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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조이랜드』 스티븐 킹 (황금가지, 2014)


조이랜드 - 10점
스티븐 킹 지음, 나동하 옮김/황금가지


물하나의 어린 애새끼가 겪은 여름날의 추억인지 아니면 살인 사건을 다룬 스릴러인지 갸우뚱하게 되지만 나는 전자의 손을 들어준다. 그렇게 하고 싶다. 킹의 작품을 많이 읽어 본 것은 아니지만 『조이랜드』는 은근히, 손에 쥐었다고 설명하기 힘든 흐릿한 서사로도 독자의 집중력을 끌어올리고 있는데, 이 소설은 이렇게만 끝을 맺어서는 말이 되질 않는다. 이시다 이라의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시리즈>를 읽은 사람이라면 『조이랜드』가 풍기는 냄새를 어림짐작할 수 있을까. 좀 알려주길 바란다. 서지정보에 의하면 어쩐지 비스름한 느낌일 것 같으니. 즐거움을 판다는 다소 키치한 슬로건으로 무장한 놀이공원 조이랜드에서 파트타임을 시작한 데빈 존스는, 흔히 '성장소설'의 ㅡ 나는 『조이랜드』를 성장소설로 보지 않지만 적어도 몇 편을 이어 더 쓴다면 그렇게 말해줄 용의가 있다 ㅡ 주인공이라 불릴 법도 하건만 그렇기엔 너무나도 짧은 편이다(그러니 킹이여, 더 쓰라!). 갓 스물을 넘긴 남자애가 파트타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어디 있겠나. 내가 보기엔 막노동을 하지 않는 이상 서비스업에 치중되기 십상이지만 반대로 이야깃거리가 풍부해서 좀처럼 바닥을 드러낼 기미가 없다. 그만큼 사람과 사람이 만나기 쉬운 까닭이다. 내가 도일(渡日)해 초밥가게에서 일하던 때ㅡ 게살을 빼어 먹으려 안간힘을 쓰는 아이에게 스테인리스로 제작된 기다란 도구를 건네자 그의 부모가 흐뭇하게 바라보던 일, 멀리 시골에서 놀러 온 커플에게 하나 둘 셋을 외치며 기념사진을 찍어 준 일, 한국에서 쓰는 통화라며 5백 원짜리 동전을 카운터 옆 게시판에 붙여놓았던 일, 스태프 전용 흡연실에서 같은 층 편의점 아가씨와 눈인사를 주고받던 일, 근무 마지막 날이 되었을 때 일요일마다 들르는 단골로부터 캔 맥주 한 봉지를 건네받던 일, 함께 일하던 중국 여자애의 옆구리를 건들며 되지도 않는 농을 치던 일…… 그리고 폼 좀 잡아 보겠다는 선배로부터 「차차 알게 될 거야」라는 말 따위를 들었던 일까지. 정식 사원으로 근무하지 않는 이상 이십대 어린 청맹과니들에게 조이랜드와 같은 곳에서의 한때는 정말이지 소중한 경험이 된다. 물론 킹은 여기에 살인 사건이란 간섭 물질을 넣어버렸다. 개인적으로는 엄청나게 긴 연작이 될 수 있었다는 생각에 참으로 아쉬움을 느낀다. 그럼에도 공포의 집과 유령 이야기는 좋았다고 여겨진다. 사실을 써냈다고 해도 그것이 지역적이고 극히 개인적인 일이라면 독자는 호응하기보다는 남의 일로 판단해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느낄 테지만, 놀이공원과 공포의 집 그리고 유령을 덧붙임으로써 자연스레 관용어구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소설의 시작부터 찬찬히, 꼼꼼하고 자상하게 위로 떠오른다. 「자신 있으면 들어와 봐.」 조이랜드에서 자랑하는 어둠의 놀이 시설에 내걸린 문구이지만 이 소설은 공포의 예상보다는 즐거움의 세계로 가득 차 있다.



덧) 킹 아저씨의 입담의 원천은 얇은 윗입술이기라도 한 걸까. 바라건대 『조이랜드』 후속편도 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