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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D의 복합』 마쓰모토 세이초 (모비딕, 2012)


히 장르문학이라고 편을 갈라 사람 위에 책 있고 사람 아래 책 있는 것처럼 말하면, 나는 싫다. 짐짓 도저하게 ‘장르’문학이라는 딱지는 붙여놓았지만 ‘순’문학과 비교하며 순간의 오락거리로 치부해버리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심농(Georges Simenon)은 ‘선전 속 인간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는데 세이초 자신도 ‘환상이 아닌 리얼리즘 안에서’ 미스터리를 쓰고 싶다고 했다(실제로 둘은 동시대를 살았다). 복잡다단한 트릭이나 특수한 환경이 아니라 어디서나 일어날 것 같은, 그것. 세이초 작품은 그래서 ‘여흥’이 아니다. 그런데 그의 작품은 언제나 뻑적지근하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그런가. 이런저런 말을 붙여도 역시 초반은 힘이 조금 든다. 얼마 읽지도 않았는데, 뭐야 이건 변죽만 울리는 꼴이잖아, 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정도로다가. 아카데믹한 맛이라기 보단 뭐랄까, 그러니까 쇄빙선처럼 통쾌하게 한방을 먹인다기보다는 아주 야금야금 실체에 접근하고 있다. 아마도 민속학이나 여행, 역사 등과 맞물려 연결되다보니 그런 냄새도 나는 것이리라. 일단 읽다보면 제목에 나타난 것처럼 대체 ‘D’는 언제 나오나, 또 ‘복합’이라는 건 뭐지, 하고 그것이 등장할 때를 숨죽이며 기다리게 된다. 그래서 나도 야금야금 읽는다. 게다가 ‘35’니 ‘135’니, 그 계산광(狂) 여자는 또 뭐고. 주인공 이세가 『구사마쿠라』에 휘둘린 게 아니라 내가 세이초(이야기)에게 휘둘린다. 왠지 이세의 다소 ‘방임’하는 태도가 교고쿠 나쓰히코의 캐릭터 세키구치와도 비슷하고. 초인이나 만능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 버디무비. 『D의 복합』이 보여주는 것은 간단하다. ‘욕망을 추구함에 있어 일정한 분수와 한계가 없으면 안 된다.’ 얼핏 순자(荀子)와도 비슷하군. 그 양반은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지만 그것을 충족시켜 줄 재화는 매우 한정되어 있다’고 했으니 말이다. 염소수염 나라바야시나 까무잡잡하고 뚱뚱한 다케다, 열정적인(!) 하마나카, 무명작가 이세, 기모노의 사카구치까지. 섬세한 장치와 더불어 평이해서 거부감 없는(현실성 있는)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 본문의 ‘작위와 부작위의 문제’라는 장의 제목이 보여주듯 시소 양쪽이 균형을 이루며 멋지게 아귀가 들어맞는다. 다시 한 번 심농을 언급하고 싶다. 「여기 40대 중반의 한 남자가 있다고 치자. 5분 후 물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 어떤 하찮은 이유 때문에 그 남자가 범죄를 저지른다. 그러면 갑자기 그는 더 이상 인간 공동체에 속하지 못하게 되고 하나의 괴물이 되어 버린다. 단 5분 만에 사람들은 그를 혐오의 눈길로 바라본다. 그는 더 이상 사회에 속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심농이 창조한 매그레라는 인물은 지극히(지독할 만큼) 평범한 사람들에 둘러싸인 사건을 풀어나간다 ㅡ 『D의 복합』은 위의 ‘하찮은 이유’로 시작된 범죄는 아니지만 현실성이라는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 그럼 세이초는 뭐라고 했을까. 「물리적 트릭을 심리적인 작업으로 고칠 것. 특이한 환경이 아니라 일상에서 설정을 찾을 것.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일 것. 누구나 경험할만하거나, 어디서나 일어날 것 같은 서스펜스를 추구할 것. 나는 환상이 아닌 리얼리즘 안에서 미스터리를 쓰고 싶다.」


덧) 미미 여사로 불리는 미야베 미유키가 책임편집을 한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북스피어, 2009, 전3권)은 ‘엄청 안 팔렸다’고 하는데 ㅡ 이런 기억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재기발랄한 출판사 사장님의 말이었던 것 같다 ㅡ 『D의 복합』과 함께 출간된 『짐승의 길』(전2권)로 시작되는 ‘세이초 월드’가 국내 ‘장르’문학 팬들뿐만 아니라 더 폭넓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