 출연해 미친놈 역할을 한 남자 이름도 잭이며, 내가 영화의 백미로 꼽는 것은 웬디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다. 그녀 스스로도 개의치 않고 주위 사람들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그게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그 미친놈의 아들은 커서도 제 버릇 남 못 준 채 고급 기술 '샤이닝'을 한 번 더 발휘한다. 다만 『샤이닝』에서 잭을 고용해 일을 꾸민 것이 오버룩 호텔 자체였다면 『닥터 슬립』에서는 약간 모호해진다. 그러므로 공포란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발생하지만 희한하게도 그 공포를 몰고 오는 자를 가장 친숙한 가족으로 설정했던 전작과는 다르다ㅡ 벌집에 손을 집어넣을 때의 기분을 기억한 채 이번에는 달큼한 꿀도 한 줌 집어 먹는다. 『닥터 슬립』은 샤이닝을 구사할 줄 아는 자들의 머릿수를 조금 더 늘리고, 거기에 요리사 딕과 217호실의 메이시 부인 등을 다시금 소환하고 있으며, 댄보다 더 강력한 샤이닝을 지닌 소녀 아브라를 짝지어주어 역시 샤이닝을 쓸 줄 아는 집단 트루 낫(true knot)과의 대결 구도를 만든다(어딘지 모르게 『조이랜드』의 냄새가 나고, 트루 낫이 다소 손쉽게 처리된 것이 아쉽다). 그리고 전작에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어린 댄은 멀리 떨어진 딕에게 구조 요청을 하고, 여기서는 성장한 댄에게 반대로 어린 아브라가 깜찍한 SOS를 보내면서부터(hEll☺) 이야기는 시작된다. 완결에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린 이 '오버룩 2부작'은 그야말로 소설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시작부터 불길했던 살아 움직이는 호텔 이야기는 펑크 냄새 물씬한 소설로 탈바꿈했고, 철저하게 고립된 일상의 공포를 뽐내던 것은 (당장은 모르지만) 영화 제작 예산을 한껏 부풀려 놓으며 다시 콜로라도의 오버룩에서 끝을 맺는다……. 『닥터 슬립』을 읽는 데에 『샤이닝』 읽기가 반드시 필요한 것만은 아닙니다, 라고는 해도 내가 보기엔 전작의 독서가 동반되어야 할 것만 같다. 아니면 차라리 『샤이닝』만이라도 읽어 보기를. 그러면 자연스럽게 꼬마 대니가 살이 쪘는지 키가 컸는지 여자관계는 무탈한지 궁금해질 테니까.



posted by 아잇

신간마실 17

· 신간_개취 2014. 7. 15. 14:02
구형의 황야 - 상 - 8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구형의 황야 - 하 - 8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스팅 - 8점
스팅 (Sting) 지음, 오현아 옮김/마음산책


아프리카의 운명 - 8점
마틴 메러디스 지음, 이순희 옮김, 김광수 감수/휴머니스트


이기적 진실 - 10점
파하드 만주 지음, 권혜정 옮김/비즈앤비즈


정신의학의 권력 - 8점
미셸 푸코 지음, 오트르망 옮김/난장


닭고기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 8점
김재민 지음/시대의창


샤나메 - 6점
아볼 카셈 피르다우시 지음, 헬렌 짐머른 영역, 부희령 옮김/도서출판 아시아


조건 없이 기본소득 - 8점
바티스트 밀롱도 지음, 권효정 옮김/바다출판사


법, 경제를 만나다 - 6점
김정호 지음/프리이코노미스쿨


기업 - 6점
김영용 지음/프리이코노미스쿨


시장경제원론 - 6점
김이석 지음/프리이코노미스쿨


표절은 없다 - 6점
현택수 지음/프레스바이플(Pressbyple)


문제들 - 8점
이종건 지음/시공문화사


2014년판 연간 지하철시집 - 6점
강남주 지음, 월간 see 책임편집/문화발전소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 8점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부키


나는 누구인가 - 6점
최인호 지음/지식공감


대한민국 치킨전 - 10점
정은정 지음/따비


호모사피엔스의 미래 - 8점
신상규 지음/아카넷


악마 백과사전 - 6점
프레드 게팅스 지음, 강창헌 옮김/보누스


신 백과사전 - 6점
마이클 조던 지음, 강창헌 옮김/보누스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 8점
강신주 지음/오월의봄


