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미쓰다 신조 (비채, 2013)

· 책_롱 2013. 11. 19. 15:16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비채


낙에 '고립', '민속 신앙'과 같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지라 도조 겐야 시리즈는 꼭꼭 찾아 읽고 있다. 번역된 시리즈 중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다음으로 흥미롭다고는 생각하나, 끝까지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풀리지 않는 것들이 꽤 많다. 끝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의 행방, 표지를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어 놓은 것(첫 번째 의문과 이어져 있기라도 한 것일까), 소후에 시노가 느낀 '무엇'의 정체…… 만약 이것들이 단지 독자된 입장에서만 느낀 다소 비약된 것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부러 의도된 것이라면, ㅡ 전작에 이어 재등장한 소재 또한 있으니 ㅡ 그렇다면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의 속편은 반드시 나오고야 말리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은 없다). 어쨌든 이 소설은 '미즈치'를 키워드 삼았다. 일단 미즈치란, 뱀 비슷한 생물로 네 발이고 입에서 독기를 뿜어내 인간에게 해를 미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뱀이란 것은 불사의 생물로 여겨짐과 동시에 불경과 외경의 이미지 모두를 가지고 있는데, 앰뷸런스에 뱀이 그려져 있는 것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줄로 안다(이쪽에는 서양의 종교, 신화 등이 얽혀 있긴 하지만).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에서는 미즈치를 물의 신으로 받들어 지내는 마을이 등장하고, 사람들은 비가 많이 오거나 가뭄일 때 바로 이 미즈치 님을 위한 제의를 지낸다. ㅡ 거기에 바칠 큼직한 호박은 머리, 대량의 미역은 머리털, 크고 윤기 흐르는 조롱박은 몸통, 가느다란 무 두 개는 양팔, 둥글고 모양이 고른 순무 두 개는 좌우 유방, 멧돼지 간은 내장, 전복은 여성의 성기, 실 뭉텅이는 음모, 굵은 무 두 개는 양다리를 상징하는 제물인 것으로…… ㅡ 물론 이것 역시 농경생활이 바탕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일종의 신앙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주민들은 홍수와 가뭄으로 인해 자신들이 입을 피해를 심리적으로나마 그쪽에 기대게 되고 만다. 그렇다면 이에 뒤따르는 것은 일반 주민들 위에 서는 자, 즉 제의를 집전할 소위 신관의 필요성과 그의 권위가 대두되기 마련이거니와, 이것은 차후 제의의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자그맣고 편벽한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굴절된 사고방식을 낳을 수 있음에 다름 아니다. 소설에는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자신이 행할 제의에의 성공과 결코 실추되어서는 안 될 권위를 지키려는 ㅡ 혹은 그 무소불위함을 이용하여 사사로운 이득을 취하려는 ㅡ 추악하다고 해도 모자라지 않을 인물이 등장하고, 한창 제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신남(神男)이 죽는 것으로 이야기는 비로소 시작된다. 그러나 죽음은 폭포가 쏟아지는 호수 위 배에서 일어난 것이며, 곁에 있는 자라고는 신남을 제외하곤 배를 젓는 사공밖에는 없는데다가 그마저도 집배 바깥쪽에 있어 제의 동안에는 안쪽에 자리한 신남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출판사의 보도 자료처럼 '호수 밀실 살인'인 것인데, 이래서야 일반의 것들과 다를 바가 없겠으나 그럼에도 민속적 · 지역적 특색이 더해지다 보니 꽤 기묘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이 도조 겐야 시리즈를 설명하라면 개인적으로는 다소 SF 냄새를 풍기려는(그런 의지가 보인다) 교고쿠 나쓰히코와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물 그 사이쯤에 위치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어째 기술하려는 것 하나하나가 헤살이 될 지경이어서 약간의 조바심과 근질거림에서 주춤하고 있는 중이다…… 아아, 나는 이 소설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수가 없다…….



