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시체를 묻어라』 루이즈 페니 (피니스아프리카에, 2014)

· 책_롱 2014. 11. 29. 15:44


네 시체를 묻어라 - 8점
루이즈 페니 지음, 김연우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근작 『냉혹한 이야기』를 읽지 않았다면 소용이 없을 듯하다. 분명히 그때 올리비에는 살인죄를 선고받은 뒤 복역하고 있었으나 가마슈가 새삼 그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 때문이다. 『네 시체를 묻어라』는 새로운 사건과 함께 그 올리비에 사건을 재수사하는 이야기가 중첩되어 있다. 차갑고 새하얀 이미지의 퀘벡과, 그와 비슷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폐쇄적 기운이 감도는 문예역사협회. 바로 거기서 사람이 죽는다. 퀘벡, 나아가 캐나다를 기초한 인물로 알려진 샹플랭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괴짜 하나가 죽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야기ㅡ 루이즈 페니의 소설들은 원주민과 이주민이라는 사회배경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그리고 가마슈의 부하 보부아르가 과거 사건이 벌어졌던 마을을 다시 찾는 장면이 이따금 간섭하고 있다. 루이즈 페니의 작품을 몇 권 읽어나가고, 또 이 『네 시체를 묻어라』까지 오게 되니 코지 미스터리란 수식어는 이제 떼어버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런' 느낌의, 그러니까 따뜻하게 데운 우유와 샌드위치처럼 차분히 가라앉은 고요한 분위기는 유지되고 있지만 조금씩 조금씩 가마슈의 발길이 넓어지고 있는 기분이다. 특히 샹플랭을 찾는 여정과 더불어 진행되는 올리비에 사건(『냉혹한 이야기』에서 완벽하게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서의 반전에 이은 반전, 계속해서 가마슈의 머릿속을 맴도는 과어 어느 날의 실수와 악몽, 이 모든 것을 두고 이미 늙수그레한 가마슈의 성장담이라고 해도 좋다. 개인적으로 루이즈 페니의 서술에 박력이 부족한 것을 안타까워하고는 있으나ㅡ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재미있으며, 작가 스스로도 뭔가 생각을 달리한 부분이 있는 것인지 작품이 더해질수록 이전 소설들보다 한 걸음은 더 나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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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과 창조의 시간』 로렌스 블록 (황금가지, 2014)

· 책_롱 2014. 9. 28. 12:20


살인과 창조의 시간 - 8점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황금가지


트리셔 매거가 탐정을 찾았듯 이번엔 매튜가 범인을 갈구한다. 일단 친구인지 적인지 아리송한 자블런이 죽어버렸다. 금요일마다 전화를 걸어 자신의 생사를 알렸던 자블런. 그런데 전화가 끊겼다. 그는 살아있을 때 매튜에게 단단히 봉한 마닐라 봉투를 건넸고 그 안에는 자신을 위협할지도 모르는 세 명의 인물이 적혀 있었다. 자블런은 이를테면 협잡꾼으로 이 사람 저 사람의 약점을 잡아 돈을 갈취하던 사내. 전직 경찰인 매튜 스커더는 흔쾌히,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봉투를 열고 만다. 별 믿음도 없이 십일조를 하며 커피에 버번을 타 마시는 남자는 이런 일에 구미가 당기는가 보다. 자블런의 요청은 무엇이었는가. 밑도 끝도 없는 복수다. 그것 하나면 되었다. 어차피 죽어버린 자가 뭘 알겠나. 매튜는 자블런의 복수라기보다 그저 자블런을 죽게 만든 자의 낯짝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의뢰비도 두둑하고 시간은 많다. 이혼한 전처에게 선심 쓰듯 송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경찰의 끄나풀에 불과한 자블런의 죽음에 관심을 두는 것은 매튜를 제외하곤 없는 것만 같다. 하긴, 그를 죽게 만든 장본인이 아니고서야 귀 밝고 말 많은 공갈범에게 누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각성제를 먹은 상태에서 뺑소니친 여자의 부자 아버지. 포르노를 찍고 이런저런 사고를 여럿 저지른 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여자. 그리고 어린 남자애들에게 성애를 느끼며 주지사가 되려는 남자. 매튜는 이 중에서 자블런을 죽인 범인을 찾아야 한다. 그가 남긴 의뢰비 3천 달러를 들고. 하지만 무면허 탐정 매튜는 어쩐지 안간힘을 쓰는 것 같지는 않다. 전 동료들로부터 지속적으로 러브콜을 받는다는 자부심에서는 아니다. 그렇다고 사명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뻔질나게 암스트롱에 들러 술과 시간을 축낼 뿐. 자블런의 복수를 하겠다는 의지는 있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해 둔 것도 없다. 친구가 죽었으니까. 부탁을 받았으니까. 거기에 돈과 시간이 있으니까. 필요조건이 충분조건으로 됨 직한 명제다. 그거면 됐다. 소설은 아무것도 없다. 매튜도 별말을 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같고. 사례를 받았으니 문제를 해결한다, 최소한 그러려고 해 본다, 이것이 그의 사고방식이자 생활방식. 조금의 군더더기도 없이 시작해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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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혹한 이야기』 루이즈 페니 (피니스아프리카에, 2014)

