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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그림자밟기』 루이스 어드리크 (비채, 2014)


그림자 밟기 - 6점
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이원경 옮김/비채


의 일기(日記). 어느 쪽이라도 거짓이 아니며 어느 쪽이든 간에 진실을 위장한 거짓이거나 거짓인 체하는 진실이다. 흔쾌히 뒤통수를 내어주는 남편과 기꺼이 다리 오므리기를 뿌리치는 아내의 우울한 줄다리기는, 그날그날의 일기라는 티트라그푸타의 기록으로 현현된다. 티트라그푸타는 힌두교 신화에 나오는 지옥의 왕 야마의 기록관이다. 그에게는 인간의 행위를 기록한 장부를 보관하는 역할이 주어져 있는데, 인간이 죽어 야마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 바로 이 티트라그푸타가 작성한 장부를 토대로 죽은 자의 생전 행동들을 읽어 내려가고 그에 따라 재판을 받는다. 이야기 속 아이린은 스스로 티트라그푸타가 되어 자신의 일기를 기록하고, 그러므로 이것은 이미 시작부터 기분 좋은 소설이 아니게 된다ㅡ 동시에 조심해야 한다, 이 부부의 삶은 특기할만한 경우가 아니라 도처에 널린 피해자들의 진술이므로. 사랑은 후다닥 지나가고 불신은 곪을 대로 곪아서 애정이라는 전제를 먹어 삼킨다(이들은 이미 같은 종족이 아니다). 친밀의 제스처를 취해도 이미 오래전 교류는 끝난 셈이고 원만함은 최초부터 휘발성에 가까운 성질이었으며 둘은 꽤나 촉박하게 서로의 해설자 역할에서 손을 떼어버린다. 아이린과 길이 다른 날 다른 장소에서 만났더라도 그들은 애정이라는 구렁에 한쪽 발을 넣은 채 잔뜩 경계를 했을 것이 틀림없다. 누군가와 헤어지면서, 혹은 섹스를 하고 나서 '끝'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그녀는 남편을 향해 어떻게 자신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리고 그는 구조대의 황홀한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아내에게 머리끄덩이를 잡힌 채 들려 나온다. 끝없는 드잡이는 서로를 지치게 할뿐이건만 그들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림자가 아닌 그들 인간 형상의 선명했던 색조는 예전부터 바래고 바랬는데도 말이다. 섬뜩한 은유. 치열한 탐침. 여러 종류의 악순환. 정밀하지 않은 해독(解毒). 어느 쪽이 됐건 진실의 위장과 거짓의 은폐는 모든 것을 종료시키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