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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나사의 회전』 헨리 제임스 (열린책들, 2011)


티븐 킹은 자신의 책(『죽음의 무도』)에서 셜리 잭슨의 『힐 하우스의 유령』과 함께 지난 100년간 등장한 초자연적 소설들 중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바로 이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을 꼽는다 ㅡ 동시에 유령의 원형에 관해서라면 친절한 꼬마 유령 캐스퍼를 논의하는 게 더 낫다는 발랄한(!) 단서를 달아두고서. 시골 대저택에 온 가정교사가 유령을 목격하면서 벌어지는 심리공포 소설 『나사의 회전』은 다분히 중의적인 동시에 다의적으로 수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된다. 어린애들의 마음이 구부러져 있거나 가정교사의 시력이 좋지 않거나 하다는 건데(제발 두 가지의 경우밖에 없었으면 좋으련만), 이 고상한 문장으로 하여금 공포가 공포로서 온전히 작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비밀은 비밀로 남겨두는 어정쩡한 미학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과정은 ㅡ 두 번쯤 읽으면 확실히 느낄 수 있다 ㅡ 쉽게 삼킬 수 있게 만들어진 캡슐 속의 약이 아니라 겉의 캡슐이 부서져 바닥에 모조리 쏟아져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다. 가정교사의 이름은 알 수 없으며, 대저택의 주인이라는 작자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등장하지 않고 게다가 마지막에서 아이는 제 가정교사에게 「이 악마 같으니!」 ㅡ 다른 판본에서는 「이 악질아!」라고 ㅡ 하고 소리친다. 가정교사가 헛것을 봤거나 아이들이 거짓말을 했거나 둘 중 하나겠지 뭐, 하고 그냥 넘겼으면 좋겠으나 간단히 그렇게 생각할 수 없으니 실제로 『나사의 회전』은 읽고 난 다음이 고생이다. 인식이 대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인식을 따른다는 칸트의 통찰이나 그 와 반대로 현상세계를 그 자체로 긍정하려했던 니체를 굳이 살펴보지 않더라도 끝에 가서 아이는 죽음을 맞게 되지 않던가? 또 이야기는 주인공이 아닌 가정교사의 시점에서 철저히 진행되지 않던가? 그러니까 독자 역시 그녀가 보게 되는 것 이상은 볼 수가 없잖은가. 유령이 오직 가정교사에게만 보인다는 점에서는 그녀의 환각에 불과한 것이지만(독자로서 그녀의 정신 상태는 믿기 힘든 점이 많다!) 아이들에게 정말 유령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확언할 수도 없는 이유다. 물론 시대상과 프로이트를 들어 섹슈얼리티를 언급하면서(막대기와 탑 vs 나뭇조각의 구멍과 호수) 그녀의 성적억압과 욕구의 좌절에서 오는 극도의 환상으로 볼 수는 있다. 그런데 작품 속 유령의 실체감은 상당하다. 이를테면 유령을 빼면 이상한 점이 발견되는 것인데, 더글러스의 긍정적 평가, 본 적이 없는 퀸트에 대한 묘사 등이 그것이다 ㅡ 이것도 다 미친 가정교사의 탓이고 모든 게 다 환상이며 어쩌다 맞아떨어진 우연의 일치라고 한다면 좋아할 사람은 (우연을 그렇게도 좋아하니)폴 오스터밖에 없을 것이다! 어쨌든 적확한 답은 없고, 단순하다면 한없이 깔끔하지만 복잡하다고 보면 아주 훌륭하게 공포란 장르에서 가치 있는 시도를 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는 작가의 지적 게으름은 찾아볼 수 없으며 오직 ‘제임스의 유령(들)’만이 존재함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