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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 홍지웅 (열린책들, 2009)


1월
12일, 3월 23일, 3월 28일만 빠진 2004년 365일의 기록. 이 일기를 몇 번의 호흡에 읽었는지 확인해보니 책 귀퉁이가 총 11번 꺾여 있다(나는 가름끈이 없는 책은 접으며 읽는다). 징글징글하다. 괴상하다면 괴상한 취미겠지만(?) 나는 음반 한 장을 사도 executive producer, producer, co-producer, directer, composer 등을 누가 담당했는지 확인해보곤 한다. 책도 마찬가지(이 책의 발행인은 당연히 홍지웅). 그래서 과거의 어느 날엔가 웹을 검색해 저자의 이야기가 실린 80년대 후반과 90년대의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땐 장발이었다. 『통의동에서...』는 장발의 저자와 그렇지 않은 저자 사진이 모두 있다. '열린책들'의 사무실이나 책들 사진도 풍부하고. 그런데 부제가 '... 2004년의 일기'라고는 하지만 비단 어느 한 해에 국한된, 어느 하나의 직업(!)에 국한된 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아니라 『다잡(多jobs) 홍(지웅)씨의 365일』인 셈 ㅡ 그러므로 결국 이 책을 읽는 건, 그것을 읽음으로써 머릿속에서 책을 쓴다는 적극적인 행위이고, 궁극적으로는 내 우뇌를 즐겁게 하는 일이며(나는 우뇌주이자인지도 모른다), 출판계의 위기다, 침체다, 하는 말이 나와도 좋은 책은 독자가 외면하지 않는다는 상투적이고도 진실된 말에 입각하듯 나도 이 책을 읽는 거다. 2월 19일 일기를 보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를 빗대어, 우리나라에서 1년 동안 책 한 권이 300만 부 이상 팔린 적이 없다는 것을 고려하면 1000만 부는 상상할 수 없는 수치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이건 단순히 이상이나 꿈이 아닌 현실로 나타나야만 하는 일이다. 영화 한 편의 관람료와 책 한 권의 가격은 거의(정말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영화가 더 재미있는지 ㅡ 넓은 의미의 재미 ㅡ 책이 더 재미있는지는 수용자의 차이겠지만, 나는 이것이 이기고 지고의 논리는 아니라고 본다.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책장 어디엔가 꽂힌, 내 머리에서도 잊힌 책을 문득 끄집어내 보는 행위 자체는 영화의 그것보다 더 하다고 느낀다. 왜 책이 영화보다 '안 팔리는지'는 나로서는 의문이다. 게다가 이(내가 들고 있는) 『통의동에서...』도 2009년 3월 10일 초판 1쇄의 그것이다. 출간됐을 당시 도서관에서 잠깐 보고 작년인 2010년 말에 비로소 구입했는데 아직도 초판 1쇄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사람들은 왜 이 책을 읽어보지 않았을까. 아니면 최소한 읽어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걸까. 우리나라의 독자층 ㅡ 내 살 깎아먹는 이야기지만 ㅡ 은 '이런 책'에 흥미가 없는 걸까. 사업장 하나를 굴지의 출판사로 키우고 그간 엄청난 작업을 해왔던 사람의 이야기라도, 소설이나 인문서, 처세에 관련된 책이 아니면 '안 팔리는 시대'인 건가. 폴 오스터의 『빵 굽는 타자기』의 원서 제목 ㅡ 'Hand to Mouth'로 '하루 벌어 하루 산다'는 뜻 ㅡ 처럼 책과 출판 문화는 이런 식으로 진화해온 게 아니며 이 사실 또한 독자를 비롯한 모두가 알고 있을 텐데. 그래서 『통의동에서...』는 재미있게 읽은 책(인 동시에 기록)이면서도 아쉬운 책이다.



덧) 순전히 궁금증에 의한, 아직도 의문인 점. 『나무』 해적판의 주인공인 P는 어떻게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