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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책의 우주』 움베르토 에코, 장클로드 카리에르 (열린책들, 2011)


베르토 에코와 장클로드 카리에르의 대담집. '책은 죽지 않는다' 라는 권두 대담으로 시작하긴 하지만 그들 스스로도 인간 수명의 불로장생을 의심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에서인지 책의 마지막은 '죽고 나서 자신의 서재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물음으로 끝난다. 인터넷 때문에 통제할 수 없는 기억이 우리 수중에 들어오게 된 이 상황에서, 각 문화는 무엇을 간직해야 하며 무엇을 잊어버려야 할지 우리에게 말해 줌으로써 여과 작용을 한다고는 하지만, 과연 책 또한 그러한가?


책은 단지 하나의 용기(容器)일 뿐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모든 것을 관찰하고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어쩌면 모든 것을 결정할 수도 있는 '위대한 시각'이었습니다.

ㅡ 카리에르



지금의 책은 과연 천대를 받고 있는가. 예스라는 대답이라면 왜 그런 것인가. 몇 백 권의 책을 전자책 리더에 넣어 다녀도, 무심코 누른 삭제버튼 혹은 자동으로 삭제되는 대출 기한이 끝난 자료는 우리의 기억을 모조리 앗아간다. 어쨌든 움베르토 에코의 말대로, '수저보다 더 나은 수저는 발명할 수 없듯' 책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일단 한번 발명되고 나면 더 나은 것이 발명될 수는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독서라는 행위가 지속적으로 반복될 때마다 책은 변화하고 우리도 변화한다. 인간은 죽지만 책은 죽지 않는 것일까? 책에서 탈출하는 방법으로써 가장 좋은 것은 책을 읽는 것일까? 에코와 카리에르의 대담은 책이 가져온 발자국들, 그림자들, 수많은 이야기들을 그물에 담아 기어이 책의 운명에 대해 까발리고 있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정보전달의 수단으로서 이 책만큼 효율적인 발명품은 아직 없었습니다. 수백 기가바이트 용량의 컴퓨터라 할지라도 반드시 전원에 연결되어야만 하지요. 하지만 책에는 이런 문제점이 없습니다. 다시 한 번 반복하지만, 책은 바퀴와도 같은 것입니다. 일단 한 번 발명되고 나면, 더 이상의 발전이 불필요한 그런 것이라 할 수 있어요.

ㅡ 에코



내가 보기에, 전자책은 책 ㅡ 나로서는 '종이책'이라 명명하는 것이 굉장히 불쾌하게 느껴진다 ㅡ 을 죽이지는 못할 것이다. 아니, 책은 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 책이 비단 전자책의 혼란스런 성격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책의 우주』는 이 대담을 진행한 장필리프 드 토낙이 언급한 것처럼 초반에는 책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를 안심시키는 시각 조정이 아루어진 다음에야 본격적으로 책과 함께 책이 아닌 것들에게도 눈을 돌린다. 책이 비추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란 어떤 것인가. 우리가 죽을 때까지 다 읽지도 못할 책을 읽기 위해 바동거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에 관해서인가. 어떻게 하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 우리가 읽어야 하는 책은 무엇이고 읽지 말아야 하는 책은 무엇인가. 과연, 정말 책이란 무엇인가. 이렇듯 책들의 끝없는 행렬은 우리로 하여금 지독한 노역(勞役)에 빠지게 함과 동시에 우리의 과거가 어떠했는지를 말해준다. 그럼 결국 귀결되는 것은 한 마디로 압축되겠지. '책은 죽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