덧) 이 시리즈 중 처음으로 일본 단행본판 표지를 그대로 가져온 것은 그간의 표지들이 너무 기괴해서일까?



posted by 아잇

『진상(전2권)』 미야베 미유키 (북스피어, 2013)

· 책_롱 2013. 6. 4. 22:44
  • 와, 이거 벌써 읽으셨군요!
    일본 에도물 특유의 낯선 단어와 이름들이 처음엔 좀 불편할 수도 있는데, 몇 권 읽다보면 금방 익숙해져요~ㅎ
    그나저나 저도 빨리 읽어보고 싶네요.^^

    BlogIcon 블랑블랑 2013.06.15 14:49 신고
    • 역시 재미있습니다ㅎㅎ 믿고 보는 미미 여사죠ㅋ

      BlogIcon 아잇 2013.06.16 09:44 신고 DEL


진상 - 상 - 8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북스피어


아, 이 책, 두껍다. 해도 해도 너무 두껍다. 두 권 합쳐 1,100쪽이 조금 안 되니까 고래가 숨을 쉬러 물 밖에 나올 때처럼 독자들도 이따금씩 책을 덮고 딴짓을 좀 해야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뿐이라면 애초 말을 안 꺼냈을 거다. 『진상』, 엄청나게 느리다. 여기에는 상당한 인내가 필요한데, 집어넣은 이야기가 다채로워서 아마도 앞서 말한 '딴짓'은 이 부분에서 다소간 해소되지 않을까 싶다. 백화만발(百花滿發)이랄까, 그러면서도 초(楚)나라 장왕(莊王)의 삼년불비(三年不飛)랄까, 끝까지 곧장 읽어 내려가면 분명 뿌듯한 감개가 있으리라. 더구나 이만한 분량을 소화해 냈다면 어느 자리에 가서도 당당히 뽐낼 수 있다. 1,000쪽이 넘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현대사회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으니까(사실일지도 모른다!). 물론 한 가지 핸디캡이라면 핸디캡이겠지만 시대물 ㅡ 그것도 '에도 시대물'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독자들이 가지는 반감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번이 어쨌느니 마치가 어쨌느니 나가야가 어쨌느니 하는 것들, 거기다가 가게 이름과 수많은 등장인물들까지, 현대물이 아님은 물론이거니와 숱한 고유명사로 인해 자연스레 형성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다. 하지만 보르헤스에 의하면 이 '문제'라는 단어는 근본적으로 음험한 소망을 담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데, 바로 적절치 못한 해결책을 조장할 수도 있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반대로 말해서 이 '문제'라는 허들만 넘게 되면 혹은 이것을 '문제'로 취급하지 않으면 꽤 쉬운 형태로 『진상』 읽기에 돌입할 수 있다 ㅡ 친절하게도 책 뒷날개에 등장인물을 따로 모아 놓았으니 더 말할 것도 없겠지만, 이것마저 싫다면 그냥 가만히 서서 아웃되는 게 좋을 정도다. 패스트볼 타이밍이라고 생각해서 기습 번트를 시도했는데 난데없이 체인지업이 들어와 포수 파울 플라이로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까딱하다간 더블 플레이를 내줄 수도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지 정보에 '기적의 신약 영묘왕진고(靈妙王疹膏)를 둘러싼 비밀'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나는 잠깐 동안 저 옛날의 '호랑이 연고(tiger balm)'를 떠올렸다……. 어쨌든 그 시절이라고 달랐겠냐마는 일단 신약이니 백신이니 하는 말에는 임상실험, 독과점, 라이선스와 같은 단어들이 뒤따르곤 하는데, 『진상』은 바로 그것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에 쫄깃한 사리라도 하나 추가하듯 앞서 언급했던 '다채로운 이야기'도 버무려져 있고. 특히 두드러진 것은 ①외모가 남녀 관계에 미치는 영향 ②장남이 아닌 남성의 삶 ㅡ 이 두 가지인데, 어느 쪽이나 볼 안쪽에 스리가 생긴 것처럼 까다롭기 짝이 없다. 무말랭이같이 생겼든 거부감이 들 정도로 잘생겼든 간에, 다소간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미추를 다룬다면 역시나 보르헤스의 문제(음험한 소망)가 끼어들 여지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장남이 아닌 남성의 삶이란 건 또 어떻고. 지금이야 많이 누그러졌을지도 모르지만, '가업은 장남이 이어받는다'는 통념이 있다면 그 형제들은 그저 쓸모없는 터럭으로 취급받기 십상이다(편집자 후기에 보다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ㅡ 당연한 말이지만 작가는 이 쓸모없는 터럭을 보다 매력적으로 그려 놓아서 '쓸모없음의 쓸모'를 증명해냈다. 『진상』은 ㅡ 진상(眞相) 또는 진상(進上) ㅡ 신약 왕진고를 둘러싼 과거의 살인 사건, 남녀의 외모, 장남이 아닌 남성, 이것을 줄기 삼아 읽어 나가면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개인적으로 하나 더 말하고 싶은 것은 등장인물 개개인의 묘사인데, 외모, 성격, 언변, 무력 등등 꽤 자세하다 싶을 정도로 나와 있어서 흡사 『프로야구 스카우팅 리포트 2013』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런 느낌을 받았다. 하기야 사스콰치같이 생긴 게 아닌 바에야, 안되는(못생긴) 놈은 뭘 해도 안된다, 안되는(못생긴) 놈은 하다못해 제비뽑기를 해도 안된다, 따위의 말이 통할 리도 없는데다가, 굉장한 미소년으로 그려지는 유미노스케 역시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남성적인 멋은 찾아보기 어려워서 외려 징그럽게 느껴지기도 하므로, 어찌 보면 이것도 쓸모없음의 쓸모라는 밸런스가 유지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ㅡ 그래서 역시나 유미노스케의 개성보다는 헤이시로의 내레이션 쪽이 더 설득력 있다. 각설하고…… 라기에는 좀 뜬금없지만, 그럼 자, 이제 『진상』을 읽을 시간입니다(더 이상 쓰기가 귀찮은 감도 있어서).



