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기담집』 무라카미 하루키 (비채, 2014, 개정판)

· 책_롱 2014. 8. 9. 15:30


도쿄 기담집 - 8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비채


골적으로 '우연'에 집착한 「우연 여행자」를 시작으로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노골적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개인적으로 내 취향과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인데, 그에 반해 「하나레이 해변」이나 「시나가와 원숭이」는 꽤 괜찮았다. 하나레이 해변에서 상어에게 오른쪽 다리를 물어뜯겨 죽은 아들의 어머니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하나레이 해변」은 유독 그 색감 때문인지 시종일관 우울한 기운이 틈입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ㅡ 막바지에 다다라 '외다리 서퍼'의 목격담이 등장해도. 주인공 사치(어머니)는 하나레이에 집착하고, 서핑을 하려는 젊은이 두 명과 조우한다. 그녀는 그들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주지만 외려 어드바이스를 받아야 할 것은 그녀 자신이며, 아무것도 결말지어지지 않은 채 이야기는 끝이 나고 만다. 「시나가와 원숭이」도 마찬가지다. 자꾸만 자신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여자가 있다. 우여곡절 끝에 드러난 진실은 원숭이가 그녀의 집에서 이름표를 훔쳐갔기 때문이라는 것. 「하나레이 해변」과는 달리 일정 부분 매듭이 해소된 감은 있지만 이쪽 역시 다른 단편들과 같이 기이하게만 보인다. 하루키의 소설이라는 것은 대개 이런 식이다. 불가해한 것처럼 여겨지는 일이 벌어져도 당하는 쪽은 여간해서는 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그것에 천착해 제 삶을 팽개치기도 하고, 그런 과정에서 어떻게 해서든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겪어 온 삶에 있어 방관자인 동시에,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과 사건들에 대해서도 (무지막지할 정도로) 철저하게 일상의 공기에 그 흐름을 맡긴다. 소위 하루키 문학(이라고까지 부를 건 없지만)은 메타포를 숨겨 놓든 그렇지 않든 겉으로는 무미건조한 것이며 그 속에는 심리적 결핍, 무심함(과 책무) 그리고 서브컬처에서 오는(혹은 그쪽을 향하는) 특질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극한 상황에 도달하면 다시 돌아온다는(혹은 이 세계의 메커니즘이 무한히 되풀이된다는) 극즉반(極則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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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밟기』 루이스 어드리크 (비채, 2014)

· 책_롱 2014. 7. 5. 15:44


그림자 밟기 - 6점
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이원경 옮김/비채


의 일기(日記). 어느 쪽이라도 거짓이 아니며 어느 쪽이든 간에 진실을 위장한 거짓이거나 거짓인 체하는 진실이다. 흔쾌히 뒤통수를 내어주는 남편과 기꺼이 다리 오므리기를 뿌리치는 아내의 우울한 줄다리기는, 그날그날의 일기라는 티트라그푸타의 기록으로 현현된다. 티트라그푸타는 힌두교 신화에 나오는 지옥의 왕 야마의 기록관이다. 그에게는 인간의 행위를 기록한 장부를 보관하는 역할이 주어져 있는데, 인간이 죽어 야마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 바로 이 티트라그푸타가 작성한 장부를 토대로 죽은 자의 생전 행동들을 읽어 내려가고 그에 따라 재판을 받는다. 이야기 속 아이린은 스스로 티트라그푸타가 되어 자신의 일기를 기록하고, 그러므로 이것은 이미 시작부터 기분 좋은 소설이 아니게 된다ㅡ 동시에 조심해야 한다, 이 부부의 삶은 특기할만한 경우가 아니라 도처에 널린 피해자들의 진술이므로. 사랑은 후다닥 지나가고 불신은 곪을 대로 곪아서 애정이라는 전제를 먹어 삼킨다(이들은 이미 같은 종족이 아니다). 친밀의 제스처를 취해도 이미 오래전 교류는 끝난 셈이고 원만함은 최초부터 휘발성에 가까운 성질이었으며 둘은 꽤나 촉박하게 서로의 해설자 역할에서 손을 떼어버린다. 아이린과 길이 다른 날 다른 장소에서 만났더라도 그들은 애정이라는 구렁에 한쪽 발을 넣은 채 잔뜩 경계를 했을 것이 틀림없다. 누군가와 헤어지면서, 혹은 섹스를 하고 나서 '끝'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그녀는 남편을 향해 어떻게 자신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리고 그는 구조대의 황홀한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아내에게 머리끄덩이를 잡힌 채 들려 나온다. 끝없는 드잡이는 서로를 지치게 할뿐이건만 그들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림자가 아닌 그들 인간 형상의 선명했던 색조는 예전부터 바래고 바랬는데도 말이다. 섬뜩한 은유. 치열한 탐침. 여러 종류의 악순환. 정밀하지 않은 해독(解毒). 어느 쪽이 됐건 진실의 위장과 거짓의 은폐는 모든 것을 종료시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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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히가시노 게이고 (비채, 2014)

