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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아Q정전』 루쉰 (열린책들, 2011)


쉰의 단편 「아Q정전」은 그 제목의 유사함 때문에 영화 《아비정전(阿飛正傳)》을 생각나게 한다. 그러나 《아비정전》의 마지막 대사, 그리고 나아가(또 한번의 유사성 때문에) 《버디(Birdy)》에서의 새가 되어 날고자 하는 열망을 돌이켜보자면 루쉰의 그것과 닮은 구석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다. 이 루쉰의 중단편집에 15편이나 되는 작품이 담겨 있다고 해도 유독 「아Q정전」을 언급하고, 눈여겨보고, 곱씹어보는 등의 노력을 하는 것은 어쩌면 그런 연유에서일지도 모르고, 과도한 통속성을 지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혹 아니면, 「자네들은 입안에 독을 뿜는 이빨이 없는데도 어째서 이마에 '독사'라는 두 글자를 크게 써 붙이고 거지들을 끌어들여 때려죽이려 하는가?」하고 침울하게 내뱉는 N 선생(「머리털 이야기」)이나 붓으로 종이 위에 동그라미도 제대로 그리지 못했던 아Q(「아Q정전」)의 정신의 간극에서 휘둘리고 있을지도. 그래서 이게 과연 아Q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가 스스로를 자위하고 있어서인지, 애달프게 생각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건가보다. 그런 의미에서 특히 「아Q정전」이 고전으로 읽히는 것은 좀 수상한 구석이 있다. 단순히 고전이라 치부해 버리고서 때에 따라 꺼내보는, 그런 단발성의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헉슬리는 이렇게 말했다. '즐거움은 나눌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연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 때 그 목적은 선행의 대상을 기쁘게 하려는 게 아니라 다만 우리 자신을 위해서다. 스스로에게 힘이 있다는 사실을 거듭해서 자각하는 게 그 목적인 것이다.' 라고. 기만하고 응징하고 학대하는 ㅡ 물론 스스로에게 ㅡ 아Q의 정신 승리법에는 그래서 효용과 미학적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거다. 한 가지 더. 댕강! 하고 멋지게 목이 잘리지 않고 재미없게 총살 당했다는 것이 아Q를 '조금은' 불쌍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