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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토마스 만 (열린책들, 2009)



마스 만이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 제1부를 쓰고(미완성) 취리히에 있는 병원에서 죽어갈 때 부인에게 「내 안경을 주시오.」라고 말한 뒤 숨을 거두었다는데, 팬으로부터 암살당한 비틀즈 존 레논의 마지막 말인 「내가 총에 맞았어!」와 비교하면 생을 마감할 때조차 자기와 독일을 동일시한 건지 안경과 동일시한 건지 아니면 어느 지면에 발표된 것처럼 '썩 좋은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인지는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래도 최소한 '언제나 자기 이야기를 하면 그것이 보편적인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된다'고 생각한 토마스 만의 중단편집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그의 분신들이라 해도 될 것만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동일한 결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말하고자 했던 예술 · 생활, 예술가 · 시민, 이상 · 현실, 죽음 · 삶에 걸친 '두 세계의 대립'을 전면적으로 내세우기 때문에 어떤 측면에서는 불가사의한 일이면서도 갈등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다 ㅡ 그래서 「토니오 크뢰거」처럼 어린 시절의 추억을 거의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 또한 희한한 점이다. 어쨌든 인간 세계(어리석다는 것을 알면서도) 속에 참여하고자 하는 인물들은 여러 단편들 속에서 부단히 노력한다. 「토니오 크뢰거」에서 한스 · 잉에와 토니오는 시민과 예술로 대립되는데, 토니오(예술)는 주변 세계로 들어가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그들로부터 소외당하는 '길을 잘못 든 시민'이다 ㅡ 일견 『마의 산』에서는 다소 인물들의 노력의 결실이 드러나는 듯해 보이기도 하지만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 실린 중단편들의 경우 고뇌만이 펼쳐질 뿐이다. 그러나 작가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고, 문제를 제기하거나 그 문제를 추구한 글쓰기 자체로도 예술의 존재 방식을 삶과 융화하려는 노력이 꽤 큰 빛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의 평범한 삶에서 기쁨을 찾고 거기에 빠져들고자 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에 대해서 멸시의 감정을 느끼며 우월감마저 지니고 있는 예술의 아이러니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