· 책_롱 2014. 5. 24. 12:57


몽환화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비채


가 투신자살해 죽었다. 죽음의 이유가 불분명한 가운데 어느 날 그 죽은 자의 사촌 리노가 방문한 할아버지 댁에는 꽃들이 심긴 정원이 있었고, 그중에는 아름다운 노란색 꽃 하나가 덩그러니 있다. 하지만 수상쩍게도 그 꽃을 공개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할아버지마저 부조리한 현장만을 남겨둔 채 살해당한다. 그리고 평소 할아버지의 꽃 사진을 블로그에 정리했던 리노에게 메일이 한 통 도착하게 된다. 「문제의 노란 꽃 사진은 지금 바로 삭제하시길 강력히 권합니다. 블로그도 빨리 폐쇄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과거 분자생물학연구실에 적을 두었던 노인의 식물에 대한 연구, 손녀 리노의 죽은 사촌이 몸담았던 인디 밴드, 그런 리노에게 접근해 온 괴이한 남자, 그자의 남동생 소타와 리노의 만남, 소타의 첫사랑과 그의 출생……. 이런저런 복선들이 한데 엮이는 과정이 자못 흥미롭다. 에도시대에 존재했다고 하는 노란빛을 내는 나팔꽃, 그것이 이 소설의 시발인데, 왜 노란 나팔꽃을 지금에 이르러서는 볼 수 없는가 하는 물음에서 출발한 소설이 어느새 미스터리의 냄새를 풍기며 얽히고설키는 모양을 따라가다 보면 은밀한 범죄가 근저에 깔린 새로운 이야기를 마주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독소 · 흑소 · 괴소소설』을 빼고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데, 엊그제 손에 들게 된 이 『몽환화』의 간기면을 보니 벌써 2쇄였다. 국내에 고정 독자가 많다고 하는 그의 팬들이 과연 이 소설의 평가를 어떻게 할지 궁금해진다. 하나 더, 후쿠시마 원전의 이야기도 살짝 등장하긴 하지만 (아마도) 그런 쪽을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天空の蜂(천공의 벌)』란 작품이 있는 모양이니 ㅡ 『몽환화』와 원전의 접점은 소타의 전공에서만 발견할 수 있으므로 ㅡ 차라리 그쪽에서 찾는 것이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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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마실 11

· 신간_개취 2014. 5. 13. 15:52

아름다운 책 이야기 - 10점
이광주 지음/한길사


속죄나무 1 - 8점
존 그리샴 지음, 안종설 옮김/문학수첩


속죄나무 2 - 8점
존 그리샴 지음, 안종설 옮김/문학수첩


리틀 드러머 걸 - 8점
존 르 카레 지음, 조영학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셰이프 시프터 - 6점
토니 힐러먼 지음, 설순봉 옮김/강