생활 밀착 한자어 - 8점
강지희.김영죽.최영옥 지음/다락원


라캉 읽기 - 8점
숀 호머 지음, 김서영 옮김/은행나무


닥터 슬립 1 - 8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


닥터 슬립 2 - 8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


저수하의 시간, 염상섭을 읽다 - 10점
한기형.이혜령 편저/소명출판


감시사회로의 유혹 - 8점
데이비드 라이언 지음, 이광조 옮김/후마니타스


한국의 연쇄 살인범 X파일 - 6점
양원보 지음/휴먼앤북스(Human&Books)


재난시대 생존법 - 8점
우승엽 지음/들녘


피디 마인드 - 6점
김신완 지음/새잎


미시시피 신세계의 강 - 8점
베이징대륙교문화미디어 엮음, 박한나 옮김/산수야


늙은 흑인과 훈장 - 8점
페르디낭 오요노 지음, 심재중 옮김/창비


흡혈귀가 지배하는 세상, 대학 - 8점
이희진 지음/책미래


자연 속의 과학 세상 - 6점
강영욱.임대근.류현아 지음/빛을여는책방


획 : 글자쓰기에 대해 - 8점
헤릿 노르트제이 지음, 유지원 옮김/안그라픽스


유괴 - 8점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이규원 옮김/엘릭시르


건축적 상상력과 스토리텔링 - 8점
황선우 외 지음/미메시스


두 도시 이야기 - 8점
찰스 디킨스 지음, 성은애 옮김/창비


태양계 연대기 - 10점
원종우 지음/유리창


무의미의 축제 - 6점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민음사


무질서의 효용 - 8점
리차드 세넷 지음, 유강은 옮김/다시봄


뉴스의 시대 - 8점
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문학동네


플로팅 시티 - 6점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문희경 옮김/어크로스


키드 노스탤지어 - 8점
박성진 지음/프로파간다


무지개 속 적색 - 8점
해나 디 지음, 이나라 옮김/책갈피


그 남자, 좋은 간호사 - 6점
찰스 그래버 지음, 김아영 옮김/골든타임





posted by 아잇
2014 연간 지하철 시집, 감시사회로의 유혹, 강신주, 개정판, 건축적 상상력과 스토리텔링, 골든타임, 구형의 황야, 그 남자 좋은 간호사, 나는 누구인가, 난장, 노자 혹은 장자, 뉴스의 시대, 늙은 흑인과 훈장, 다락원, 다시봄, 다카기 아키미쓰, 닥터 슬립, 닭고기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대한민국 치킨전, 두 도시 이야기, 들녘, 따비, 라캉 읽기, 마쓰모토 세이초, 마음산책,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무의미의 축제, 무지개 속 적색, 무질서의 효용, 문제들, 문학, 문학동네, 문화발전소, 미메시스, 미셸 푸코, 민음사, 밀란 쿤데라, 바다출판사, 법 경제를 만나다, 보누스, 부키, 북스피어, 비즈앤비즈, 사진집, 사회과학, 산수야, 새잎, 생활 밀착 한자어, 샤나메, 샤이닝 후속, 세계문학, 세이초월드, 소명출판, 소설, 숀 호머, 스티븐 킹, 스팅 자서전, 시공문화사, 시대의창, 시장경제원론, 신 백과사전, 신간, 신세계의 강 미시시피, 아카넷, 아프리카의 운명, 악마 백과사전, 안그라픽스, 알랭 드 보통, 어크로스, 엘릭시르, 예술 대중문화, 오월의봄, 유괴, 유리창, 은행나무, 이기적 진실, 인문학, 일본소설, 자연 속의 과학 세상,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재난시대 생존법, 저수하의 시간 염상섭을 읽다, 정신의학의 권력, 조건 없이 기본소득, 지식공감, 찰스 그래버, 찰스 디킨스, 창비, , 책갈피, 책미래, 치킨의 사회사, 키드 노스탤지어, 태양계 연대기, 페르디낭 오요노, 표절은 없다, 프레스바이플, 프로파간다, 프리이코노미스쿨, 플로팅 시티, 피디 마인드, 하파드 만주, 한국의 연쇄 살인범 X파일, 헤릿 노르트제이, 호모사피엔스의 미래, 황금가지, 획 글자쓰기에 대해, 후마니타스, 휴머니스트, 휴먼앤북스, 흡혈귀가 지배하는 세상 대학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 2014』 열린책들 편집부 (열린책들, 2014)

· 책_숏 2014. 5. 23. 11:09


2014 열린책들 편집 매뉴얼 - 10점
열린책들 편집부 엮음/열린책들


마다 나오는 책. 달라진 점은_ ISBN의 접두부 978의 소진과 전자책의 출간 증가에 따른 ISBN 표기 방식의 변화 반영_편집 체크 리스트에 전자책 항목 추가_추천 도서 시행 기관과 사업의 변경 내용_출판문화산업 진흥법과 시행 규칙의 개정분 등등_더 자세한 내용은 온라인 서점에 등재된 서지 정보를 참조할 것. 그보다 열린책들은 독자들 사이에서 '빽빽하고 좁은 행간'으로 유명한데, 출판사만의 이러한 편집 원칙에 대해 그 사유를 곁들였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 카피로 쓰인 스티븐 킹의 말이 멋지다_'저술은 인간이, 편집은 신이 한다.'