posted by 아잇

『안주』 미야베 미유키 (북스피어, 2012)

· 책_롱 2012. 8. 17. 20:34


안주 - 8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집자 후기에도 '진화'에 대해 적혀있다. 미야베 미유키의 괴담은 분명 『흑백』에서 변했다 ㅡ 그래서 '변조 괴담'이다. 여기서 나는 하나를 더 생각한다. 『흑백』에 이은 이 『안주(暗獸)』에 이르러서 한 번 더 진화(란 표현이 과연 적절할는지는 모르겠다)했다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인 주인공 오치카를 보면 확연히 알게 된다. 전작이 어딘지 모르게 꿈속에서 헤매고 있다는 인상이었다면 이번에는 무대가 되는 미시마야의 '흑백의 방'에서 더 한 발짝 내딛는다. 바깥이란 현실로. 그러니까 어떤 보이지 않는 필터를 통해 이야기되었던 것이 지금은 문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언제라도 그것을 열고서 목전에 할 수 있다는 느낌이랄까(꼭 메세나의 성공사례 같다). 다만 작가의 말대로 '괴기소설이면서 이렇게 귀여운 이야기뿐인 거야?' 하는 기분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표제작 「안주」를 치워놓으면 외려 전작만큼 혹은 전작보다 더 사람들의 '다른 마음'이 흉물스레 전해져오니까. 그런고로 흑백의 방의 이야기는, 듣고 버리고, 이야기하고 버리고 ㅡ 이긴 하지만 인간의 마음만은 남게 된다. 조금씩 변하면서, 이따금 똘똘 뭉친 정념이 되기도 하면서. 사람을 그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에 있어 사람은 그것을 없애는 존재이긴 하지만, 사람 자체가 먼저 나서서 그리움과 미움이란 마음을 없앨 수 있을까 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으니까 말이지 ㅡ 자꾸만 흘레붙는 게 또 사람의 마음이니까. 얄궂다면 얄궂은 얘기다.



읽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르겠지만 수록작 「달아나는 물」과 「안주」에서 그런 애틋한 뭔가를 접할 수 있다. 두 작품에서만큼은 악과 미움에서 선 혹은 사랑으로 그 테마의 이동이 이루어진 듯하다. 물론 여기에도 유령이나 귀신으로 여겨질 만한 것이 나오기는 하지만 어쩐지 산뜻함이 느껴진다(심지어 나는 이야기가 '맛있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한 편을 본 기분이기도 하고. 「신이든 인간이든 대개 마음이 있는 존재라면 언제가 가장 쓸쓸할까 ㅡ 아무도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란다.」(「달아나는 물」) 그런가하면 「안주」에는 구로스케라는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사람 옆에서는 살 수 없는 기교한 생명'이 등장해 신자에몬 할아버지를 울리기도 한다(여기서는 냉혈한인 나도 좀 울컥했다). 중요한 건 '생물'이라는 점이다.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유령이 아니다. 게다가 귀엽다. 그러나 가까이하면 인간의 독한 기운에 쐬어 위태롭게 된다. 내 추측이고 또 책을 읽어야 알 테지만, 좋아하면서도 다가갈 수 없는 그 마음의 정체는 수국 저택에서 도망하지 못하고 죽고 만 하녀의 아이가 아닐는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어두운 곳에 외톨이로 살고 있는 생물이라는 의미로 어둡다는 뜻의 '암(暗)'에 짐승을 뜻하는 '수(獸)'를 더해 직접 만든 단어라고 하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고 만다.



