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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노예 12년』 솔로몬 노섭 (열린책들, 2014)


노예 12년 - 8점
솔로몬 노섭 지음, 오숙은 옮김/열린책들


12년안 '인간에 대한 인간의 잔인함(man's inhumanity to man)'이 무엇인지를 노예 플랫은 분명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자유인이었으나 꾐에 넘어가 납치되어 노예가 된, 칼과 포크를 대신해 제 검은 손가락으로 음식을 취해야만 했던 플랫. 그는 워싱턴의 윌리엄 노예수용소, 리치먼드의 구딘 수용소, 뉴올리언스의 프리먼 수용소 ㅡ 제 소유의 동물들 앞에 나와 명령하는 운영자들 ㅡ 를 거쳐 드디어 자신을 구입한 이에게 '팔리게' 된다. 공식적인 첫 주인 윌리엄 포드를 비롯해 존 M. 티비츠, 그리고 난폭하고 무례한 힘, 교양 없는 머리, 탐욕스러운 정신의 결함으로 무장한 에드윈 엡스까지(채찍, 등을 홧홧하게 만드는 그 빌어먹을 채찍!). 그나마 상냥하고 다정했던 포드에게 칭찬을 받으려 열심히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비록 그가 노예의 신분이 되었다 해도 인간적인 대우에 어쩔 수 없이 발현된 합당한 반응이다. 그의 기쁨의 원천은 지시한 것보다 많은 성과를 내어 제 주인을 놀라게 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러나 이내 무자비한 농장 경영주 엡스에게 팔려 가며 그의 10년에 가까운 고난은 비로소 시작되고 만다. 노예라는 것이 그를 도울 능력은 전혀 없었으나 외려 그를 고자질할 가능성이 있었고, 그는 자유에 대한 권리를 선언하는 것이 오히려 어리석은 행동이었을 것이라 단정한다 ㅡ 주인의 지시가 씌어있지 않으면 편지조차 보낼 수 없고 통행증 없이는 밖을 나다닐 수도 없으며 행여 순찰대의 눈에 띄기라도 하는 날에는 개에게 쫓기고 채찍에 맞기 십상이다. 솔로몬 노섭이라는 온전한 이름 대신 플랫이라 불린 이 남자 역시 몰래 종이 한 장을 훔치고 펜을 만들어 자신을 구해내 줄만한 편지를 쓰긴 하지만, 그것은 곧 부탁을 받은 자의 배신으로 인해 불속에서 활활 타오르며 생명을 잃고 말 뿐이다. 플랫의 부치지 못한 편지는 그로 하여금 희망의 빛이 흔들거리다 못해 실망의 한숨 한 번으로도 쉬 꺼지게 만든다. 그는 한밤의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삶의 끝으로 가야 할 것이었다.(p.227) 노예들이 꿇었던 무릎을 펴고 일어서는 날은 눈앞에 당도할 수 있을까. 플랫이 두 번째로 점찍은 구원자로 인해 마침내 제 주인을 떠나면서, 물론 그는 기뻤겠으나, 엡스의 농장의 노예들 ㅡ 엉클 에이브럼과 보브, 윌리, 피비…… 이제 솔로몬 노섭의 삶에서 영원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이 남겨진 자들이 두 발로 자유로이 직립할 날 말이다. 「안녕히 계십시오, 주인 나리.」 자신의 소유주에게 남긴 마지막 인사, 끝내 과감히 한 방 차주지 못하고 허리를 굽히는 작별의 제스처를 취했을 때 자유인 솔로몬 노섭의 표정은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