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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지상에서 영원으로(전3권)』 제임스 존스 (열린책들, 2008)




「재입대 블루스」


월요일에 제대비를 받았지,

난 이제 더 이상 땅개가 아니야.

군에서 너무 많이 돈을 주어 내 호주머니가 빵빵했지.

쓸 돈이 아주 풍부했지,

재입대 블루스.


화요일에 쇠푼을 들고 시내로 나갔어,

더블베드가 놓인 방을 하나 잡았지.

내일은 직장을 잡아야지

하지만 오늘 밤 너는 죽어 버릴지도 모르잖아.

낭비할 시간이 없어,

재입대 블루스.


수요일에는 바를 순례했지,

내 친구들은 나를 왕좌에 올려놓았지.

중국계 혼혈 여자 애를 하나 만났어,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고 하더군.

내가 그년을 때렸나?

재입대 블루스!


목요일에 잠을 깨보니

머리가 깨지는 것처럼 아프더군.

내 바지의 호주머니를 뒤져 보니,

돈이 모두 사라져 버리고 없더군.

그년이 내 머리를 홱 돌게 했어,

재입대 블루스.


금요일에 바를 다시 찾아가서

공짜 맥주를 한 잔 청했어.

내 친구들은 모두 사라졌어,

술집 점원이 말하더군, 꺼져, 이 병신!

내가 그다음에 어떻게 나왔겠나,

재입대 블루스.


토요일엔 차가운 영창에 갔지,

벤치 위에 서서 창살 밖을 내다보았어.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더군,

그들은 모두 행복하게 외출 중이었어.

이젠 내가 선택을 해야 할 시간이었어,

재입대 블루스.


일요일엔 공원에서 잠을 잤지,

사람들이 모두 교회에 가더군.

배는 텅 비어서 고프고,

난 아주 더러운 상황에 놓였지.

땅개는 교회의신자석도 없어,

재입대 블루스.


그래서 월요일엔 재입대를 한 거야,

약간 슬프고 속이 울렁거리더군.

나의 멋진 계획과 풍부한 돈은

계집의 사타구니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

사내들은 언제나 지는 것 같아,

재입대 블루스.


그러니 내 한마디 하겠네,

단기 근무자들아, 이 똥통에 아예 들어오지 말라고.

아예 죽어서 이 세상 사람이 아니거나

30년쟁이거나 둘 중 하나야.

재입대 심사위원들은 나를 우울하게 해,

재입대 블루스.



……노랫말대로 되었다, 켄터키 주 할란 출신의 로버트 E. 리 프리윗의 재입대를 담당한 심사위원들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는 평생 30년쟁이(thirty-year man: 장기 복무를 하게 될 사병을 이르는 속어)로는 살 수 없게 되었다, 빌어먹을 인생의 똥통 리스트에 올라 톰슨 기관총의 윙크를 받았으므로. 그가 죽은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그 없는 스코필드 부대는 그래도 돌아갔고 앞으로도 잘 돌아갈 것이다. 그자들 ㅡ 세상이란 시스템(아마도 다자이 오사무는 세상을 인간의 복수형이라 했을 것이다) ㅡ 은 그렇게 생겨 먹었으니까.


즉 자신의 의지가 기관 단총의 약실 안으로 물러 들어가는 찰나 이미 군번 6915544의 인생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 직면하게 되고, ‘이성은 인간이 발견해 낸 가장 훌륭한 도구’라는 샘 슬레이터 준장의 강도 높은 논리와 드잡이를 하고야마는 거다. 쇠고기를 먹는 중산층의 자기 확신, 아메리카의 얼굴들, 불변의 몰개성적 중심, 지상에서 영원까지 고정된 마초이즘 그리고 진주만을 기억하라……. 군대는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진부한 대사를 읊지 않더라도 역시 세상은 군대와 마찬가지로 조직의 시스템과 카스트적 계급의 지배를 받고 있는 까닭에, 『지상에서 영원으로』는 소년의 제국주의, 간부의 사병의 제국주의를 거쳐 남자와 여자의 제국주의, 인종의 제국주의, 체제의 제국주의로 뻗어간다.



나한테 세상이 왜 그렇게 되어 먹었느냐고 묻지 마. 내가 아는 건 세상이 그렇게 생겼다는 거야. 어떤 사람이 어떤 것을 차지하려면 혹은 획득하려면 그 방법을 잘 알아야 해. 다른 사람들이 그 권리를 어떻게 챙기고 유지하는지 잘 보아 두었다가 그대로 따라 해야 돼. 사람들이 이렇게 하는 데 가장 잘 써먹는 방식이 바로 정치야. 그들은 영향력 있는 사람을 친구로 두었다가 필요할 때 그 영향력을 이용하는 거야.

ㅡ 본문 p.289



프리윗은 상명하복에 도전하고, 워든은 상사의 아내와 동침한다(국내 군부대에서 이 책이 불온 서적이 됐던 전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로써 세력과 세력이 맞붙고 시스템과 시스템이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나 그 말로는 어떻게 되었나. 블룸은 소총 방아쇠울에 엄지발가락을 넣어 자신의 입을 통해 총성을 들었고, 프리윗은 만료된 SP 카드를 손에 쥔 채 죽어갔다 ㅡ 물론 둘 다 우스꽝스러운 ‘엉덩이를 어깨에(hips on shoulders)’ 자세로 죽은 건 아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해도 좋을 일이다.


군인이란 족속은 변화의 안개가 스멀스멀 기어 나와 자신의 눈앞에 그리고 피부에 와 닿기 전에는 모른다고 했다. 희한한 것은 이것이 비단 군인만을 위한 찬사는 아니라는 점으로, 체제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모든 인간들에게도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런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프리윗이 「재입대 블루스」의 노랫말만 남긴 채 사라졌듯 우리 역시 우리만의 노래를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지상에서 영원으로』는 여름 카키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잘생기고 날렵한 젊은이의 묘사로 시작해 전쟁이 오래 가지 않아 끝나버려 자신이 참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토로하는 아홉 살 아이의 안타까운 목소리로 끝난다.


이것은 하나의 이야기이지만 보편적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는 측면에서, 나는 세상을 보고 세상은 나를 본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이는 내가 저 사물을 바라본다는 현실보다 저것들이 내 눈을 겨냥하고 있다는 현실이 더욱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현실은 김수영의 시 「孔子의 생활난」의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 사물과 사물의 생리와 / 사물의 수량과 한도와 / 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을’이란 시구가 말해준다. 그런데 이 시의 결말은,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제임스 존스의 프리윗 역시 ‘죽는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모든 존엄성을 상실한다.


인간은 죽는다. 그러면(그래도) 세상은 먹고, 배설하고, 섹스하고, 종족을 만들고, 시스템을 창조한다. 따라서 『지상에서 영원으로(From Here To Eternity)』가 피력하듯 ㅡ Here에서 Eternity까지 복종, 착취, 도전, 갈등은 서로 호응하기도 하고 곁눈질하기도 하면서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