posted by 아잇

『조이랜드』 스티븐 킹 (황금가지, 2014)

· 책_롱 2014. 3. 3. 11:49
  • 조이랜드의 서평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기 쉬운 까닭에 비유하며 쓰신 아잇님의 경험담이 더 인상적입니다.
    마지막 얇은 윗 입술 이야기도....
    잘 읽고 갑니다.^^

    BlogIcon 아쫑 2014.07.09 06:26 신고
    • 여행과 아르바이트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좋은 기회죠ㅎ

      BlogIcon 아잇 2014.07.09 12:30 신고 DEL


조이랜드 - 10점
스티븐 킹 지음, 나동하 옮김/황금가지


물하나의 어린 애새끼가 겪은 여름날의 추억인지 아니면 살인 사건을 다룬 스릴러인지 갸우뚱하게 되지만 나는 전자의 손을 들어준다. 그렇게 하고 싶다. 킹의 작품을 많이 읽어 본 것은 아니지만 『조이랜드』는 은근히, 손에 쥐었다고 설명하기 힘든 흐릿한 서사로도 독자의 집중력을 끌어올리고 있는데, 이 소설은 이렇게만 끝을 맺어서는 말이 되질 않는다. 이시다 이라의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시리즈>를 읽은 사람이라면 『조이랜드』가 풍기는 냄새를 어림짐작할 수 있을까. 좀 알려주길 바란다. 서지정보에 의하면 어쩐지 비스름한 느낌일 것 같으니. 즐거움을 판다는 다소 키치한 슬로건으로 무장한 놀이공원 조이랜드에서 파트타임을 시작한 데빈 존스는, 흔히 '성장소설'의 ㅡ 나는 『조이랜드』를 성장소설로 보지 않지만 적어도 몇 편을 이어 더 쓴다면 그렇게 말해줄 용의가 있다 ㅡ 주인공이라 불릴 법도 하건만 그렇기엔 너무나도 짧은 편이다(그러니 킹이여, 더 쓰라!). 갓 스물을 넘긴 남자애가 파트타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어디 있겠나. 내가 보기엔 막노동을 하지 않는 이상 서비스업에 치중되기 십상이지만 반대로 이야깃거리가 풍부해서 좀처럼 바닥을 드러낼 기미가 없다. 그만큼 사람과 사람이 만나기 쉬운 까닭이다. 내가 도일(渡日)해 초밥가게에서 일하던 때ㅡ 게살을 빼어 먹으려 안간힘을 쓰는 아이에게 스테인리스로 제작된 기다란 도구를 건네자 그의 부모가 흐뭇하게 바라보던 일, 멀리 시골에서 놀러 온 커플에게 하나 둘 셋을 외치며 기념사진을 찍어 준 일, 한국에서 쓰는 통화라며 5백 원짜리 동전을 카운터 옆 게시판에 붙여놓았던 일, 스태프 전용 흡연실에서 같은 층 편의점 아가씨와 눈인사를 주고받던 일, 근무 마지막 날이 되었을 때 일요일마다 들르는 단골로부터 캔 맥주 한 봉지를 건네받던 일, 함께 일하던 중국 여자애의 옆구리를 건들며 되지도 않는 농을 치던 일…… 그리고 폼 좀 잡아 보겠다는 선배로부터 「차차 알게 될 거야」라는 말 따위를 들었던 일까지. 정식 사원으로 근무하지 않는 이상 이십대 어린 청맹과니들에게 조이랜드와 같은 곳에서의 한때는 정말이지 소중한 경험이 된다. 물론 킹은 여기에 살인 사건이란 간섭 물질을 넣어버렸다. 개인적으로는 엄청나게 긴 연작이 될 수 있었다는 생각에 참으로 아쉬움을 느낀다. 그럼에도 공포의 집과 유령 이야기는 좋았다고 여겨진다. 사실을 써냈다고 해도 그것이 지역적이고 극히 개인적인 일이라면 독자는 호응하기보다는 남의 일로 판단해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느낄 테지만, 놀이공원과 공포의 집 그리고 유령을 덧붙임으로써 자연스레 관용어구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소설의 시작부터 찬찬히, 꼼꼼하고 자상하게 위로 떠오른다. 「자신 있으면 들어와 봐.」 조이랜드에서 자랑하는 어둠의 놀이 시설에 내걸린 문구이지만 이 소설은 공포의 예상보다는 즐거움의 세계로 가득 차 있다.