· 책_롱 2014. 9. 1. 13:24


냉혹한 이야기 - 8점
루이즈 페니 지음, 김보은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리저리 옮겨 다닌 시체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된다. 야생동물 보호구역, 스리 파인스의 어느 곳에서. 심하게 굶주린 이들이 잔뜩 무리 지어 살고 있는 야생동물 보호구역. 그들은 서로를 주저하면서도 이따금씩 생채기를 내는가하면, 바깥으로부터 숨어는 있지만 자신들 역시 과거에 외부인이었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그리고 그들 어제의 과거가 곪기 시작해 기어이 오늘 살갗 위에서 터지고야 만다(악마가 언제나 구석진 곳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까). 도서추리의 냄새가 나는 『냉혹한 이야기』는 짧았던 프라하의 봄의 상처가 더쳐 모든 것이 거의 변하지 않는 마을 스리 파인스에서 곪아터진다ㅡ 마을 주민 클라라의 말처럼 스리 파인스에는 시체를 만들어내(야 하)는 소명이 있는가 보다. 여느 때처럼 가마슈는 누구든지 의심하면서도 누구나의 집에 들어가(초대되어) 차를 마시고 저녁을 대접받으며(흔쾌히!), 종국에는 하나의 인간이 죽기 전과 후의 과정을 밝혀냄으로써 피해자와 범인을 안타까워한다. 그의 신념대로 모든 것은 두 번째 기회를 가질 자격이 있기 때문일까? 그러나 그것은 한마디로 전혀 괜찮지 않은 ㅡ I'm Fine('F'uck up, 'I'nsecure, 'N'eurotic, 'E'gotistical) ㅡ 상황이다.(p.136) 범인(이라고 여겨지는 자 또는 용의자)의 (거짓)말[言]은 입속에서 썩는가하면 공기 중으로 뿜어져 졸렬하고 참혹한 경우에 불거지는 악감정과 거친 언사처럼 다른 사람의 가슴에 박혀 그대로 응고된다. 불쾌한 일이다. 가마슈는 그/그녀를 시큼한 피클처럼 절이고 절여 질겁하게 만들고, 스리 파인스의 주민들은 아귀가 잘 맞는 하나의 작은 편대를 이루고 있었으나 그들이 친구로 여겼던 자의 한마디 한마디가 거짓으로 밝혀짐에 따라 이내 등을 돌리고 만다. 루이즈 페니의 소설이 대개 그렇지만 이 『냉혹한 이야기』는 오리를 데리고 다니는 미친 시인 루스(가장 매력적인 인물이 아닌가)가 써내는 단편적인 시의 구절이 혼란스레 떠다니는 가운데 심농의 냄새가 물씬 흘러넘친다. 물론 심농은 『명탐정 코난』마냥 속전속결이지만(코난의 경우 주간만화 연재 중 3회 안에 사건 해결을 해야 한다는 대원칙이 있다) 매그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가마슈란 감성적 인물의 존재로 인해 결코 쾌적하지 않은 실제의 삶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 중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암호가 약간 아쉽긴 하나(물론 '키워드'가 중요했지만 결국엔 '시간문제'였으므로), 소설은 매력적인 캐릭터의 환원과 함께 인물들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제반에 눈을 돌림으로써 이야기가 갖춰야 할 튼튼한 골격을 쌓았다는 느낌이다. 여러 개의 선택지 중 고를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고 결국엔 범죄의 길에 들어선다ㅡ 이 당연하게 보이는 맥락은 필연적으로 그들 사회와 역사(과거)에 귀결될 수밖에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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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별(전2권)』 도진기 (황금가지, 2014)

