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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도쿄 기담집』 무라카미 하루키 (비채, 2014, 개정판)


도쿄 기담집 - 8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비채


골적으로 '우연'에 집착한 「우연 여행자」를 시작으로 다섯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노골적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개인적으로 내 취향과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인데, 그에 반해 「하나레이 해변」이나 「시나가와 원숭이」는 꽤 괜찮았다. 하나레이 해변에서 상어에게 오른쪽 다리를 물어뜯겨 죽은 아들의 어머니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하나레이 해변」은 유독 그 색감 때문인지 시종일관 우울한 기운이 틈입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ㅡ 막바지에 다다라 '외다리 서퍼'의 목격담이 등장해도. 주인공 사치(어머니)는 하나레이에 집착하고, 서핑을 하려는 젊은이 두 명과 조우한다. 그녀는 그들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주지만 외려 어드바이스를 받아야 할 것은 그녀 자신이며, 아무것도 결말지어지지 않은 채 이야기는 끝이 나고 만다. 「시나가와 원숭이」도 마찬가지다. 자꾸만 자신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여자가 있다. 우여곡절 끝에 드러난 진실은 원숭이가 그녀의 집에서 이름표를 훔쳐갔기 때문이라는 것. 「하나레이 해변」과는 달리 일정 부분 매듭이 해소된 감은 있지만 이쪽 역시 다른 단편들과 같이 기이하게만 보인다. 하루키의 소설이라는 것은 대개 이런 식이다. 불가해한 것처럼 여겨지는 일이 벌어져도 당하는 쪽은 여간해서는 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그것에 천착해 제 삶을 팽개치기도 하고, 그런 과정에서 어떻게 해서든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겪어 온 삶에 있어 방관자인 동시에,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과 사건들에 대해서도 (무지막지할 정도로) 철저하게 일상의 공기에 그 흐름을 맡긴다. 소위 하루키 문학(이라고까지 부를 건 없지만)은 메타포를 숨겨 놓든 그렇지 않든 겉으로는 무미건조한 것이며 그 속에는 심리적 결핍, 무심함(과 책무) 그리고 서브컬처에서 오는(혹은 그쪽을 향하는) 특질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극한 상황에 도달하면 다시 돌아온다는(혹은 이 세계의 메커니즘이 무한히 되풀이된다는) 극즉반(極則反)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