이쯤 되면 말할 것도 없이(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덤불 속에서 바늘 천 개」와 「으르렁거리는 부처」는 앞의 두 이야기에 비해 '무서운' 쪽에 속하게 되는데 나는 「덤불...」 쪽이 조금 더 그렇다고 느낀다. 바늘 가게의 장남이 쌍둥이(이름은 오하나와 오우메라고 한다)를 낳는다. 그런데 상인들은 쌍둥이는 집안을 나눈다, 재산을 나눈다고 하여 꺼린다. 결국 대장 노릇을 하는 어머니의 노기에 밀려 쌍둥이 중 하나를 차남의 양녀로 보내 분가하게 하고 분가한 아이는 절대 본가에 발을 들일 수 없게 된다. 문제는 본가의 아이(오하나)가 죽은 후다. 장남과 차남이 본가와 분가를 합치려는 계획을 세우자 죽은 아이의 귀신이 나타난다. 그 계획을 포기하자 이번엔 나타나지 않는다. 이제 그들은 오우메를 지키기 위해 인형사를 고용해서(여기서부터 섬뜩해진다) 본가에 두기로 하고 오우메가 하는 것은 밥 먹는 것부터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에 들기까지 인형에게도 똑같이 해준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둘의 처우가 다르면 인형의 얼굴과 몸뚱이에 바늘이 꽂힌다. 그에 따라 오우메의 몸에도 새빨간 습진이 생긴다. 인형에 꽂힌 바늘이 있던 부분에 똑같이……. 미야베 미유키는 일체의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오우메의 습진이 생긴 자리에 희미하게 들었던 멍을 통해 인간이란 생물이 좇는 '다른 목적'과 '다른 마음'을 오롯이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오우메 본인의 마음까지도(처음 들었을 때의 멍은 습진에서 나타나는 증상과 비슷하다, 라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ㅡ 뭐, 읽어보는 게 가장 정확하겠다만. 비교적 짧게 쓰는 것이 왠지 미안해지지만 「으르렁거리는 부처」는 마을의 관습이란 것을 차용한 거라고 본다. 고립된 산간 마을의 무시무시한 관습 ㅡ 같은 거라면 다른 곳에서도 접한 적이 있는 이야기지만(마쓰모토 세이초의 논픽션에서였던가) 이 소설에서는 다르다. 관습이란 형태를 빌려 몰래 일을 꾸미는 인간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관습 자체보다 더 무섭다…….



각설하고, 맨 처음 이 『안주』가 진화하고(며) 변했다고 했는데 이것은 '미시마야의 수수께끼 간판 아가씨' 오치카의 모습에서뿐만이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인간관계의 발전에서도 그렇다. 새롭게 나타난 오카쓰란 여인과 덜 익은 호리병박 아오노 선생의 등장으로 왠지 모르게 미시마야 변조 괴담이 한층 더 와글와글해질 것만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인터뷰에서 작가가 습자소 선생(아오노)이 지금부터 오치카와 어떤 관계가 될지는 비밀이라고 한데다가 ㅡ 그럼 『흑백』의 나막신 가게 아들은 팽(烹) 당하는 건가 ㅡ 흑백의 방을 만든 미시마야의 주인 이헤에는 이것이 '백 가지 괴담 대회'라며 앞으로의 이야기를 더욱 기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들이 흑백의 방을 향한 ㅡ 흑백의 방에서 출발한 여정에 텐징 노르가이처럼 굳건한 조력자가 될지 그저 그런 빠꼼이가 될지는 제쳐두고라도(굳이 말할 것도 없지만), '옛날이야기' 속에서의 사람과 사람이 공유하는 마음과 연대감이 지금의 소위 사회파 추리소설에서 보이는 양상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이, '미야베 월드 제2막'이라는 이 에도 시대물을 읽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계속하자 ㅡ 더 듣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여기여기여기를 보자.



