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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교차로의 밤』 조르주 심농 (열린책들, 2011)


모르 섬에 살던 아오르족(Alor族)은 항상 불안과 초조감에 쌓여 있고, 의심이 많으며, 남을 믿지 않고,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으며, 항상 복수심에 불타 있다. 그래서 서로 자신들을 방어하는 데에 모든 에너지를 소모한다. 『교차로의 밤』에서의, 교차로를 중심으로 모여있는 세 집의 사람들이 그렇다. 물론 아로르족은 태생적으로 유형화된 경우이지만, 『교차로의 밤』은 문화적인 유형화로 맺어진 관계를 보여준다. 또 다른 것이라면 전자는 언뜻 보기에는 이런 사회가 어떻게 존속될 수 있는지 의심이 가지만, 후자를 보면 그런 낌새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고로 ‘교차로’란, 어디로든 나갈 수 있지만 어디로도 나갈 수 없는 그런 갈림길이다. 그럼 ‘밤’은…… 제임스 톰슨(James Thomson)이란 시인이 이렇게 말했다. 「밤에는 질서가 거짓이 되고, 모든 아름다움은 공허해지고, 개성은 사라지고, 즐거운 다양성은 하나의 거대한 오점으로 바뀐다.」 어두운 밤은, 황망하게 짖는 개의 힘없는 울음, 살짝 밟았는데도 요란스레 삐걱대는 판자 소리를 연상케 한다. 소설에서, 매그레가 철벅철벅 흙을 밟으며 뛰어갈 때 자동차 전조등이 그곳을 너무 환하게 비춰 다른 곳을 칠흑처럼 깜깜하게 만들어 놓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질서는 거짓으로, 아름다움은 공허로 바뀐다. 마찬가지로 검은색 외알박이 카를이 수상쩍다고 느끼는 순간 자신의 6기통 차를 돌려달라는 미쇼네가 의심스럽다가 다시 넉살 좋은 오스카에게로 그 의구심이 옮겨간다. 매그레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트릭이란 것이 점차 부각된다고 여겨지지만 오히려 나는 이 『교차로의 밤』에서는 밤의 분위기가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은근하지만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박진감이 있다. 커튼을 통해 훔쳐보는 동시에 자신을 은폐하고, 비뚤어진 액자에 감춰진 진실과 거리낌 없이 마구 총을 쏴 댈 수 있는 넓디넓은 농가의 배경……. 반복하자면 어디로든 나갈 수 있지만 어디로도 나갈 수 없는 교차로, 밤의 어둠과 한 줄기 빛이 만들어내는 수상한 이미지, 그리고 마치 섬처럼 고립된 교차로의 집들을 짓누르는 음산함. 이것들이 텍스트를 이미지화하여 하나의 미스터리로 만든다.


덧) 매그레가 사람들을 벽에 줄지어 세울 때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The Usual Suspects)》의 머그샷을 떠올리며 살짝 웃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