· 책_롱 2014. 7. 20. 12:21
  • 저도 한국형 추리소설이란 장르가 무슨 뜻인지 궁금하군요.
    백백교에 대해서는 들어봤지만 어떤 식으로 그 이후의 과정들이 소설로 그려졌는지 궁금하네요. 제목 때문인지 처음에는 종교소설인가 싶었습니다....ㅎㅎ...

    BlogIcon 여강여호 2014.07.20 15:32 신고
    • 저도 제목만 가지고는 전혀 감이 안 잡혔습니다. 솔직히 지금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한국형 추리소설의 본뜻은 아마도, 결국 '한국산(産)'이란 거겠지요ㅋ

      BlogIcon 아잇 2014.07.20 20:36 신고 DEL
  • 오대양 사건 참 끔찍한 일이었죠.소설같은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나고 실제 있었던 일이 소설로 쓰여지는군요.

    BlogIcon 아쫑 2014.07.20 21:16 신고
    • 백백교는 얼핏 들어봤어도 인체 표본 전시는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됐어요... 참 신기한 일이 많이 벌어지는 세상입니다.

      BlogIcon 아잇 2014.07.21 12:08 신고 DEL


유다의 별 1 - 8점
도진기 지음/황금가지


주를 '대원님'이라 부르는 사이비 종교인 백백교(白白敎)의 이야기. 듣기로, 백백교 신도가 교주를 만날 때에는 다섯 가지 계율이 적용되었다고 한다. 깨끗한 마음가짐으로, 교주의 얼굴을 쳐다보지 말아야 하고, 몸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아야 하며, 질문하는 것은 금기인 동시에 오로지 절대 복종의 대답만을 해야 했다고. 이 단체는 당시 민중을 현혹해 재물을 편취하고 여신도들을 속여 간음하는가하면 배신의 조짐이 보이는 신도들을 아무도 모르게 납치하여 살인을 저질렀다ㅡ 전국에 산재한 소위 비밀 아지트에서 300구가 넘는 시신이 발견되었다. 그중 '천원 금광 사무소'라는 간판을 내걸고 수시로 빈 화약을 터뜨린 양주 봉암산 기슭은 금광을 가장해 시체를 처리했던 곳으로 알려졌다. 하나 더,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더 뜨악한 것이 있다. 경찰에 쫓기다 자살한 교주 전용해의 두개골이 '범죄형 두개골의 표본'으로 국과수에 보관되어 오다가 비인도적 인체 표본 전시라는 진정에 폐기가 결정돼 지난 2011년 화장되었다는 사실이다. 소설 『유다의 별』은 여기서 출발한다. 당시 교주였던 전용해라는 인물은 열 개가 넘는 가명을 사용했다. 또 자신의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진을 남기지 않았으며 그의 인상착의는 체포된 백백교 간부들의 진술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도진기의 상상은 실체가 불분명한 전용해란 인물의 죽음과 그의 후손 그리고 백백교와 '낡은 광목천 끈'으로 이어지고, 소설은 몇 가지의 소소한 트릭과 함께 꼬이고 뒤집히는 가설과 검증이 계속해서 뒤섞인다. 최근 과거의 오대양 집단 자살사건이 인구에 오르내리는 가운데, 『유다의 별』은 처음부터 비밀스럽고 뒷맛이 좋지 않을 것 같은 소재를 취함으로써 발단의 몰입에는 일단은 성공했다. 나머지는 읽는 사람의 몫이다. 재미? 당연히 있다. ……그런데 제목은 카(John Dickson Carr)의 소설에서 따온 것일까? 『유다의 창』에서처럼 여기에도 밀실 살인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야기의 줄기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덧) '한국형 추리소설'이란 이상한 명칭에 대하여: 요즈음 날이 거듭되면 될수록 '한국형 추리소설'이라는 말이 빈번하게 쓰이고 있는데, 나는 그 뜻을 당최 이해할 수 없다. 한국적 요소나 문화가 간섭하면 모두 '한국형'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유다의 별』은 분명히 그렇게 부를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할 바에야 차라리 한국'의' 무엇 무엇이라고 하는 편이 낫다. 아니면 아예 빼시라. 대체 뭐가 한국'형'이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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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수첩』 마쓰모토 세이초 (북스피어, 2014)

