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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직설』 한홍구, 서해성, 고경태 (한겨레출판, 2011)


지엔 테이프 죽죽 잘라 붙인 것 같은 '직설'이 새빨갛게. 찢어 발겨졌지만 모두 곧게 '앞으로 나란히' 하고 있다. 과거 한겨레신문에 '직설'이란 꼭지가 생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신문 오리기를 중단했다. 분명 책으로 묶여 나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생각대로 당연히, 기어코, '직설'은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그때 또 다른 걱정이 생겼다 ㅡ 판금 당할까 봐서이다. 이런 걱정 자체가 걱정인 건가? 한겨레도 이젠 그렇고 그렇다는 비판(혹은 비난)이 극에 달해 있을 때 생긴 꼭지라서 그런지 처음부터 굉장히 관심이 많이 갔던 게 사실이고 또 흥미롭게 읽었었다. 물론 초반엔 '놈현 관 장사'로 한 대 얻어맞긴 했지만 일단 이만큼이라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본다. 그리고 지금 나는 벌써부터 직설 이후를 기대한다. 한겨레 직설 차기 버전이 나온다면 '세치 혀'가 좋겠다. 어디서 세치 혀를 놀리느냐, 할 때 그 세치 혀. 그러면서 자꾸 세치 혀 놀리지 말라고 말 못하게 하는 꼰대들에게 발기된 페니스처럼 뾰족한 그 혀로 찌르는 거다. 어쨌든 고상한 척하지 않고 저잣거리 말로 풀어냈기에 직설이 완성될 수 있었고 진행될 수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직설이라 할 수 없겠지. 목 뻣뻣한 계몽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깨에 잔뜩 힘을 준 헤게모니의 당사자들도 아니니. 뭔가 업그레이드된 난장판과도 같다(어쩌면 구어체 인문서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 곧은 혀에 찔리지 않도록 조심할밖에. 기득권에 반항한다고 해서 모든 게 곧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지금은 '그물 국가'니까, 이건 충분히 곧을 수 있다, 는 게 내 생각이다.







뭐가 문젠교. 고마 그냥 놔 두이소. 모하면 열지 말고 고마 꾹 닫아 두이소. 엄한 다리 잡지 말고 혼자 말아 무이소. 그래도 할라마 차라리 날 잡아 무이소 (...) 머라머라 캐싸도 인자 마 치아뿌라. 니 주디서 나오는 건 숨 빼고 다 구라. 뭣도 모르고 내가 니캉 갔제. 디비보이 180도 내캉 반대. 힘 다 빼고 자빠짔네 무참하이. 사는 게 이런 기가 무까끼하이.

ㅡ MC Meta, DJ Wreckx 「무까끼하이」 ▲



아아아아아! 이거 완전히 개판이구만!

ㅡ JTONG 「개판」 ▼






(위에 제시된 2개의 영상과 노랫말은 책 『직설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ㅡ 그럴 공산이 크다)어쨌든, 관공(關公)이 허망하게 죽었다고 해서 '아아, 관공이여, 관공이여' 하고 죽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나? 기다리지 않고 뭔갈 하다 보면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아낼 날이 올 수도 있으니까. 사실 『직설』은 그저 재야 인물들을 보듬는 모습으로 보여질지도 모른다. 고로 나는 이 '직설들'에 온전히 동의하는 건 아니다. 근데 하나 생각해볼 건, 뭐든 알아야 욕할 수 있고 침이라도 뱉을 수 있다는 거다(이를테면 투표도 안 하고 나중에 욕하는 꼰대들이 꼭 하나씩은 생기니……) '친구는 가까이, 적을 더 가까이.' 물론 생채기를 내고 욕창이 터져 상처만 더칠 수도 있겠으나, 또 앞서 언급했듯 '초대손님 치켜세우기'에 그칠 수도 있겠으나 ㅡ 이런 식으로만 가다간 '직설'이 아니라 '곡설'의 뱀꼬리가 되겠지 ㅡ 이것들은 그저 방법론의 문제이고 걷는 방향은 매한가지라고 본다. '영국식 우울록'을 보라. 그렇게 살다간(이건 비하가 아니다) 조만간 미쳐버리고 말 거다. 요는, 애티튜드의 문제다. 직설이 사실은 곧은 게 아니고 진실을 왜곡하고 있진 않은가, 하고 생각하는 수용자가 되면 된다. 다시 말해 직설의 애티튜드와 독자의 수용의 문제, 이 직설이 MB를 타겟으로만 할 게 아니라는 점이다. ……펜대와 주둥이만 가져도 할 일은 많다. 그리고 강풍과 장풍을 맞아도 살아남는 건 있다. 이기는 것도 좋지만 잘 지는 것에서도 배울 점은 있잖나.