얼간이 윌슨 - 10점
마크 트웨인 지음, 김명환 옮김/창비



날씨충격 - 8점
온케이웨더 취재팀 지음/코난북스


어용사전 - 10점
박남일 지음/서해문집


작은 한옥 한 채를 짓다 - 8점
황인범 지음/돌베개


길버트 그레이프 - 8점
피터 헤지스 지음, 강수정 옮김/호메로스


육아의 탄생 - 8점
사와야마 미카코 지음, 이은주 옮김/소명출판

아메리카 - 8점
레알 고부 지음, 양혜진 옮김, 프란츠 카프카 원작/이숲


니체 - 10점
정동호 지음/책세상



사회주의의 심리학 - 8점
귀스타브 르 봉, 정명진/부글북스


로버트 서비스의 트로츠키 왜곡에 대한 비판 - 8점
폴 르블랑 지음, 이수현 옮김/책갈피

고바야시 다키지 선집 2 - 10점
고바야시 다키지 지음, 이귀원.전혜선 옮김/이론과실천


위대한 왕 - 8점
니콜라이 바이코프 지음, 김소라 옮김, 서경식 발문/아모르문디


미국의 목가 1 (반양장) - 8점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문학동네


미국의 목가 2 (반양장) - 8점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문학동네


향신료의 지구사 - 8점
프레드 차라 지음, 강경이 옮김, 주영하 감수/휴머니스트


옛 그림에도 사람이 살고 있네 - 8점
이일수 지음/시공아트(시공사)


일본사 여행 - 8점
하종문 지음/역사비평사

물리학 패러독스 - 8점
짐 알칼릴리 지음, 장종훈 옮김/인피니티북스


타이어 테크놀로지 - 10점
(일)삼영서방 편집부 지음/골든벨


나의 점집 문화 답사기 - 10점
한동원 지음/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후설 현상학에서의 직관 이론 - 8점
에마누엘 레비나스 지음, 김동규 옮김/그린비


서유기의 비밀 - 8점
나카노 미요코 지음, 김성배 옮김/모노그래프


EBS 스페이스 공감 - 8점
[EBS 스페이스 공감] 제작진 지음, EBS MEDIA 기획/예담

다 빈치와 최후의 만찬 - 10점
로스 킹 지음, 황근하 옮김/세미콜론


옛 그림, 불교에 빠지다 - 8점
조정육 지음/아트북스


원시전쟁 - 10점
로렌스 H. 킬리 지음, 김성남 옮김/수막새


불온한 검은 피 - 10점
허연 지음/민음사


대성당 (반양장) - 8점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문학동네


위성인간 - 8점
한스 올라브 랄룸 지음, 손화수 옮김/책에이름


이런 이야기 - 6점
알레산드로 바리코 지음, 이세욱 옮김/비채


나나 - 8점
에밀 졸라 지음, 정봉구 옮김/예문


마하바라타 - 8점
R. K. 나라얀 엮음, 김석희 옮김/도서출판 아시아


맥베스 - 8점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태원 옮김, 조지 헌터 판본 편집, 스탠리 웰스 책임 편집/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리어 왕 - 8점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태원 옮김, 조지 헌터 판본 편집, 스탠리 웰스 책임 편집/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햄릿 - 8점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노승희 옮김, 스탠리 웰스, T. J. B. 스펜서 편집/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오셀로 - 8점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강석주 옮김, 스탠리 웰스 책임편집, 케네스 뮤어 판본편집/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감성사회 - 8점
최기숙.소영현.이하나 엮음/글항아리


핵무기에 관한 다섯 가지 신화 - 10점
워드 윌슨 지음, 임윤갑 옮김/플래닛미디어


동양 고전과 역사, 비판적 독법 - 8점
천쓰이 지음, 김동민 옮김/글항아리


데리다를 읽는다 / 바울을 생각한다 - 8점
테드 W. 제닝스 지음, 박성훈 옮김/그린비


위대한 실패 - 8점
베른트 잉그마르 구트베를레트 지음, 장혜경 옮김/율리시즈


죽음의 식탁 - 8점
마리 모니크 로뱅 지음, 권지현 옮김/판미동

고아, 족보 없는 자 - 8점
권은혜 외 지음, 박선주 외 엮음,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기획/책과함께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 - 10점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안인희 옮김/돌베개


