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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교도소 도서관』 아비 스타인버그 (이음, 2012)




도소 도서관 사서는 여성 재소자 대상 글쓰기 강좌에서 만난 쇼트(short)에게서 「나랑 한 번 할래?」 소리를 듣거나 속사포 장광설을 자랑하는 프랭크로부터 「신을 믿나?」 하는 말을 듣는다. 사실 쇼트의 말을 듣는다면 친절하게 윙크라도 찡긋했어야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다. 그는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떠올리며 고독하며(solitary), 비루하고(poor), 악랄하고(nasty), 난폭하며(brutish), 짧은(short) 카테고리로 여성 재소자들을 머릿속으로 가름했다. 그가 그녀의 농담에 멋진 리시브를 하지 못한 이유는 거기 있었다. 하버드를 졸업하고 교도소 도서관 사서로 취직한 주인공은 한마디로 ‘먹물’이었다. 「폭력배들이 언제 ‘사회에 진 빚을 갚는’ 것 봤어? 이 새끼들은 일 좀 해야 돼. 일이라도 하는 게 걔들한테도 좋아. 우리는 걔들한테 빚진 거 없어. 걔들이 우리에게 빚을 졌지. 봐, 걔들은 인생을 완전히 망쳤어. 자네는 그들에게 신뢰를 회복할 기회를 주는 거라고. 자네가 그들에게 일을 시키고 또 그들이 일을 잘해낸다면 그들은 여기서 나가는 날 이렇게 말하겠지. ‘뿌듯한 수감 생활이었어.’ 그러면 된 것 아닌가?」 이런 교도관의 말에 분개했다면 주인공 아비는 이미 그들과 같은 수감자가 된 것이리라. 감옥이든 사회든, 세상은 인간의 복수형이 아니던가? 어딜 가나 인간, 인간, 인간이다. 그리고 교도소에는 수감자가 있었다. 교도소라는 공간이 유토피아적 환상을 산산이 깨뜨려버릴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그들‘을’ 바라보느냐 혹은 그들‘과’ 바라보느냐의 차이가 될 것이므로. 아비가 조금씩 투어(tour)하는 기분으로 교도소에 드나들 때 비로소 그는 ‘교정’이라는 단어가 과거 한때 존재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감옥의 문이 있던 텅 빈 장소처럼 공허한 말이라는 걸 깨달으리라. 재소자들을 보며 아비가 어떤 종류의 감화를 받든 그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중요한 건, 서로의 관계가 관찰하거나 관찰당하거나 하는 평행선이 아닌 그저 물음표와 느낌표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아채는 일일 테니까(이따금씩 온점도 찍어주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똑같이, 동등한, 그런 권리 ― 아비는 재소자들보다 더 재소자같이 되어간다. 「너는 체제의 일부가 되기를 선택한 거야. 너는 그 체제로 먹고 살지.」 주인공 먹물은 과연 어느 쪽을 선택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