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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영원한 친구』 존 르 카레 (열린책들, 2010)



작품을 읽기 위해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를 먼저 읽었다. 2001년에 구입해 놓고 먼지만 쌓여 있던 그 책은 정말 '최고'였다(『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까지 마저 읽고 『영원한 친구』를 읽는 게 낫지 않았을까?). 확실히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보다는 전체적으로 이완된 느낌이지만 원숙미는 더욱 심화되었다. 몰락한 첩보원의 인상을 받았다고나 할까. 처음 다소 밋밋하다고 느껴지는 찰나 서서히 시작되는 절박함이 드러난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과, 과거에 '일어났던 것'을 풀어놓는 방법은 형식적 틀과 시선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ㅡ 그러나 역시 자꾸만 『팅·테·솔·스』를 읽지 않았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아마 영영 안 읽는다면 언젠가는, 주인공 먼디가 베를린에서 만난 그리스 여자의 말대로 '아인게블로이트' 당할 거라는 생각. 이제는 고인이 된,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라 하겠다)가 과거 『패권시대의 논리』란 책에 발문을 쓴 적이 있는데 거기에 이런 문구가 있다. '나는 『전환시대의 논리』를 비롯한 그 밖의 저서들의 인세가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역설적인 기쁨을 경험했었다. 그 책들이 돌파하고자 했던 시대의 한계가 무너지면, 자연 그 책들은 본래의 소명을 다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전의 질서가 붕괴되는 것이 곧 시대의 본질을 꿰뚫어 나가는 의식의 힘이 소멸되어도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 대목은 20세기에서 21세기로 접어들면서, 과거와 같은 방식의 헤게모니 관철, 다양한 관점에서의 문제 해결의 한계에 있어서도 중요한 논점을 시사한다. 바로 이 『영원한 친구』를 이런 관점에서 읽을 수 있을 거다. 아마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냉전이 완전히 종말된 건지, 그럼에도 그 구도는 아직 남아있는 건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ㅡ '냉전'이란 단어 자체가 갖는 의미가 (다양한 방면으로)크다 보니. 재미있는 건, '영원한 친구인' 먼디와 사샤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장면은 최소한 3번 이상 등장하는데, 이것은 새로운 어떤 것을 잉태하고 발현하려는, 태고와 같은 가장 순수하고 가장 순결한 의지 표현이 아닐까, 라고도 생각해 본다 ㅡ 억지라고 해도 좋다. 그리고 여담 하나. 우연히 발견한 일본어판 제목은 『サラマンダㅡは炎のなかに』다. 이건 뭐지? 샐러맨더는 불꽃 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