덧) 『안주』는 독자 펀드로 탄생한 소중한 책이다. 독자들에 의해 십시일반으로 모인 5천만 원(열흘 만에!)이란 마케팅 비용은 일대 사건이었고, 이것은 출판사에서 만든 같은 금액의 것과는 의미도 다르고 차원도 다르다. 그야말로 '원기옥'이다.



덧) 원기옥 : 만화 『드래곤볼』의 주인공 손오공이 사용하는 것으로 손을 들고 생물체들의 기를 모아서 쏘는 기술. 그만큼 협력하려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말이 되겠다. 이에 따른 신조어로는 '베기옥'이 있다.

posted by 아잇

『잠복』 마쓰모토 세이초 (모비딕, 2012)

· 책_롱 2012. 6. 22. 15:09
  • 작가의 특이함,위대함(?) 때문인지 꼭 읽어봐야 겠군요. ㅎㅎ 거기다 단편이라는 점이 너무 마음에 드는데요?

    BlogIcon 강맥주씨 2012.06.28 16:18 신고
    • 재미가 쏠쏠합니다. 이 아저씨 자서전도 내년에 나올 예정이라는데 그것도 미스터리한 내용일지……ㅎ

      BlogIcon 아잇 2012.06.29 09:33 신고 DEL
    • 일단은 소설 먼저 꼭 읽어야겠네요 하하 소설을 읽어야 자서전도 보고 싶은 생각이 들겠네요 ㅎㅎ

      BlogIcon 강맥주씨 2012.06.29 19:01 신고 DEL
    • 트릭보다는 이야기 중심이라 더(?) 재미있을지도 모릅니다^^

      BlogIcon 아잇 2012.06.30 10:25 신고 DEL
  • 안녕하세요 아잇 님^^
    저도 개인적으로 단편을 좋아해요^^
    특히, 세이초의 단편<잠복>은 정말..뭐라 말로 설명할 빵뻡이 없..ㅋㅋ 좋다, 정말 좋다 라고 밖에는^^
    아잇 님 멋진 리뷰 덕분에 <잠복>의 반응이 좋아요.ㅎㅎ
    이곳 서울은 오후에 천둥을 동반한 소나기를 한차례 퍼붓더니 더위는 좀 가신 듯 합니다. 곧 시작 될 여름 무더위 잘 이겨 내세요.^^

    모비딕_young 2012.07.03 20:36
    • 오잉. 모비딕 님이다ㅎㅎ 세이초 자서전이 내년으로 잡혀 있다는 소식에 혀를 차고 있었는데요. 우선적으로다가 다른 작품들이 좀 더 분발한 다음에ㅋ

      BlogIcon 아잇 2012.07.03 22:29 신고 DEL


잠복 - 10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모비딕


학의 본질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만 누락되는 삶 역시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수녀의 일기처럼 순수했던 사람 하나가 웬일인지 범죄자가 된다. 가업을 이으려 착실히 반죽을 개던 선량하기만 한 메밀국수집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를 해한다는 식의(이유야 어쨌든 그런 상황에 몰릴 수밖에 없는) 범죄. 동기는 너무나도 분명하지만 거기서부터 범죄에 이르기까지의 경위가 애달프다. 고도의 경제 성장, 샐러리맨의 급증, 그에 따라 반듯하게 재단된 사회로부터의 사회적 배경과 인간의 정념이, 얼굴 뒤쪽 보이지 않는 손짓의 '거절하지 못할 제안'과 반응해 몰락의 길을 걷고 만다. '증명 시리즈'로 악명 높은(!) 모리무라 세이치(森村誠一)는 이런 말을 했다. 「'세이초 이전'은 일반 독자들과 동떨어져 있었다. 주로 고답한 문학이자, 문단의 칭찬 일색으로 독자의 선택을 강요하는 문단주도형 문학이었다. 하지만 세이초 작품은 독자가 주도했다.」 그런가하면, 세이초와 친했던 한 고서점 지배인이 언젠가 세이초의 입원 소식을 듣고 얼른 가보았더니 「병원은 심심해서 싫구만, 뭔가 재밌는 것 없을까」 하는 말을 듣고는 어이가 없었다는 적도 있다고 한다.