· 책_롱 2014. 6. 22. 11:06


검은 수첩 - 10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남궁가윤 옮김/북스피어


쓰모토 세이초라면 덮어놓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는 마당에, 지난 『10만 분의 1의 우연』 이후 그의 작품이 출간되지 않은 것에 대해 내심 조마조마하던 차였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한두 권은 나올 것이라는 소식은 들었지만 느닷없이 '박람강기 프로젝트'의 하나로 그의 에세이가 출간될 줄은 몰랐다. 내용인즉슨ㅡ 추리소설이란 무엇일까 혹은 사회파 추리소설이란 무엇일까, 하는 물음에 답한 텍스트라고 보면 되겠다. 내가(우리가) 최근 들어 하고 있던 생각을 그는 꽤 오래 전부터 해 왔다. 이를테면 순문학과 장르문학이라는 용어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소위 '중간 소설'이라 불리는 요상한 존재에 대해서도 세이초는 수상쩍게 다가간다. 특히 '가장 에세이답다' 라고 느껴지는 1장이 이 책에서 탁월하다고 느꼈다. 대체 어떻게 쓰인 작품을 순문학이라 불러야 할는지, 거기에 추리적 요소가 어느 정도까지 틈입하면 순식간에 '순문학 → 추리소설'로 변용되는지에 대해 고민거리를 안긴다. 「……소설은 재미가 본질이다. 재미를 잃어버린 소설에서 독자가 떠나가는 것을 아무도 비난하지 못한다. 오늘날의 문제를 언급하는 소설이라 해도, 추상적으로만 만들어서 관념적인 사상으로 요란하게 꾸몄을 뿐 모래를 씹듯 무미건조하다면, 많은 독자가 꺼리는 것은 당연하다.」 옳은 말이다. 그럼에도 세이초가 묘사한 것과 같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분명히 그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문 사례라서, 이를테면 '평론가들이나 좋아할 법한 소설'이라는 딱지가 붙기 십상인 것이 사실이다. 세이초 자신도 말했듯 소설 자체가 재미있으면 비평가에게 경멸받는 것만 같다. 여기서 말하는 재미란 앞서 언급했던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사상으로 요란하게 꾸민' 것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뭔가 그럴듯한, 무척이나 애매모호해서 그 작품이 대단한 것처럼ㅡ 심지어 문학성이 출중하다는 둥 인간의 본질을 꿰뚫었다는 둥 하는ㅡ  기분이 느껴지는 작품의 대척점에 있는 소설들이다. 물론 이러한 각론이 모든 경우에 딱 들어맞을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의 풍토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그러니까 대사와 행동 위주가 아니라 인물의 감정과 사유를 꾸미고 명확하지 않은 형용사가 남발하는 작품들이 분명 존재하고, 반대로 그렇지 않은 작품 또한 존재하는 법이다. 이런 것을 두고 왈가왈부하고 싶진 않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문학성이냐 현실성이냐, 추상의 모호함이냐 구체적 흥미냐 하는 것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명제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다만, 이 책의 제목이 어째서 '검은 수첩'으로 정해졌는지 궁금할 뿐이다.



posted by 아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