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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레베카』 대프니 듀 모리에 (현대문학, 2013)


레베카 - 6점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이상원 옮김/현대문학


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듯하나 화자라고 할 만한 이의 이름이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면 두 소설 모두 그녀들의 입과 생각, 시선만을 차용해 끈덕지게도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반대로 양쪽 모두 다소간 열린 결말이라는 점에서는 일치를 보이고 있지만, 헨리 제임스는 유령인지 뭔지의 존재를 확정짓지 않아서 해석의 여지가 조금 더 많은 반면 『레베카』는 살아있었던 인물을 등장시키고 상대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길을 보다 좁혀 놓았다. 대프니 듀 모리에는 소설을 시작하면서 우리에게 비밀을 알려 주겠다고 약속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완전치 않을 정도로만. 스티븐 킹에 의하면 모든 공포 이야기들은 두 가지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공포가 자유롭고 의식적인 의지의 행동(악을 행하려는 의식적인 결정)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과, 공포가 운명적으로 예정되어 있어서 벼락처럼 외부에서 찾아오는 이야기들. 『레베카』는 분명 후자로 여겨지는데, 그렇다고 해서 한 방에 강펀치를 날리지는 않고, 이를테면 소설이 거의 절반 이상 진행될 때까지 공포의 원흉을 그대로(끈질길 정도로 집요하게) 화자 밖에 배치해 놓는다 ㅡ 흡사 브램 스토커의 소설에서 드라큘라 백작이 수작을 거는 것과 비슷하게, 댄버스 부인이 '나'의 자살을 종용하는 대목은 공포의 전초전으로밖에는 여겨지지 않음과 동시에 공포 자체이기도 하다. 『레베카』에는 공포물을 좋아하는 남자들이라면 언제까지고 싫증내지 않을 겁탈 장면 따위는 없지만 독자가 으레 체험하게 되는 반사회적 행위를 집어넣은 뒤 그저 지켜보기만 하면서 차분히 죽은 자를 끄집어낼 준비를 한다. 여기서 유난스러울 정도로 풀과 꽃과 나무로 묘사된 맨덜리 저택의 미로 같은 구조는, 다소간 비경제적으로 보이는 '나'의 심리 묘사를 뒷받침해 주는 버력이 되며 지적 생명체로 하여금 좌뇌와 우뇌를 위아래로 쪼개 버리고 싶을 정도로 혼란스레 만들기도 한다(주인공이나 독자나 고비를 넘기자면 꽤나 고통스럽지만). 집이란 물건은 때로는 여자들에게 있어 왕국과도 같다. 이 말할 줄 모르는 콘크리트 덩어리는 그녀들이 자각하든 그렇지 않든 교활하고 소름끼치는 장소일 수 있으며 주인도 모르는 방문객을 맞이하는 무도회장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여자인 '나'는 집에서 음식을 먹을 때도 눈치를 보아야 하고 언제 어디서나 감시당하는 기분을 느끼는데다가 온전한 집주인 노릇조차 하지 못한다. 전 주인인 레베카의 흔적을 모조리 지워 버리지 않는 이상 '나'는 환영받지 못하는 불청객일 뿐이며, 외려 그 집 때문에 파멸당할 위기에 봉착하고 마는 거다 ㅡ 드 윈터도 '나'를 사랑해서라기보다는 맨덜리 저택에서 혼자 지내는 게 두려웠던 것이 아닐는지. 어쨌든 '나'는 처음 보는 남자와 순식간에 결혼해 버리는데(①대체 왜 영국의 여류작가들은 그토록 결혼에 목을 매는가, ②작가가 잊어버렸는지 어쨌는지 결혼 후의 '나'는 반 호퍼 부인과 편지 한 통도 주고받지 않는다 ㅡ 아니면 내 쪽에서 잊어버렸든지), 죽은 레베카의 악의는 살아있는 댄버스 부인으로부터 발현되므로 '나'는 산 자와 죽은 자 때로는 결혼 상대인 남편과도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단추 세 개짜리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어도 사람은 모르는 거다. 과거와 현실의 접점을 형성하는 것은 우연찮은 외부의 것일지라도 그 과거를 있게 만든 건 정장의 주인공에 다름 아니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