한시의 성좌 - 10점
심경호 지음/돌베개


국어 문장 표현법과 원리 - 8점
장요한 지음/계명대학교출판부


우주의 끝을 찾아서 - 10점
이강환 지음/현암사


피버 드림 - 8점
조지 R. R. 마틴 지음, 이수현 옮김/은행나무


겐지 이야기의 전승과 작의 - 8점
김종덕 지음/제이앤씨

보이드 - 8점
프랭크 클로우스 지음, 이충환 옮김/도서출판 Mid(엠아이디)


신자유주의와 권력 - 8점
사토 요시유키 지음, 김상운 옮김/후마니타스





posted by 아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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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 알레산드로 바리코 (비채, 2014)

· 책_롱 2014. 5. 13. 01:00


이런 이야기 - 8점
알레산드로 바리코 지음, 이세욱 옮김/비채


는 것과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아마도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진지한 일(자동차에 이름을 붙이는 데에도)이라면, 울티모(마지막 사람)를 아이의 이름으로 낙점한 부모의 의중에는 신비스런 열의와 든든한 신뢰가 깃들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냄새의 자취에는 바람이 불지 않고 마음의 행로에는 질서가 없다. 울티모의 앞에는 구애되는 것이 없으며 그의 등 뒤에는 이미 걸어 온 곧게 뻗은 길과 위험한 굽이들이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이란 그저 남들이 다 끝내지 못하고 남겨둔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거나 다른 사람들이 우리 대신 마무리할 일을 시작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p.93) 소설에서는 엔진이 고장 나서 도로변에 차를 세운 레이서나 사고를 당해 죽은 레이서를 지칭하는 것으로 '레티라도(물러난 사람)'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것을 리베로 파르리의 말에 대입하자면ㅡ 레티라도의 뒷일을 조몰락거리려 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거나 혹은 다른 이들이 시작하고자 하는 일을 벌여 놓은 게 바로 다름 아닌 레티라도(우리)인 것이다. 처음 보는 건물들의 블록을 돌아나가면 ㅡ 왼쪽일까? 오른쪽일까? ㅡ 도시 전체가 안개에 휩싸여 있을지 깨끗한 진열창 안에서 공작 깃털 눈알 문양을 만들어내는 여러 개의 불빛들이 있을지 알 수 없는 ㅡ 설령 같은 곳을 뱅뱅 돌다가 '빌어먹을, 여기가 어디지?' 하는 질문이 튀어나올지언정 ㅡ 이 물음이 경이로운 이유는 ㅡ 답이 없고, 답을 찾을 수 없으며, 이미 만들어진 그 무엇도 없기 때문이다(레티라도 전이건 후이건 결국에는 모두가 같은 레티라도일 뿐이다) ㅡ 울티모는 활주로를 걸으며, 제 호주머니 속에 있던 흙을 꺼내 동생의 호주머니로 옮겨 준다. 말라깽이에다가 눈은 쥐색이며 늘 주사를 맞아야 하는 사람처럼 허약해 보이는 울티모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기억에서 지워버린다. 자기가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를 알고 그것을 해내는 것에만 진정으로 살아 있음을 느끼고 그 앞과 뒤는 그저 기다리거나 추억할 뿐이다.(p.327) 그가 꿈꾸던 막연한 미래는 천천히 걸어서 왔지만 그는 세상에서 훔쳐낸 곡선들로 자신만의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길 위에서 살았고 길 위에서 사랑했으며 길 위에서 죽고 자기만의 길 위에서 꿈을 꾸었다.



posted by 아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