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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우부메의 여름』 교고쿠 나쓰히코 (손안의책, 2004)


쩌면 추리소설로서는 꽝일 수도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독자들로 하여금 지지부진한 장광설이라 느끼게 할 만한 죄(?)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그렇게 따져들기 시작하면 이 책 전체가 장광설일 것이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우부메의 여름』은 이 '장광설'이 매력일지도 모른다. 작품 전체를 단단히 감싸 쥐고 있는 건 역시 교고쿠도의 길고도 긴 입바른 소리로 시작되는 발화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책 뒤표지의 간단한 카피문구만 보고 내용도 간단하다고 단정하는 건 피해야 할 일이다. 이야기의 외견은 어떨지 몰라도 그 플롯이나 내용인즉슨 시쳇말로 '구멍 숭숭 뚫린' 작품이 아니므로. 전후 새로운 일본이 만들어지는 분위기도 다소 녹아있고, 등장인물들 간의 밸런스나 내용적 밀도의 밸런스, 일상적 세계가 파괴되는 폭발력 또한 기이하면서도 철저하다 ㅡ 특히 내러티브의 농밀함은 흥미롭다 못해 두렵기까지 하고, 20개월 동안의 임신이라는 가히 기담과 괴담을 넘어선 흉물스러운 주제부터가 서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니 읽어나가는 매순간마다 환상(이라 여겨졌던)의 파편들이 모이고 모여,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하나의 현상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광경으로 재발견됨에 따라 이야기는 힘을 갖게 되고 또 그만큼 독자는 망치로 뒤통수를 맞는 것과 같은 충격을 받는다. 의식과 무의식, 인간과 요괴라는 평행선처럼 보이는 하나의 선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와 트릭의 면모를 따라가다 보면 환상이라는 포르말린에 담긴 새카만 눈과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 필력과 기술적(記述的) 설득력으로 인해 이야기의 전개가 매끄러우면서도 몇몇의 단점은 순식간에 장점으로 온전히 변하고 마는 작품이다 ㅡ 초자연현상이 현실로 바뀌는 순간이다……. 완벽한 밀실에서 사람이 사라지고, 이번에는 20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임신을 한 여인이 등장한다. 그런데 다른 방향에서 보면 이것이 추리소설로서의 발로가 아니라 '요괴'와 '초자연현상' 그리고 '현실'을 얘기하기 위해 추리라는 외투를 입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작가는 요괴가 아니라 지극히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일견 충분히 작위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퍼즐, 심상치 않다(서두에 추리소설로서 꽝일지도 모른다는 언급을 한 이유다). 굉장히 어지럽고 불친절하다, ㅡ 작가의 일련의 작품들, 『항설백물어』나 이 『우부메의 여름』이후의 '교고쿠도 시리즈'를 봐도, 역시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는 건 '이 세상에 이상한 일 따위는 없다' 식으로 끝나버린다 ㅡ 단순히 이렇게만 치부해버린다면 그저 읽는 재미만이 이 작품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좋겠다. 글쎄, 이 '인식'에 대한 세계관이 환상과 초자연현상에만 의존한다면 분명 그럴밖에. 나로서 이 작품이 좋았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그러한 기괴함을 넘어서려는 시도가 보인다는 점 때문이다. 칵테일파티 효과로 대변되는 인간의 의식이 환상을 뛰어넘는 소재와 맞물려 소름끼치는 이야기로 빚어지는 것, 이것이 이 작품의 강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