어떤 작품이야 안 그러겠냐마는, 단편집 『잠복』은 모리무라 세이치의 말대로 독자가 주도하는, 한 사람이 파멸할 때까지 끝까지 가보는, 단편이라는 적은 용량임에도 최대의 중량감에 육박하는 초여름 백화만발(百花滿發)의 성과물이다 ㅡ 병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지금쯤 냉동인간으로 있다가 어느 병원에서라도 불쑥 나와 주면 어떨까. '재밌는 걸 좀 찾으러 왔다'고 하면서……. 『세이초와 그 시대(淸張とその時代)』, 『마쓰모토 세이초 사전(松本淸張事典)』 ㅡ 이런 책도 있군 ㅡ 등의 저자이면서 시인이자 문학비평가인 고하라 히로시(鄕原宏)는 세이초 연구의 일인자로 알려져 있다. 어떤 작가가 어지간히 유명해지면 그 사람에 대한 책이 종종 출간되기도 하는데, 고하라 히로시가 쓴 책은 '사전'이다(앞의 책). 세이초의 작품,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명, 지명 등을 총망라한 책이 바로 『마쓰모토 세이초 사전』이라고 하니, 그가 얼마나 대단한 작가였는지 새삼 느낄 수 있다. 다음은 고하라 히로시와, 전 아사히신문사 사장 나카에 도시타다(中江利忠)의 세이초에 대한 코멘트이다.





마쓰모토 세이초를 빼고는 일본 미스터리를 말할 수 없다.

ㅡ 고하라 히로시


이 대선배의 오랜 꿈은 자신의 작품의 무대가 된 곳곳을 아사히신문사 전용기를 타고 확인해보는 것이었다.

ㅡ 나카에 도시타다




나카에 도시타다의 말은 실현되었는데, 언젠가 제트기를 타고 운젠후겐산(雲仙普賢岳)의 화산 가스와 재가 날리는 분화구 근처에서 세이초가 흥분한 나머지 필름이 없는 것도 모른 채 셔터를 눌러대고는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어.」라며 '소년처럼' 분한 기색이었다고 한다……. 각설하고, 세이초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ㅡ 이 단편집으로 다시 돌아오면, 그의 작품은 대개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 혹은 「대체 어떤 방법으로 살인을 저질렀을까?」 보다 「아아, 제길, 그럼 주인공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그것만은 제발!」 하는 기대와 불안밖에는 들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는 텍스트와 투쟁하거나 그것에 동화되는 게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원망(願望)'하게 된다. 이를테면 「목소리」의 전화 교환원(다카하시 도모코)이나 「귀축」의 인쇄업자(다케나카 소키치)를 들 수 있겠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들의 평안은 경사진 툰드라 평원의 짧은 여름보다도 더없이 적게 느껴진다. 한창 맛있게 피우고 있는 담배가 그대로 파국의 향(香)을 사르게 되는 꼴이다(도코모 씨에겐 좀 미안한 말이지만). 「귀축」은 벅수 같은 ㅡ 창자를 찾아내기 힘든 게처럼 ㅡ 인물의 마음속에 똬리를 튼 무사안일로 인해 괴물로 변하는 모습을 그린다. 「목소리」의 경우는 갑작스레 장(章)이 바뀔 때 왠지 모를 불안감이 느껴지는데, 이러한 시점의 변화 ㅡ 꼭 추리편과 해답편처럼, 혹은 밸린저(Bill S. Ballinger)식 컷백처럼 ㅡ 는 왕왕 독자로 하여금 괴로움에 가까운 불안한 추측에 더쳐 정신의 뒤집힌 앙양(昻揚)을 낳게 한다.