덧) 킹 아저씨의 입담의 원천은 얇은 윗입술이기라도 한 걸까. 바라건대 『조이랜드』 후속편도 내시라.



posted by 아잇

『레베카』 대프니 듀 모리에 (현대문학, 2013)

· 책_롱 2013. 3. 24. 16:52


레베카 - 6점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현대문학


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듯하나 화자라고 할 만한 이의 이름이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면 두 소설 모두 그녀들의 입과 생각, 시선만을 차용해 끈덕지게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반대로 양쪽 모두 다소간 열린 결말이라는 점에서는 일치를 보이고 있지만, 헨리 제임스는 유령인지 뭔지의 존재를 확정짓지 않아서 해석의 여지가 조금 더 많은 반면 『레베카』는 살아있었던 인물을 등장시키고 상대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길을 보다 좁혀 놓았다. 대프니 듀 모리에는 소설을 시작하면서 우리에게 비밀을 알려 주겠다고 약속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완전치 않을 정도로만. 스티븐 킹에 의하면 모든 공포 이야기들은 두 가지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공포가 자유롭고 의식적인 의지의 행동(악을 행하려는 의식적인 결정)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과, 공포가 운명적으로 예정되어 있어서 벼락처럼 외부에서 찾아오는 이야기들. 『레베카』는 분명 후자로 여겨지는데, 그렇다고 해서 한 방에 강펀치를 날리지는 않고, 이를테면 소설이 거의 절반 이상 진행될 때까지 공포의 원흉을 그대로(끈질길 정도로 집요하게) 화자 밖에 배치해 놓는다 ㅡ 흡사 브램 스토커의 소설에서 드라큘라 백작이 수작을 거는 것과 비슷하게, 댄버스 부인이 '나'의 자살을 종용하는 대목은 공포의 전초전으로밖에는 여겨지지 않음과 동시에 공포 자체이기도 하다. 『레베카』에는 공포물을 좋아하는 남자들이라면 언제까지고 싫증내지 않을 겁탈 장면 따위는 없지만 독자가 으레 체험하게 되는 반사회적 행위를 집어넣은 뒤 그저 지켜보기만 하면서 차분히 죽은 자를 끄집어낼 준비를 한다. 여기서 유난스러울 정도로 풀과 꽃과 나무로 묘사된 맨덜리 저택의 미로 같은 구조는, 다소간 비경제적으로 보이는 '나'의 심리 묘사를 뒷받침해 주는 버력이 되며 지적 생명체로 하여금 좌뇌와 우뇌를 위아래로 쪼개 버리고 싶을 정도로 혼란스레 만들기도 한다(주인공이나 독자나 고비를 넘기자면 꽤나 고통스럽지만). 집이란 물건은 때로는 여자들에게 있어 왕국과도 같다. 이 말할 줄 모르는 콘크리트 덩어리는 그녀들이 자각하든 그렇지 않든 교활하고 소름끼치는 장소일 수 있으며 주인도 모르는 방문객을 맞이하는 무도회장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여자인 '나'는 집에서 음식을 먹을 때도 눈치를 보아야 하고 언제 어디서나 감시당하는 기분을 느끼는데다가 온전한 집주인 노릇조차 하지 못한다. 전 주인인 레베카의 흔적을 모조리 지워 버리지 않는 이상 '나'는 환영받지 못하는 불청객일 뿐이며, 외려 그 집 때문에 파멸당할 위기에 봉착하고 마는 거다 ㅡ 드 윈터도 '나'를 사랑해서라기보다는 맨덜리 저택에서 혼자 지내는 게 두려웠던 것이 아닐는지. 어쨌든 '나'는 처음 보는 남자와 순식간에 결혼해 버리는데(①대체 왜 영국의 여류작가들은 그토록 결혼에 목을 매는가, ②작가가 잊어버렸는지 어쨌는지 결혼 후의 '나'는 반 호퍼 부인과 편지 한 통도 주고받지 않는다 ㅡ 아니면 내 쪽에서 잊어버렸든지), 죽은 레베카의 악의는 살아있는 댄버스 부인으로부터 발현되므로 '나'는 산 자와 죽은 자 때로는 결혼 상대인 남편과도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단추 세 개짜리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어도 사람은 모르는 거다. 과거와 현실의 접점을 형성하는 것은 우연찮은 외부의 것일지라도 그 과거를 있게 만든 건 정장의 주인공에 다름 아니므로.



posted by 아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