줄거리의 조밀함이란 측면에서는 「일 년 반만 기다려」와 「지방 신문을 구독하는 여자」를 꼽을 수 있겠다. 전자는 그야말로 카타스트로프의 정점을 찍는데, 여기서는 형사 소송법의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와 함께 맞물린 유연한 '이야기의 그럴듯함'의 경첩이 주인공의 '계산 착오'를 씁쓸하게 만들고 있다. 「지방 신문을 구독하는 여자」는 한 지방 신문에 소설을 연재하는 작가가 형사 내지는 탐정의 역할로 분(扮)해 사건을 추적해나가는 이야기다.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가 편집한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북스피어, 2009)에 달린 그녀의 해제는 이 작품을 두고 '끝까지 다 읽은 뒤 다시 한번 앞머리로 돌아와 읽어보라'고 조언한다(나도 그녀의 말에 따라 그렇게 해보았다). 그저 어둡고 무서울 뿐이었던 결말이 새삼 애달프게 변하리라 ㅡ 이 단편은 「얼굴」과도 비교해볼 수 있는데 주인공들이 자신의 정체가 탄로날까봐 전전긍긍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 역시 묘한 조바심을 내게 된다. 「얼굴」에 대해 좀 키치적인 비유를 하자면, 통으로 된 아이스크림의 얄팍한 테두리처럼 긁어내면 긁어낼수록 자꾸만 녹아내려 종국에는 다 먹어치워 바닥을 드러내고 마는 무참한 행보랄까……(허허).



표제작 「잠복」은 내게는 최고의 단편이며 동시에 가장 뒷맛이 좋지 않은 작품이기도 하다. 화자의 입장이 되는 유키 형사는 세이초의 『짐승의 길』(북스피어, 2012)에서의 히사쓰네 형사처럼 자신이 쫓는 여자에게 동화되고 어느 정도의 감정선을 따라간다는 점에서는 일견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히사쓰네에게는 그 여자를 품으려는 일념이 있었고 또 그 과정에서 죽기까지 하지만). 그러나 유키 형사가 보여준 감정에는 이해와 연민이라는 명제가 끼어든다. 처음부터 그가 작심한 듯 쫓는 여자는 왠지 느낌이 좋지 않다. 이 여자, 수상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유키 형사는 어찌된 일인지 '아갈묵념(!)'하고 만다. 그런가하면 「카르네아데스의 널」은 「일 년 반만 기다려」와 같은 맥락으로 형법의 '긴급 피난'이란 조건을 내세운다. 물론 앞의 단편처럼 안쓰러운 결말에서는 매한가지……라는 것은 찰나이며, 이미 등 뒤에서 시작된 오케스트라의 비극적인 연주에 맞춰, 이성에 의해서만 움직였던 인간이 순간의 감정에 휘말리는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는 18세가 되던 해 고쿠라의 작은 지방 신문사인 진서보(鎭西報)의 문을 두드렸다가 학력의 벽에 부닥치고 마는데 ㅡ 그러다 훗날 아사히신문사 규슈 지사가 사옥 신축을 계기로 고쿠라로 이전한 후 그곳에 취직한다. 그렇다면 왠지 수록작 「투영」은 그런 일면을 얼마간 반영한('투영'한) 결과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이초 자신은 신문사의 꽃인 기자가 아니었기에 소설 속에서나마 그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던 게 아닐는지. 게다가 이 단편은 인간관계의 정(情)과 '정의는 승리한다'는 쾌감 또한 느낄 수 있어 다른 수록작에 비해 그나마 밝은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다만 사건 발생 장치에 좀 무리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긴 하다).



……대단한 작가라고 해서 어떤 장애나 의무감을 가지고 접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굳이 그의 작품에 엄지손가락을 들어주지 않아도 읽을 사람은 반드시 읽을 거라는 확신도 있고, 외려 칭찬 일색의 감상은 진정한 가치를 오도할 수도 있다는 추측뿐이다(그렇게 생각하는 주제에 잘도 이런 글을 쓰고 있군……). 단편집 『잠복』에서 우리는 사람들 틈에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고 싶었던 배우, 티 없이 순수했지만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여인, 짐승처럼 제 자식을 버리는 인쇄업자, 충동의 와류에서 허우적대는 지식인과 마주친다. 동시에 악의 감정은 더치고 더쳐 텍스트는 ㅡ 총을 든 겁쟁이, 깨어있는 소시민 등을 양산해내고 있는 거다. 『잠복』이란 단편집…… 주인공의 시선이라는 다소 텁텁한(그럴 수밖에!) 필터를 통해 만들어지는 맥놀이가 얄궂고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덧) 아래 사진은 '영구 보존판'이란 딱지가 붙은 「잠복」의 DVD와 해설서인데 ㅡ 30쪽 미만의 단편을 무려 116분의 영상으로 만들었단다. 당연히 보고 싶다……!



사족) 곰곰 머리를 굴려보니 일본의 2인조 록밴드 B'z(비즈)에 기타와 작곡을 하는 마쓰모토 다카히로(松本孝弘)라는 사람이 있는데, 마쓰모토란 성을 가진 자들은 모두 '제목 짓기' 센스가 발군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실제로 그가 제목을 지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의 노래 제목 몇 개만 써보자면 다음과 같다. 「안녕 상처투성이 날들이여(さよなら傷だらけの日々よ)」, 「충동(衝動)」, 「맨발의 여신(裸足の女神)」 ㅡ 사실은 좀 억지로 갖다 붙인 이야기다.




posted by 아잇

『화차』 미야베 미유키 (문학동네, 2012)

· 책_롱 2012. 4. 11. 11:36
  •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네요...
    이건 여담이지만 댓글 다는 창을 못 찾아서 한참 헤매다 달고 가요.^^;;;
    촌년같이...ㅠㅠ

    BlogIcon 블랑블랑 2012.04.11 17:18 신고
    • 아, 블로그 스킨을 바꾸면서 저도 첨엔 엄청 헤맸었어요ㅠ 그나저나 『화차』는 역시 책으로 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 국내영화는 안 봤으니 나중에 보고 나면 어떨는지?)

      BlogIcon 아잇 2012.04.11 17:47 신고 DEL
  • 저도 열심히 찾았네요..
    개인의 오류도 무시 못해요..지름길을 향해 남들보다 더 빨리 파멸하는 사람들이 있어요..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의 주인공 오콩코를 보면, 나이지리아에 제국주의 백인 선교사 시대가 오거든요..이 때 더욱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인물이 결국..(제 3 세계, 제국주의..이런 시각이 아닌 눈으로^^)..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저도 공감합니다 ^^

    BlogIcon 초록손이 2012.11.08 21:28
    • 오콩코라면 주객전도의 표본 위에 올라선 자가 아닙니까…… 곰곰 생각해보면 사실 그쪽이 더 무서울지도요. 내부자에서 이방인이 된다는 건, 때에 따라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수반되니까요ㅠ

      BlogIcon 아잇 2012.11.08 22:23 신고 DEL


난 해였던가. 일본에서 제작된 드라마 버전을 봤는데 조금 실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기억으로는 다소 낡아보였고 서사구조도 핀트가 좀 안 맞는달까. 그래서 역시 책으로 읽어야겠다고 결심, 최근 출간된 개정판을 보았다. 읽는 데 두 시간 정도 걸린 것 같으니 일단 몰입도는 상당히 좋다. 나에게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은 기대한 만큼을 웃도는 것들도 많고 ㅡ 사실 (거의) 다가 그렇다. 소비자는 돈을 가지고 있고 자본가는 상품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돈을 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본가는 우리에게 허용된 순간적인 자유나 우월함을 오래 참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소비자의 돈을 다시 회수하지 못할 경우, 잉여가치를 얻을 수 없고 나아가 그 돈으로 생산에 재투자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자본가가 다양한 유혹의 기술을 개발하는 데 혈안이 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자신의 우월성을 보장해 주는 돈을 강제로 뺏을 수 없다면, 자발적으로 소비하도록 유혹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밖에 달리 길이 없다(강신주, 『철학 VS 철학』, 그린비, 2010). 그럼 여기서 다시 코제브의 말이 등장하게 된다. 「우리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타자가 욕망하는 대상을 스스로 욕망하고 있고, '대가리가 커질수록' 자신의 욕망이 타자의 욕망이란 것을 망각한다. 아무리 인간이 신이 될 수도 있고 동물로 전락할 수도 있다지만 ㅡ 본능을 이겨낼 수 있는 이성이 존재한다지만 ㅡ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반드시 결핍이 존재할 때만 집착이란 것이 생겨날까?  내가 보기에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행복을 추구하는 것만 같다. 명백히 본말전도다. 이래서는 말이 되질 않는다.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이다.」 전체의 시스템이 문제라지만 개인의 오류도 분명히 있다. 개인은 영민하다지만 집단은 우매한가? 이 말은 반드시, 모든 경우에 성립할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posted by 아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